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시 에이브람스
방탄소년단(BTS)의 소속사인 빅히트 엔터테인먼트에는 여자친구의 소속사 소스뮤직과 세븐틴의 소속사 플레디스를 비롯해 정보기술(IT), 출판, 게임 분야에 이르는 여러 자회사가 있다. 그중 하나인 비엔엑스(beNX)에서 개발, 운영하는 플랫폼 위버스(Weverse)는 팬과 음악가가 직접 소통하고 관련 팬 상품(굿즈)을 구매할 수 있는 커뮤니티 플랫폼이다.
회원 가입은 무료로 위버스 가입자에게만 제공되는 독점 콘텐츠뿐 아니라 위버스에 자리 잡은 음악가의 팬클럽에 가입하거나 유료 콘텐츠를 구매하거나, 그 외 팬 상품 및 콘서트 예매 등을 지원한다. 빅히트 엔터테인먼트는 위버스를 통해 ‘음악산업의 원스톱 서비스’를 구현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최근 빅히트 엔터테인먼트가 상장하면서 화제가 된 것이 바로 이 위버스다. 아이돌을 기획, 관리하는 방식이 아니라 플랫폼 기반의 새로운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기존 콘텐츠 기업들과 차별화되었다는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본질적으로는 카카오와 비슷한 구조다.
▶위버스 누리집
전대미문의 글로벌 음악가 생태계 구축
2020년 12월 기준으로 위버스는 전 세계 229개 국가 및 지역에 서비스되고, 총 가입자는 300만 명 수준이다. 하루에 약 140만 명이 방문하며 월평균 1100만여 개에 이르는 콘텐츠가 생성된다. 위버스에서 콘텐츠를 제공하는 음악가는 방탄소년단, 투모로우바이투게더, 여자친구, 세븐틴, 뉴이스트, 엔하이픈, 피원하모니, CL, 위클리, 선미, 헨리, 드림캐쳐, 그리고 그레이시 에이브람스 등이 있다. 그레이시 에이브람스는 11월 25일에 위버스에 들어왔는데, 최근 크게 주목받고 있는 미국의 싱어송라이터(자작 가수)이자 <로스트> <스타워즈> 등으로 유명한 영화·드라마 제작자 J.J. 에이브람스의 딸이기도 하다.
1999년생, 올해 21세인 그는 젊은 음악가들처럼 사운드 클라우드, 인스타그램, 유튜브, 틱톡 등의 플랫폼에서 알려지면서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처음엔 누구나 업로드할 수 있는 유튜브와 사운드 클라우드 기반으로 활동했다. 누리소통망에서 인기와 음악적 가능성 덕분인지 무명 생활은 그리 길지 않았다. 곧이어 유니버설 뮤직 그룹 산하의 인터스코프 레이블과 계약하고, <지미 팰런의 투나잇 쇼>에 출연하면서 인지도를 높였다. 이제 막 데뷔한 신인 싱어송라이터지만 금방 주류에 진입하며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다시 말해 ‘기대주’인 셈이다.
이런 음악가가 위버스에 합류하면서 위버스의 위상과 방향이 크게 확장되었다. 사실 이전의 위버스는, 빅히트 엔터테인먼트의 선언에도 불구하고 국내 K-팝 아이돌 중심의 서비스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레이시 에이브람스가 참여하면서 이런 이미지가 깨진 셈이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두 가지 정도를 짚어볼 수 있다.
먼저, 2020년 초 전 세계에서 1000만 건 이상의 내려받기를 기록한 위버스의 규모다. 세계 200개국에 서비스되는 위버스는 영어, 중국어, 일본어 번역을 기본으로 제공하는데, 언어는 계속 늘려갈 예정이다.
빅히트 엔터테인먼트가 얘기한 ‘플랫폼 기반의 빅히트 생태계’는 위버스의 이런 영향력과 성과로 수렴된다. 위버스 내에서는 음악가와 팬의 직접적인 소통, 팬들을 위한 독점 콘텐츠, 그리고 관련 팬 상품의 판매까지 한 번에 이뤄진다. 이런 구조에서 유니버설 뮤직의 음악가들이 참여한다면 위버스는 그야말로 전대미문의 글로벌 음악가 생태계를 구축할 수도 있다. 적어도 그런 가능성은 높아지는 셈이다.
▶위버스 누리집
미국 중심 음악산업 구조 균열
또 하나는 유니버설 뮤직 그룹의 영향력이다. 유니버설 뮤직 그룹은 유럽 최대 미디어 그룹인 비방디(Vivendi)가 대주주인데, 중국의 텐센트도 10%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음악가와 음악 점유율을 확보한 회사이기도 하다. 1998년에 유럽의 폴리그램(PolyGram)을 인수하고, 2011년에는 EMI의 음악 사업 부문을 인수하면서 세계 최대 규모의 자료 보관소(아카이브)를 구축했다. 이를 기반으로 한국 가수들을 포함한 전 세계 대다수 음악가들의 글로벌 유통을 맡고 있다. 방탄소년단의 글로벌 유통도 유니버설 뮤직에서 맡고 있다. 텐센트와 협력으로 미국 시장뿐 아니라 아시아와 유럽에서도 활발한 사업을 벌이고 있고, 나아가 중국 음악가들의 미국 진출 및 글로벌 진출도 높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유니버설 뮤직 그룹의 전폭적, 전략적 지지를 받고 있는 그레이시 에이브람스가 위버스와 결합한 점은 단순히 해외 음악가가 참여한다는 사실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이를 시작으로 이후 국제 규모의 거물 음악가들도 위버스에 입점할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로써 빅히트 엔터테인먼트는 음악 회사가 아니라 정보기술 회사로 확장될 가능성도 높아진다.
이런 방향은 어떤 결과로 이어질까. 현재로선 알 수 없다. 그러나 향후 빅히트 엔터테인먼트와 위버스가 글로벌 서비스와 기업으로 확실하게 자리 잡고, 동시에 음악산업의 구조가 지금보다 더 많이 디지털, 가상세계, 열성 팬(팬덤) 중심으로 전환될 때 오랫동안 견고하게 유지되던 미국 중심의 음악산업 구조에 균열이 생길 수도 있다. 무엇보다 전 세계 젠지(generation Z·1990년대 중반부터 2001년대 중반에 출생한 세대) 세대를 위한 새로운 서비스가 탄생하며 유튜브, 인스타그램, 틱톡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경쟁할 수 있다. 새삼, 5년쯤 뒤에 빅히트 엔터테인먼트는 어떤 회사가 되어 있을까, 상상하지 않을 수 없다.
차우진_ 음악평론가. 미디어 환경과 문화 수용자들의 라이프스타일 변화에 특히 주목하고 있다. <청춘의 사운드> <대중음악의 이해> <아이돌: H.O.T.부터 소녀시대까지…> <한국의 인디 레이블> 등의 책을 썼고, 유료 콘텐츠 플랫폼 ‘퍼블리’에서 <음악 산업, 판이 달라진다> 리포트를 발행했다. 현재는 ‘스페이스 오디티’라는 스타트업에서 팬 문화, 콘텐츠, 미디어의 연결 구조를 고민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