‘가왕’ 조용필이 뮤지컬 제작을 선언했다. 자신의 노래로 만드는 뮤지컬 제작에 앞서 대상에 1억 원 등 총상금 1억 5000만 원 규모의 대본 공모전을 전 국민을 대상으로 열겠다고 밝혔다. 이번 공모전은 조용필의 소속사인 ㈜YPC와 조용필 공연을 해온 ㈜인사이트엔터테인먼트가 의기투합하면서 시작됐다.
김광석의 노래로 만든 창작뮤지컬 <그날들>을 시작으로 드라마 원작의 뮤지컬 <모래시계> 등을 제작한 ㈜인사이트엔터테인먼트는 “뮤지컬업계는 물론 문화계 관계자들이 지속해 조용필의 노래로 만든 뮤지컬 제작을 염원했다. 전 국민적으로 사랑받는 조용필의 명곡들은 곡 자체만으로도 한 편의 서사가 그려지는 깊은 울림을 준다”면서 “우리에게도 그룹 아바의 노래로 만들어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맘마미아>와 같은 뮤지컬이 필요하다는 요구도 있었다”라고 이번 프로젝트의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뮤지컬 대본, 전 국민 공모전
조용필과 제작사는 영화와 드라마, 케이팝, 케이클래식 등 한국의 문화예술 콘텐츠가 전 세계적으로 크게 주목받고 있는 가운데 세계시장에 내놓을 만한 케이뮤지컬을 제작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무엇보다 많은 국민이 즐겨 듣고 부르는 조용필의 노래를 재료 삼아 우리나라 사람들이 사랑하는 뮤지컬이자 세계시장에서도 통할 수 있는 명품 주크박스 뮤지컬로 재탄생시키겠다는 계획이다.
이번 대본 공모전은 11월 1일부터 2023년 2월 28일까지 ㈜인사이트엔터테인먼트 누리집을 통해 접수를 받는다. 기성작가, 신인 등 구분 없이 우리나라 국민이면 누구나 응모할 수 있다. 내용은 제한이 없으며 조용필의 주요 히트곡으로 만들 수 있는 140분 내외의 뮤지컬 대본 혹은 스토리를 제출하면 된다.
제작사 측은 엄정한 심사를 거친 뒤 조용필 데뷔 55주년이 되는 2023년에 스토리를 완성하고 수준 높은 뮤지컬로 제작해 2025년 무대에 올릴 예정이다.
사실 조용필에게 뮤지컬은 오랜 꿈이었다. 그에게 좋은 앨범을 내고 최고의 콘서트를 준비하는 것 못지않게 간절한 꿈은 자신의 히트곡으로 만든 뮤지컬을 무대에 올리는 일이었다. 실제로 조용필은 28년 전인 1994년경 뮤지컬을 제작해 무대에 올리기 직전에 포기했던 아픈 기억이 있다.
그 당시 유명 소설가와 드라마 연출가 등이 참여해 제작했던 <서울 신화>가 그것이었다. 공연 장소와 날짜까지 정해졌고 티켓도 팔고 있었으나 공연을 불과 보름 남짓 남겨두고 전격적으로 취소됐다. 전적으로 조용필 본인의 판단으로 결정된 일이었다.
자신의 이름을 내건 음악과 무대에서는 거의 병적일 정도로 완벽주의자인 조용필에게 실패가 예정된 뮤지컬을 무대에 올리는 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 시절만 하더라도 뮤지컬 제작에 필요한 인적·물적 자원이 풍부하지 못했다. 조용필은 그대로 무대에 올리면 팬들에게 큰 실망을 안겨줄 수 있다는 판단에 온갖 손해를 감수하고 공연을 취소한 것이다.
그로부터 5년 뒤인 1999년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뮤지컬 콘서트 <그리움의 불꽃>을 무대에 올렸다. 완전하지는 않지만 뮤지컬 제작에 대한 목마름을 달래고 한편으로는 주크박스 뮤지컬에 대한 가능성을 열었던 공연이었다. 이 공연의 연출자는 <명성황후>, <영웅> 등 창작뮤지컬을 제작했던 윤호진(현 에이콤인터내셔날 대표)이었고 무대디자이너는 독특한 무대연출로 주목받던 박동우(현 중앙대 연극학과 교수)였다.
오케스트라와 무용단, 어린이 합창단 등 총 230여 명의 스태프가 동원돼 열흘 넘는 기간 동안 전회 매진을 기록한 공연이었다. 대중 가수에게는 문호를 개방하지 않았던 오페라극장 무대에서 예술성과 흥행 두 마리 토끼를 잡았던 공연으로 기록됐다. 조용필은 그로부터 7년에 걸쳐 매년 연말에 오페라극장 공연을 이어갔다. 공연 때마다 제목을 내걸고 무대미술은 물론 스토리를 바꾸면서 변화를 줬다. 그러나 조용필에게 이 공연은 뮤지컬 형식의 공연이었을 뿐 조용필 뮤지컬은 아니었다.
뮤지컬 본고장 찾아 공부에 매진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조용필은 본격적으로 뮤지컬을 공부했다. 틈날 때마다 미국 뉴욕의 브로드웨이에 가서 최신 뮤지컬을 보고 또 봤다. 언젠가 조용필은 “똑같은 뮤지컬을 열 번 이상 보러 다녔다. 오늘은 노래, 내일은 조명, 그다음 날은 무대미술을 집중적으로 봤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한 달 내내 뉴욕에 머물면서 뮤지컬만 보기도 했다. 어느 해인가는 밴드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 멤버들과 사무실 직원을 모두 데리고 가서 뮤지컬을 봤다. ‘위대한 탄생’이 뮤지컬 무대의 연주를 맡고 스태프도 함께 참여해 뮤지컬 제작을 해야 했기에 뮤지컬 본고장에 견학하러 간 것이다. 이후로도 유명 뮤지컬과 오페라의 DVD는 빠짐없이 구매해 틈날 때마다 봤으며 요즘엔 뮤지컬에 관련된 유튜브 영상도 찾아본다.
그러나 이번 뮤지컬 제작에 그가 직접 관여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국내에 좋은 뮤지컬을 제작할 수 있는 인력이 풍성해졌으며 젊은 세대까지 포용할 수 있는 상상력이 필요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그러나 조용필 뮤지컬의 성공을 누구보다도 간절하게 바라는 사람은 바로 조용필 자신이다.
이제 스토리 공모로 시작된 ‘조용필표 뮤지컬’은 온 국민이 기다리는 프로젝트가 됐다. 어떤 뮤지컬이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낼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오광수 대중문화평론가(시인)_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오랫동안 문화 분야에서 기자로 일했다. 저서로는 시집 <이제 와서 사랑을 말하는 건 미친 짓이야>, 에세이집 <낭만광대 전성시대> 등이 있다. 현재는 문화 현장에서 일하면서 평론가로도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