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최초 제로 웨이스트 카페
‘얼스어스’ 길현희 대표
‘베리베리베스트로베리요거트케이크’, ‘화가난다화가나 맛있어서 너무화과파르페’, ‘눈누난나바나나크림치즈케이크’…. 이름부터 독특한 이 케이크들은 카페 ‘얼스어스(earth us)’를 대표하는 인기 메뉴다. 서울 마포구 연남동에 위치한 33㎡(10평) 남짓한 작은 카페는 사계절 제철 재료를 활용해 만드는 개성 강한 디저트를 맛보러 온 손님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주말이라면 한 시간 넘게 대기해야 할 정도다. 그런데 가게에 들어가는 사람들 손에 뭔가 독특한 것이 들려 있다.
이 달콤함을 가게 밖으로 가지고 나오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디저트를 담을 포장용기를 직접 챙겨와야 한다는 말이다. 그중 사각의 김치통은 최고의 인기 아이템이다. 카페에 가는 데 김치통이 웬 말이냐고? 납작한 김치통 뚜껑 위에 케이크를 얹은 뒤 본체를 거꾸로 씌우는 방법은 이곳의 대표적인 포장 방법이다. 놀라긴 이르다. 도시락통, 냄비, 압력밥솥 내솥 등 상상을 뛰어넘는 주방용품이 대거 동원된다.
카페에 갈 때 준비물이 필요한 이유는 하나, 이곳에선 일회용품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길현희 대표는 2017년 창업을 하면서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내걸었다. 이 때문에 매장 안에 머무를 때도 손님들은 다회용기만 쓸 수 있다. 플라스틱 빨대 대신 스테인리스 빨대를 제공하며 종이휴지가 있어야 할 자리엔 빨아 쓰는 수건을 비치해뒀다.
‘유난 떤다’, ‘손님을 가르치려 한다’…. 창업 초기엔 불평이 쏟아졌다. 그럼에도 길 대표는 끝까지 원칙을 고수했다. 잘나가는 카페도 버티기 어려운 포화 상황에서 현재 얼스어스는 지점(서촌점)까지 낼 정도로 사업을 확장했다. ‘친환경=비효율’로 치부되는 세상에서 ‘국내 1호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쓰레기를 배출하지 않는) 카페’가 지금까지 버틸 수 있던 비결은 뭘까? 길 대표를 만나 이 같은 궁금증에 대한 해답을 들었다.

‘반찬통’이 어느 순간 카페의 상징처럼 돼버렸다.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내걸고 창업한 탓에 테이크아웃 주문을 받을 수 없었다. 간혹 텀블러를 가져오는 손님들에게 음료를 포장해주긴 했지만 디저트를 포장할 생각은 전혀 못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손님이 집에서 반찬통을 가져와 케이크를 싸달라는 게 아닌가. 아, 이런 방법이라면 얼마든지 디저트도 포장해줄 수 있겠다 싶었다. 인터넷에 올라온 각종 포장용기는 온전히 손님들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됐다.
가장 기억에 남는 용기는 뭔가?
반찬통 뚜껑에 케이크를 올린 뒤 몸체를 거꾸로 씌우는 방법 역시 한 손님의 생각이었다. 이전까지는 깊은 그릇에 디저트를 담느라 애를 먹었다. 플라스틱 김치통, 냄비를 들고 오는 분들이 가장 많고 밥솥의 내솥, 주전자, 웍(중국식 요리에 쓰는 궁중팬)을 들고 오기도 한다. 카페 인근 감자탕 집에서 반찬그릇을 빌려온 손님도 있었다.
매장 내에서도 일회용품을 제공하지 않는다. 불편함이 적지 않을 듯한데.
카페의 취지를 알고 찾아오는 분이 대부분이다 보니 설명을 하면 대부분 이해해준다. 하지만 대놓고 ‘불쾌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선민의식이 대단하다’며 이용후기에 악플을 다는 사람도 있다. 이미 매장에서 잔뜩 화를 내놓고 분이 안 풀린다며 집에 돌아가 다시 전화를 건 손님도 있었다.
불만을 가진 손님은 어떻게 설득하나?
‘죄송하다’고 말씀드리지만 특별히 설득을 하진 않는다. 나와 다른 생각을 누가 강요하면 더 반발심이 생기지 않나? 내가 환경을 위한다고 해서 모두가 이 방식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손님들이 매장에 있는 동안이라도 일회용품을 안 쓰는 생활을 경험해본다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생각한다.
길 대표는 어릴 적부터 ‘불 꺼라’, ‘물 아껴 써라’는 소리를 귀에 못이 박히게 듣고 자랐다. ‘샴푸 펌프는 딱 한 번만’, ‘가스레인지 불은 냄비 바닥 크기보다 더 커선 안된다’는 ‘신박한’ 잔소리도 있었다. 어린 나이에도 자원을 낭비하면 안된다는 말로 알아들었다.
