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표기의 두음법칙
나태주 시인의 성은 ‘나’고 배우 라미란의 성은 ‘라’입니다. 하지만 이들의 성은 둘 모두 ‘벌일 라(羅)’라는 같은 한자인데요. 왜 다르게 사용할까요? 또 축구선수 이청용과 정성룡은 같은 ‘용 룡(龍)’을 쓰는데 한글은 ‘룡’과 ‘용’으로 달리 적습니다. 왜 그럴까요?
같은 한자, 다른 이름 왜?
이는 두음법칙을 적용하지 않았거나 잘못 적용해 생긴 문제인데요. 먼저 두음법칙은 우리말에서 ‘ㄴ’이나 ‘ㄹ’이 단어 첫머리에 오는 것을 꺼리는 현상을 말합니다. 이에 따라 ‘니 냐 녀, 뇨 뉴’ 등은 단어 첫머리에서 ‘이 야 여 요 유’로 바뀝니다. ‘녀자→여자’ ‘뇨소→요소’로 쓰는 것이 이런 이유에서인데요.
‘ㄹ’은 좀더 복잡합니다. ‘리, 랴, 려, 료, 류’ 등은 ‘이, 야, 여, 요, 유’ 등으로 바뀌고 ‘라, 로, 루, 르’ 등은 ‘나, 노, 누, 느’ 등으로 변합니다. 그래서 ‘력사→역사’ ‘류행→유행’으로, ‘로인→노인’ ‘래일→내일’이 됩니다.
이런 두음법칙도 둘째 음절 이하에서는 적용되지 않는데요. 따라서 ‘남여→남녀’ ‘진이→진리’로 쓰면 됩니다. 또한 외래어에도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라디오, 로션, 라면’ 등과 같이 표기할 수 있습니다.
이 두음법칙에 따른다면 ‘라미란’은 ‘나미란’으로 써야 올바른 표기입니다. 나태주 시인과 라미란의 성은 한자가 ‘羅(라)’로 같은데요. 두음법칙에 따라 ‘라’가 첫머리에 오면 ‘나’로 적는 게 맞습니다. 또한 이청용은 정성룡처럼 ‘룡’으로 써야 합니다. 첫음이 아니기 때문에 본음대로 적는 것이 맞는데요.
그런데 대법원은 사람의 성씨는 혈통을 표시하는 고유명사인데 기존에 쓰던 표기를 못 쓰게 하는 건 헌법상 기본권인 인격권 또는 자기결정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고 보고 2007년 예규를 개정했습니다. 이른바 두음법칙을 강제로 따라야 했던 조치를 벗어나 성씨 표기가 자율화된 건데요. 그 결과 나(羅), 유(柳), 이(李) 등 원음에 ‘ㄹ’이 있는 성씨의 표기를 원음대로 ‘라, 류, 리’ 등으로 쓸 수 있게 됐습니다.
현재 시행되는 대법원예규인 ‘가족관계등록부에 성명을 기록하는 방법’의 규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인명용 한자의 첫소리가 ‘ㄴ, ㄹ’인 한자는 그러한 한자가 이름자의 첫음으로 사용된 경우든 나중 음으로 사용된 경우든 상관없이 ‘ㄴ’ 또는 ‘ㄹ’이나 ‘ㄴ’ 또는 ‘ㅇ’으로 쓸 수 있게 됐습니다. 본인이 원한다면 라미란도, 이청용도 쓸 수 있다는 말인데요.
한자 다르면 두음법칙 적용 안 돼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현재 이름 표기에서는 한글맞춤법(두음법칙)에 맞지 않더라도 개인의 의사를 존중합니다. 가족관계등록법에 따르면 이름자에 사용된 한자에 대한 한글 음을 어떻게 적을지는 한글맞춤법과 무관한 개인의 권한이라는 것인데요. 선동열 전 야구 감독의 경우가 대표적입니다. 선 전 감독은 이름의 한자를 ‘매울 렬(烈)’을 쓴다는 점에서 법칙대로 하면 선동렬이 자연스러운데요. 그러나 본인이 선동열로 써왔고 한국야구위원회(KBO)에도 해당 이름으로 등록돼 있다는 점에서 선동열로 표기가 굳어졌습니다. 김응용 전 야구 감독도 마찬가지입니다. 본음이 ‘룡(龍)’이기 때문에 김응룡으로 쓰는 것이 맞지만 본인 의사를 존중해 김응용으로 표기합니다.
단 주의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한자가 다른 경우인데요. 윤석열 대통령의 열은 ‘기쁠 열(悅)’로 두음법칙과 관계없이 본음 자체가 ‘렬’이 아닌 ‘열’이기 때문에 윤석렬로 표기될 수 없습니다. 축구선수 기성용 역시 ‘쓸 용(庸)’으로 ‘룡’이 아닌 ‘용’으로 쓰는 게 맞습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 시인의 시 ‘꽃’의 한 구절인데요. 어렵게 느끼던 상대가 친근히 이름을 불러줬을 때 긴장이 풀린 기억, 반대로 학창시절 이름이 잘못 호명됐을 때 기분 상했던 기억 등 누구에게나 이름에 관한 추억이 있을 텐데요. ‘이름으로 불리는 것’은 왠지 특별하게 느껴집니다. 누군가와 친해지고 싶다면 다정히 이름을 불러보는 것부터 시작해보면 어떨까요. 이름은 자신의 것이지만 남이 불러줘야 그 의미가 제대로 살아나기 때문입니다.
백미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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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