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추천포상 국민포장 조근식 약사
‘아짠’, 라오스어로 ‘선생님’이란 뜻이다. 경남 창원시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조근식(68) 약사는 라오스에서 ‘아짠 조’라고 불린다. 2012년부터 10년 넘게 라오스에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얻은 애칭이다. 조 약사는 라오스 오지마을을 찾아다니며 주민들의 열악한 생활환경을 개선해주고 학교를 짓고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다. 라오스 현지 대학에 한국어과를 만들어 한국어를 가르치고 한국 문화를 알리는 데도 열심이다.
이를 위해 조 약사는 한 달에 한 번씩 라오스를 찾는다. “봉사를 시작하고보니 해야 할 일이 끝이 없더라고요. 학교는 어떻게 지어지고 있는지, 관리는 잘되고 있는지, 학교나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뭔지, 내 도움이 필요한 곳은 또 없는지 살피고 채우려면 매달 라오스를 찾을 수밖에 없어요.”
비행기로만 수천 ㎞, 꼬불꼬불한 산길과 비포장도로를 오가는 험난한 여정. 칠순이 가까운 나이, 어릴 적 소아마비를 앓아 한쪽 다리가 불편한 조 약사에게 쉽지 않은 길이지만 꿋꿋이 그 길을 오가며 라오스의 든든한 벗이 됐다.
지체장애를 딛고 14년째 국경을 허무는 나눔을 실천해온 공로를 인정받아 조 약사는 3월 14일 열린 ‘제14기 국민추천포상 수여식’에서 국민포장을 받았다. 국민추천포상은 국민이 후보자를 추천하면 정부포상심의위원회 심사를 거쳐 포상하는 제도로 국민이 직접 뽑는 포상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장애인의 날(4월 20일)’을 앞두고 4월 12일 조 약사를 만났다. 라오스에서 보름간의 일정을 마치고 막 돌아온 조 약사의 팔에는 라오스 주민들이 묶어준 ‘막캔(실팔찌)’이 가득했다. 라오스에선 손목에 실을 묶어주며 행운을 빌어주는 전통이 있다. 오랫동안 인연을 이어가자는 의미도 있다. 실처럼 단단하게 이어진 인연, 아짠 조를 향한 라오스 주민들의 애정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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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와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나요?
2012년 가을에 라오스로 여행을 갔습니다. 밥 먹으러 들어간 한 식당에서 우연히 머리에 부스럼이 난 아이를 만났어요. 제가 약사다보니 가방에 상비약을 챙겨 다녀요. 항생제 연고를 꺼내서 아이에게 발라줬죠. 그러면서 아이와 약속을 했습니다. “한 달 뒤에 올 테니까 그때까지 연고 열심히 발라야 해. 얼마나 나았는지 선생님이 봐줄게.”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한 달 뒤 라오스에 다시 갔어요. 상비약과 학용품 등을 챙겨서요. 그게 시작이었어요. 다음에는 뭘 챙겨와야겠다, 마을에 필요한 건 없나, 다른 마을 사정은 어떨까, 이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다음 달에도 그다음 달에도 라오스에 가게 되더라고요.
라오스에서도 오지마을을 찾아다닌다고요?
비엔티안이나 루앙프라방 같은 도시는 그나마 학교나 병원 등의 인프라가 갖춰져 있어요. 하지만 산지나 외진 곳에 있는 마을은 병원은커녕 집이며 학교도 열악하기 그지 없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곳이 많았어요. 그래서 라오스에 갈 때마다 차를 빌려서 오지마을을 찾아다녔어요. 마을에 필요한 걸 메모했다가 다음 달에 가져다줬습니다. 구충제를 가져다주러 갔다가 우물도 파주고 수도 상태가 열악한 걸 보고 물탱크도 지어줬습니다. 금방 무너질 것 같은 집을 수리하고 새로 짓기도 했어요.
그러다 학교도 짓기 시작했군요.
학교도 열악하긴 마찬가지였어요. 교실은 소똥 천지이고 벽은 싸릿대로 겨우 가려져 있었어요. 천장은 반쯤 내려와 있었고요. 그런 곳에서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있겠습니까. 학교가 아예 없는 마을도 있었어요. 그래서 학교를 짓고 수리하기 시작했어요. 지금까지 신축·리모델링한 학교가 20곳 정도 됩니다.
무상교육도 지원한다고 들었습니다.
학교가 생겨도 돈이 없어서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아이가 많아요. 잘살든 못살든 교육의 기회는 일단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글도 배우고 공부를 해야 아이들의 삶이 조금은 달라지잖아요. 모두가 돈 걱정 없이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무상교육을 하기로 했죠.
학교를 짓는 일이나 무상교육 모두 쉽지 않은 일인데요.
처음 학교를 지을 때는 학교만 지으면 다 될 줄 알았어요. 그런데 라오스 교육부가 계획이 없는데 학교가 생긴 경우 교사 발령을 안 내준대요. 그럼 마을 주민들이 돈을 모아서 선생님을 구하고 월급을 줘야만 합니다. 마을 주민들에게 큰 부담이죠. 그걸 알게 된 후로는 교육부에 가서 협의를 하고 교사 발령 여부도 확인하고 학교를 짓습니다. 만약 그게 어렵다면 교사 월급도 지원해요. 학교 대신 아이를 생업에 내모는 부모에게는 생활지원금도 줍니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는 조건으로요. 무엇보다 무상교육은 지속적인 게 중요해요. 유치원부터 초등학교, 중·고등 과정, 대학교까지 계속 이어갈 수 있도록 지원합니다.
