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거된 페트병을 압축해놓은 더미 앞에 서 있는 탁용기 대표│두산이엔티
환경기업 두산이엔티의 실천 사례
세계가 앞다퉈 탄소중립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플라스틱에 에워싸여 살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플라스틱을 재활용하는 일은 2050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필수 조건이 됐다.
정부는 생수와 탄산음료 용기에 주로 쓰이는 무색투명한 페트병을 전용 분리수거함에 넣는 투명 페트병 분리배출 의무화를 시행 중이다. 1년 먼저 공동주택을 시작으로 2021년 12월 25일부터는 단독주택을 포함한 전국의 모든 주택에서 시행하고 있다.
분리배출한 투명 페트병은 옷, 가방, 신발 등으로 변신해 우리에게 돌아온다. 순도 높은 고품질 재생 원료가 돼 새로운 용기나 장섬유 같은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재탄생해 순환경제를 구축하는 밑바탕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 현장에 젊은 환경기업 ‘두산이엔티’가 함께 뛰고 있다.
두산이엔티는 강원도 횡성에 위치한 재생 플레이크(Flake) 생산 기업이다. 우리나라에서 사용된 일회용 페트병을 수거해 불순물을 제거한 뒤 잘게 썰어 플레이크로 재생하고 있다. 플레이크는 플라스틱 계열의 제품 생산에 원료로 공급되는 재생 원료다.
두산이엔티는 현재 BYN블랙야크 등 대기업에 월평균 100톤 규모의 고품질 의류 원료를 공급하고 있다. 이 같은 공급량은 1.5L 페트병 1병당 무게가 35g인 점을 감안하면 월평균 300만 병 가까운 폐페트병을 고품질 의류 원료 플레이크로 재활용하고 있는 셈이다. 폐페트병이 어떻게 고품질 재생 원료로 재탄생하는지 탁용기 두산이엔티 대표에게 자세히 들어봤다.
▶투명 페트병의 부속물인 병뚜껑이 골프 티와 블록으로 재활용됐다.│청정환경사업소
분리 잘해야 고품질 원료로 재활용
고품질 제품을 만들려면 재료의 순도가 중요한 법. 재활용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첫 단계는 ‘분리배출’이다. 탁용기 대표는 민·관·산이 뭉쳐 발 빠르게 구축한 횡성군의 폐자원 선순환구조를 주목해달라고 했다.
탁 대표는 “횡성 주민들은 새마을부녀회가 중심이 돼 생수와 음료수의 투명 페트병을 읍면별로 분리배출했고 횡성군은 이를 사들였다. 이렇게 모은 투명 페트병은 횡성군 재활용 선별장을 거쳐 두산이엔티로 보내져 고기능성 의류 원료가 되는 재생 플레이크로 재탄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타 지방자치단체에선 공동주택에서만 하던 투명 페트병 분리배출을 횡성군에선 공동주택은 물론 단독주택에서도 앞서 실천하고 있었다. 횡성군이 인구수 대비 재활용품 품목과 투명 페트병 배출 비율이 높다고 자랑하는 배경이다.
수거된 투명 페트병은 두산이엔티의 기술력이 더해지면서 변신 준비를 시작한다. 풀어 헤친 투명 페트병 더미는 기계에서 1차, 사람이 2차 선별을 한다. 이어 분쇄 2번, 세척과 탈수 과정을 5번 반복한다. 그중 온수 세척은 1번, 나머지는 미온수 혹은 냉수 세척이다. 세척하고 탈수하는 과정 뒤에는 항상 상표띠 제거가 같이 이뤄진다. 총 8번 상표띠를 제거한다. 마지막 분쇄품의 형태로 다시 색상과 재질을 가려 나누는 자동선별기를 통과한다. 두산이엔티는 3~10mm의 중간 크기 제품만 포장백에 담아 판매한다.
수차례의 선별과 분리, 세척을 거쳐 생산된 투명한 고품질 페트 플레이크. 그대로 성형해 재활용 소재 제품을 만들거나 녹이고 길게 뽑아 잘게 잘라내어 펠릿으로 만든 뒤에 재활용 용기를 만들기도 한다.
두산이엔티가 생산하는 플레이크의 품질은 어느 정도 수준일까? 탁 대표는 “국제적으로 이물질 함량이 1000ppm 미만일 때 고품질 원료로서 활용 가치가 있다고 평가한다”며 “국내에서는 두산이엔티가 유일하다”고 소개했다. 이어 “최근 이물질 함량을 348ppm까지 낮췄다. 벤치마킹한 재활용 강국 일본을 훌쩍 뛰어넘어 전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플레이크를 생산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투명 페트병으로 만든 재킷과 티셔츠. 한장의 티셔츠를 만드는 데 투명 페트병(생수병 500ml 기준) 15개 가량이 재활용된다.│문화체육관광부
“전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플레이크 생산”
두산이엔티의 독보적인 기술력은 시설투자에서 비롯된다. 두산이엔티는 2014년 폐플라스틱을 수거해 선별, 압축 후 판매하는 단순 업무로 시작했다. 지역에서 열린 저탄소 친환경을 선언한 2018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지금의 플레이크 생산 기업으로 성장했다.
