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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실로 독특한 시대를 살고 있다. 동네 대형마트에 가면 식재료부터 의류, 전자기기까지 온갖 재화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주머니 속 휴대전화만 꺼내면 볼거리와 정보가 넘쳐난다. 인류 역사상 이렇게 물질적·문화적 풍요를 누린 세대가 없다. 그런데 현대인은 동시에 심한 불안에 시달린다. 이 사회가 언제 붕괴할지 모른다는 징후와 공포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물론 가장 큰 문제는 닥쳐오고 있는 기후 위기다. 이런 경제 시스템으로는 우리 사회가 적응하기 불가능한 급격한 지구환경의 변화가 불과 수십 년 안에 불어닥칠 것이라는 게 과학계 예측이다. 최악의 불평등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과도 같이 째깍거리고 있다. 코로나19 세계적 유행은 기존 시스템이 얼마나 유리처럼 불안한 것이었는지 여지없이 드러냈다. 좀비(살아 움직이는 시체) 장르가 괜히 큰 인기를 얻는 것이 아니다.
현재 지구상 가장 강력한 국가이자 번영한 사회를 구축했다는 미국이 이런 공포에 가장 심하게 시달리는 듯 보이는 것은 모순이다. 11월 20일(미국 시각) 현재 미국 하루 코로나19 확진자 수는 19만 명, 사망자 수는 1800명을 훌쩍 넘었다. 누적 확진자는 1200만 명에 육박하고 있다. 정치체제의 근간을 이루는 대통령 선거는 얼마나 사회가 분열되어 있는지를 드러내는 상징으로 전락했다. 전임 대통령은 재임 때와 마찬가지로 가짜 뉴스를 쏟아내며 지지자의 돌발 행동을 부추기고 있다. 수백억 달러를 쥔 거부와 병원도 마음대로 못 가는 빈곤층이 공존하는 미국의 심한 불평등은 너무도 잘 알려져 있다.
한 사회는 어떻게 붕괴되는가
미국 <뉴욕타임스>의 일요판, <뉴욕타임스 매거진>은 이런 상황 속에 11월 4일 급기야 ‘우리는 어떻게 한 사회가 붕괴할지 알 수 있을까?’라는 특집 기사를 내보냈다. 한 사회의 패망에 대한 연구의 미국 내 최고 권위자로 꼽히는 조지프 테인터는 유타주립대학교 교수진을 비롯한 여러 전문가의 견해를 꼼꼼히 들어 엮었다.
이들의 현재 진단은 밝지 않다. 함부로 예측하지 않는 신중한 학자인 테인터 교수조차 강한 경고를 내놓을 정도다. 그의 책 <복잡한 사회의 붕괴(The Collapse of Complex Societies)>에 집약돼 있듯 그는 사회 붕괴를 복잡성의 렌즈로 들여다보았다. 한 사회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른 도전에 맞서기 위해 점차 복잡성을 높여간다. 마치 청년이 환경에 적응하고 성장하기 위해 체력 단련이나 지적 단련을 하고 그 체계를 만들어 나가듯이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고안된 사회의 복잡성이 점점 커지면 이는 도전에 대한 대응책이 되기보다 오히려 문제가 되기 시작한다. 로마 사회를 보자. 군대를 키워 식민지를 정복하고, 거기서 나오는 재화를 바탕으로 성장하던 로마는 이런 방식이 끝없이 유지되는 게 불가능하단 사실이 명확한데도 점점 비대해져만 가는 군대, 사회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다가 결국 멸망의 길을 갈 수밖에 없었단 것이 테인터 교수의 관점이다.
피터 터친 미국 코네티컷대학교 교수는 미국 사회가 코로나19 이전부터 이미 패망의 길에 접어들었다고 단정했다. 그의 관점에서 이를 판단할 수 있는 핵심은 ‘사회적 회복력’을 갖고 있느냐인데, 지난 40년 동안 미국 대중은 비교적 더 가난해지고 건강 상태도 악화했지만 소수 엘리트는 더 큰 부와 제도적 기반을 축적했다. “미국은 안으로부터 자신을 먹어치우고 있는 상황”이라는 게 그의 진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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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경쟁과 소비의 습관 바꿔야
문제는 현대사회에서 붕괴는 과거처럼 한 나라가 붕괴하면 다른 나라에 기회가 찾아오는 성격의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왕국끼리 싸우는 봉건시대나 체제 경쟁을 하던 냉전시대와 달리 현대는 모든 국가가 경제·사회적으로 긴밀히 연결돼 있기 때문에 한 국가의 붕괴는 시스템 전체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중국에서 생산된 제품이 우리 마트에서 수요를 충족시킨다. 각 부분품이 복잡한 정보시스템으로 연결돼 톱니바퀴처럼 긴밀하게 돌아가는 시스템에서 중간고리 어딘가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면 시스템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취약성이 커진다고 테인터 교수는 지적했다.
현대사회는 기후 위기, 불평등, 감염병 확산 등으로 초대형 경제 위기를 일으키는 ‘퍼펙트 스톰’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가? 상황을 꼭 그렇게 어둡게만 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번영 아니면 절멸이라는 ‘둘 중 하나’라는 시각으로 단정하는 것도 적절치 않을 수 있다.
영국 리드대학교 연구진은 닥쳐오는 기후 위기 상황의 대안 연구를 위해 현재 선진국 수준의 적절한 품위 유지를 위한 최소한 에너지를 소비했을 때 인간이 쓰는 에너지양을 얼마나 줄일 수 있는지 조사한 결과를 최근 발표했다. 기술 발전과 사회 변화가 뒷받침된다면 2050년까지 인구 증가를 고려하더라도 1960년대 수준의 에너지만 쓰고도 인류가 유지 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끝없는 경쟁과 소비라는 지금의 습관을 조금만 바꾼다면 다른 미래가 가능할 수도 있다.
권오성_ <한겨레> 기자로 미래, 과학 등을 맡던 중 뉴욕 시러큐스 대학에서 컴퓨터 기술과 저널리즘의 융합 석사과정을 마쳤다. 인공지능 등의 기술이 사회와 미디어에 가져올 영향에 관심이 많다. <데이터 과학> 등의 책을 번역했다. 현재 건국대 언론홍보대학원에서 데이터 저널리즘 과목을 가르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