모든 걸 사비로 진행한다고요.
학교 하나를 짓는 데 보통 7만 달러 정도가 듭니다. 항공료며 매번 아이들 주려고 구입하는 간식비까지 약국에서 번 돈으로 다 썼습니다. 나이가 들고 보니 돈 쓸데가 별로 없어요. 최소한의 생활비만 빼고 모두 라오스에 씁니다. 노후는 어떡하냐고 걱정하는 사람도 있지만 내일모레가 칠순인데 이미 노후생활 중이잖아요. 누구보다 잘 먹고 잘 삽니다. 봉사를 하다보니 더 없어서 못 주는 게 안타까워요. 제가 라오스에 다니면서 좋아하던 술, 담배 다 끊었어요. 그 돈 모아서 아이들 학용품 사주고 간식 사주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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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들의 반응은 어때요?
처음에는 아내가 반대했죠. 제가 다리가 불편하니까 다치거나 힘들까봐 걱정을 많이 했어요. 지금은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지지해줍니다. 라오스에서 큰 행사가 있을 때는 같이 가서 돕기도 해요. 자식들도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하라고 해요. 가족들이 있어 제가 더 열심히 봉사할 수 있습니다.
라오스 현지 대학에 한국어과도 개설했어요.
라오스에서 대학을 나와도 취직할 곳이 없어요. 이들이 한국에 가서 기술을 익히면 더 많은 기회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한국어 공부가 필수죠. 그래서 라오스 수파누봉대학교에 한국어과를 만들었어요. 한국어를 배우면서 자연스럽게 한국 문화를 접하고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태권도나 한국 음식 등 K-문화를 알리는 민간외교관 역할도 열심히 하고 있어요.
혼자서 이렇게 많은 일을 할 수가 있나요?
오히려 혼자라서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어요. 제가 바로 판단하고 결정해서 바로바로 비용을 줍니다. 누군가의 결정을 기다리고 여러 단계를 거치는 것보다 신속하죠. 도움을 주고 싶은 곳에 마음껏 도움을 줄 수도 있고요.
힘에 부치진 않나요?
라오스 아이들의 눈을 보면 힘이 불끈 납니다. 아이들의 눈이 얼마나 순수하고 아름다운지 몰라요. ‘싸바이디(안녕하세요)’ 하며 웃는 아이들의 얼굴이 좋아요. 그 얼굴이 어른거려서 라오스에 얼른 가고 싶어요.
10년 넘게 라오스에서 봉사하면서 느낀 것도 많을 것 같아요.
한 마을에 정수기를 설치해준 적이 있어요. 몇 달 있다 가보니 정수기가 방치된 채로 먼지가 가득했어요. 그때 머리가 띵했어요. 그들에겐 물값을 낼 돈이 없으니 정수기는 무용지물이었어요. 정수기만 설치할 게 아니라 정수기와 함께 1년치 물값도 줘야 한다는 걸 깨달았죠. 프린트기도 마찬가지였어요. 라오스에선 A4 종이 값이 비싸서 프린트기를 쓰지 못해요. 나중에는 잉크를 갈 돈이 없어서 프린트기를 방치하더군요. 봉사라는 게 결국 그런 거였어요. 당장 무얼 하나 주기보다는 지속적으로 그들에게 필요한 걸 찾고 채워줘야 하는 거더라고요.
원래 봉사나 나눔에 관심이 많았나요?
어릴 때 소아마비를 앓아 다리가 불편합니다. 사는 동안 다른 사람의 도움을 참 많이 받았어요. 특히 학교 다닐 때 비가 오면 참 힘들었어요. 우산을 들어야 하니까. 그럴 때 동네 친구가 가방을 들어주곤 했어요. 나도 언젠가 다른 사람을 돕고 살면 좋겠다는 마음을 가지게 됐어요. 라오스에 가기 전에도 목욕 봉사나 오케스트라 공연 등을 하면서 나눔과 봉사를 실천해왔습니다.
활동을 인정받아 국민추천포상이라는 의미 있는 상을 받았습니다.
정말 행복합니다. 그동안 잘했다는 인정과 함께 앞으로 더 열심히 하라는 응원 같아요. 국민들이 주신 상이라 더 뜻깊습니다.
약사님께 봉사란 어떤 의미인가요?
봉사를 하면서 제 삶이 완전히 달라졌어요. 삶이 더 풍요로워졌습니다. 몸도 마음도 건강해졌어요. 봉사를 하면서 계속 성장하는 걸 느낍니다. 신기하죠. 그러다보니 계속할 수밖에 없어요. 봉사는 끝이 없다는 걸 할수록 느낍니다. 그래서 체력 관리도 열심히 합니다. 오랫동안 봉사하려고요.
앞으로의 목표가 궁금합니다.
라오스에서 마약 교육을 하는 게 목표예요. 라오스는 과거부터 마약 생산과 밀매의 중심지로 악명 높은 ‘골든 트라이앵글’이 있어 아이들이 마약에 쉽게 노출됩니다. 학교에서 마약 교육을 제대로 해서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게 하고 싶어요. 한국어 교육도 할 거예요. 어릴 때부터 한국어를 배워서 아이들이 더 많은 기회를 얻었으면 합니다. 한국어를 가르치는 사립학교도 만들 생각이에요. 또 하나, 라오스의 미래를 위한 싱크탱크를 만드는 거예요. 많은 인재와 기업이 모여서 라오스의 발전을 위한 체계적인 연구와 논의가 이뤄지도록 지원할 겁니다. 라오스 아이들이 미래를 꿈꾸며 자랄 수 있게요.
강정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