2018년 페트 관련 고품질 사업을 시작하면서 탁 대표는 “화장품 용기, 사람 피부에 직접 닿는 의류에 활용할 수 있는 제품을 목표”로 시설을 갖췄다. 당시 기존의 폐플라스틱 회사들이 주로 소각하거나 간단한 선별·파쇄 과정을 거쳐 인형 솜, 이불솜, 작업복 충전재 등 사람의 피부에 닿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는 안감용 충전재에 집중한 것과 다른 출발이다. 고품질 재활용 기술을 확보하기까지 일본의 우수 기업들을 오가며 쏟은 노력의 결실을 지금 보고 있는 것이다.
또 페트병의 병뚜껑과 뚜껑 고리를 따로 나눠 폐플라스틱 활용 방안을 다각도로 실험하고 있다. 탁 대표는 “병뚜껑과 뚜껑 고리 역시 몸체인 페트와 똑같은 공정을 거친다”며 “횡성군 청정환경사업소에서 부산물 활용에 집중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한성현 청정환경사업소 소장은 “병뚜껑을 두산이엔티에서 무상으로 받아 골프공을 올려놓는 골프 티, 블록 등 생활용품으로 재활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두산이엔티는 2021년 9월 6일 자원순환의 날을 맞아 환경부 장관 표창을 받았다. 국내 최고의 자원순환선도기업으로 인정받은 셈이다.
두산이엔티는 국제적으로 리사이클 제품을 판매할 수 있는 기준을 충족하지만 내수시장 활성화에 집중하고 있다. 제품 전량을 국내에서 소진하는 이유다.
▶횡성은 새마을부녀회가 중심이 돼 읍·면별로 주민들이 생수와 음료수의 투명 페트병 수거 활동을 펼치고 있다.│새마을운동중앙회
중간 폐플라스틱으로 A급 원료를
두산이엔티는 내일을 준비하고 있다. 6월이면 새 공장이 가동한다. 기존 공장의 약 1.8배 규모다. 크기만 커진 게 아니다. 지금보다 더 우수한 설비를 갖춘다. 독일 설비를 받아들여 혼합형으로 구축했다. 우리나라 재활용 시장이 유럽과 닮았기 때문이다. 간장, 탄산음료, 마요네즈, 워셔액, 원료 첨가제도 페트병에 담을 수 있다. 일본과 달리 생산자 간 규제가 우리나라나 유럽은 없다. 즉 유럽식 시설투자로 재활용품의 품질을 끌어올리겠다는 포부다.
탁 대표는 “시민이 모은 페트병을 잘 활용했는데 그 한계점이 분명히 있다”며 “그동안 모은 제품의 품질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고품질 원료로 활용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시설 보완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A등급으로 A급 고품질 원료를 만드는 건 당연하다. 이제는 B나 C등급을 갖고도 A급 고품질을 생산하기 위해 시설을 확충했다.”
심은하 기자
투명 페트병이 쓸모 있는 자원이 되는 방법!
투명 페트병을 올바르게 분리배출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①내용물을 비우고 헹구기 ②페트병에 붙어 있는 상표띠 제거하기 ③찌그러뜨리고 뚜껑 닫기 ④투명 페트병 전용수거함에 넣기.
여기서 궁금증이 생긴다. 분리배출 시 재질이 다른 뚜껑을 닫아야 하는 이유는 뭘까? 탁용기 두산이엔티 대표는 “페트병을 찌그러뜨려 공기를 빼고 뚜껑을 닫아달라는 중요한 이유가 있다. 뚜껑을 없애고 페트병을 유통시키면 그 안에 이물질이 들어가 불순물이 생긴다. 찌그러뜨리는 이유는 부피가 작아져 수거가 쉬워지기 때문이다”라고 시원하게 답변했다.
그동안 폐페트병에 이물질이 섞이고 유색 페트병과 혼합된 채 버려지는 등 재활용이 어려운 편이었다. 국내 폐페트 생산량 중 약 10%(29만 톤 중 2만 8000톤)만 고품질로 재활용된 이유다. 투명 페트병 분리배출 방법을 잘 지킨다면 훨씬 많은 고품질 자원으로 쓸 수 있다.
투명 페트병 별도 분리배출 제도 확대를 위해 가정뿐만 아니라 기업에서도 노력하고 있다. 먹는샘물 제품 중 20% 이상을 상표띠가 없는 투명 페트병으로 전환하기로 환경부와 업무협약을 맺는 등 기업의 적극적인 동참이 이어졌다.
페트병을 어떻게 버리느냐가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페트병은 병뚜껑까지 100% 재활용할 수 있다. 깨끗이 씻어 종류에 따라 분리한 페트병은 옷, 신발, 액세서리는 물론 가구까지 다양한 형태로 재탄생할 수 있다. 2022년에는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마련한 안전성 평가 기준에 따라 식품 용기로도 재활용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