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2년 2월 강화도에 외규장각 건립을 완료했다는 강화유수의 보고가 올라왔다. 정조가 즉위 직후 외규장각 건립을 명한 지 6년 만이었다. 외규장각 건립을 계기로 왕실의 자료들을 비롯하여 주요한 서적들이 보다 체계적으로 보관되었다. 이후 100여 년간 외규장각은 조선 후기 왕실문화의 보고(寶庫)로 자리 잡게 되었다.
1784년에 편찬된 <규장각지(奎章閣志)>에 따르면, 외규장각은 6칸 크기의 규모로 행궁(行宮)의 동쪽에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외규장각은 인조 이래 강화도에 행궁과 전각이 세워지고 왕실관계 자료들이 별고(別庫)에 보관된 것을 계기로, 국방상 안전하며 보다 체계적으로 이들 자료들을 관리할 목적으로 세워졌다. 이로써 외규장각은 창덕궁에 위치하면서 조선 후기 문화운동을 선도했던 규장각의 분소와 같은 성격을 띠게 되었다. 이곳을 ‘규장외각’ 또는 ‘외규장각’이라 부른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외규장각이 완성되자 정조는 규장각에 보관하고 있던 왕실 도서 중 특별히 중요한 것을 선별하여 이곳에 보관하도록 하였다. 정조의 뜻은 후대의 왕들에게도 계승되어 1866년 병인양요로 외규장각이 수난을 당할 때까지 6천여 권의 책이 보관되어 있었다. 병인양요 전인 1857년과 1858년에 작성된 <외규장각형지안(外奎章閣形止案)>에 따르면 당시 외규장각에는 어람용 의궤류를 비롯하여 총 6천여 권의 서책이 동서남북의 탁자에 보관되어 있었음이 확인된다.
외규장각에 보관된 기록물 중에는 왕이 친히 열람할 목적으로 작성한 어람용(御覽用) 의궤(儀軌)도 포함되어 있었다. 의궤는 왕실의 주요행사를 기록과 그림으로 남긴 것으로, 일반 사고(史庫)에 보관하는 분상용 의궤와는 별도로 왕이 열람하는 어람용 의궤를 따로 제작하였다.
어람용 의궤는 표지와 장정이 분상용 의궤보다 화려하였고, 종이의 재료도 초주지를 사용하여 분상용 의궤에 비해 질이 좋았다.
표지는 초록 비단을 사용하여 붉은 삼베 표지인 분상용 의궤와 차이가 있었다. 또한 장정(裝幀)을 함에 있어서도 어람용 의궤는 국화 모양의 장식 5개를 만들어서, 박을정(朴乙丁) 3개를 써서 장정을 한 분상용 의궤보다 튼튼하게 만들었다. 어람용 의궤에 수록된 글씨와 그림 또한 우수했다. 같은 의식을 기록한 의궤를 비교해 보면 어람용 의궤의 ‘반차도’ 그림이 훨씬 정밀하여 인물의 수염이나 눈매까지 선명하게 표시되어 있다. 기록의 내용뿐만 아니라 표지나 장정도 뛰어났기 때문에 1866년 강화도를 침공한 프랑스 군대의 눈도 사로잡을 수 있었다.
1866년 프랑스 함대가 조선의 강화도에 쳐들어오면서 병인양요가 시작되었다. 국토를 유린했을 뿐만 아니라 이곳에 있던 최고의 문화재인 외규장각 의궤를 집중 약탈해 갔다. 프랑스 군대는 6천여 권의 왕실 도서가 보관되어 있던 규장각을 방화하는 만행을 저지르는 가운데에도 의궤들은 프랑스로 가는 배에 실었다. 화려하고 품격이 있는 외규장각의궤의 장정과 비단표지, 반차도 등에 매료되었기 때문이었으리라.
이후 의궤 목록만 존재했지 그 실물의 존재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었다. 프랑스에서도 의궤를 방치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재불학자 박병선 박사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1975년 외규장각 의궤의 소재가 확인되었다. 박병선 박사는 의궤의 목록을 만들어 세상에 공개했고, 이것은 이후 의궤 반환의 주요한 근거로 제시되었다. 1991년 서울대학교는 프랑스 정부에 외규장각 의궤 297책의 반환을 공식적으로 요청했고, 1993년 프랑스 미테랑 대통령은 <휘경원원소도감의궤> 2권의 책을 들고 국내를 방문했다. 고속철도 부설권을 얻기 위한 정치적 의도가 개입되어 있었다.
외규장각 의궤는 반환 이후의 활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의궤를 적극 활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의궤에 대한 적극적인 연구를 통해 한국문화의 정수를 세계에 알려야 할 것이다. 이것이 정조가 외규장각을 설치하여 최고의 기록물을 후대에 남기려고 한 깊은 뜻을 우리 후손들이 계승하는 길일 것이다.
글·신병주(건국대 사학과 교수) 2013.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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