‘친환경 DNA’가 발현된 것은 직장을 다니던 때다. 국내 카페에서 일회용 커피컵에 카페의 로고를 박은 컵홀더를 끼워주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던 시기, 이에 반발하는 의미로 집에서 커피를 내려 예쁜 잔에 담아 마시거나 텀블러에 넣어 챙겨 다니는 모습을 개인 누리소통망(SNS)에 올렸다. 이것이 뜻밖에 큰 호응을 얻었다. 환경보호를 나 혼자 실천하는 홈카페 말고 다 같이 할 수 있는 진짜 카페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때문에 손님들은 물론 직원들도 매장에선 일회용품을 쓰지 않는다. 덕분에 하루에 배출되는 일반쓰레기 양은 20리터 쓰레기봉투를 30%채우는 정도에 불과하다.
환경을 지키려 카페를 열었다니. 창업을 한 계기가 독특하다.
애초에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창업한 것이 아니다. 커피숍 아르바이트를 하며 사장님들이 힘들어하는 걸 보면서 오히려 ‘카페 창업은 절대 하면 안되겠다’고 생각했다(웃음). 그런데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고도 커피를 맛있고 분위기 있게 즐기는 내 모습에 많은 사람이 호응해주는 걸 보며 생각이 달라졌다. 세상에 이런 카페가 하나쯤 있어도 좋겠다 싶었다.
제품을 만들 때도 일회용품을 일절 쓰지 않는다고?
디저트를 만들 때 필요한 유산지, 일회용 랩, 생크림 짤주머니 등이 대표적이다. 가령 짤주머니를 사용하지 않는 대신 아이스크림 스쿱으로 크림을 퍼 빵 위에 얹는 식이다. 애초에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고도 만들 수 있는 메뉴만 만든다. 특히 개발 단계에서 디자인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한다. 보통 메뉴 테스트를 하는 과정에서 버려지는 식재료의 양이 엄청나다. 그래서 사전 연구를 많이 하고 테스트는 최소화하려고 한다.
설거짓거리가 무척 많을 것 같다. 이는 곧 인건비로 연결되는 것 아닌가?
설거짓거리가 많아 인력을 더 고용해야 할 정도라면 정말 장사가 잘되는 곳이다. 그런 카페라면 좀 더 환경에 대해 고민하는 게 옳지 않을까. 일회용품을 안 쓰는 것이 모두가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이 되면 좋겠다.
직원들의 불만은 없나?
우리 매장에선 화장실 쓰레기통에 비닐을 씌워놓지 않는데 어느 날 직원이 집게로 일일이 쓰레기를 담기 힘들다며 생분해봉투를 쓰면 되지 않겠냐고 하더라. 의견을 받아들였는데 나중에 다른 직원이 생분해봉투도 썩는 데 시간이 걸리는 건 마찬가지라고 해 다시 봉투를 없앴다. 힘든 점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부딪히고 고민하는 시간을 통해 더 나은 방향으로 나갈 수 있다고 믿는다.

큰돈을 벌기 위해 가게를 연 것은 아니었지만 코로나19 유행 땐 절벽 끝에 다다른 심정이었다. 많은 가게가 포장, 배달로 돌파구를 찾는 상황에서 ‘무포장 카페’가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없었다. 포기 대신 선택한 것은 ‘버티기’였다. 수익이 ‘0’을 찍는 날에도 가게 문을 열었던 날의 목표를 되새겼다.
창업 9년 차. 이제는 적잖은 노하우가 쌓였음에도 길 대표는 “제로 웨이스트 카페 운영을 추천하기는 쉽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정작 자신은 한길을 고집하는 이유가 뭘까? 돌아온 대답은 이랬다. “대단한 소신을 가져서도, 세상에 큰 파급력을 끼치기 위해서도 아니다. 그저 그것이 내가 할 수 가장 당연한 일이라서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은 없었나?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정부에서 3개월간 매장 내 취식 금지 명령을 내린 적이 있다. 우리에겐 청천벽력 같은 얘기였다. 이때만이라도 일회용기를 사용해 포장·배달서비스를 해야 하나 고민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돈을 벌면 행복할까?’ 생각해보니 ‘아니다’였다. 애초에 일회용품은 나에겐 없는 선택지라고 생각하며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지금도 포장을 통한 매출은 포기해야 하는 부분이 큰데.
다른 부분에서 매출을 메워야 하기 때문에 계속 사업을 확장하려고 한다. 끊임없이 디저트를 개발하고 분점을 내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전에 없던 카페를 운영하며 얻은 것과 잃은 것이 있다면?
요즘엔 디저트로 유명해진 카페들은 대량 주문을 통해 큰 수익을 올리기 쉽다. 우리도 그게 가능했다면 지금보다 훨씬 큰돈을 벌 수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친환경 카페”라고 말해주는 단골손님, “이런 곳에서 일하며 나도 함께 성장하는 느낌”이라는 직원들을 보면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구나 싶다.
당장 바뀌는 게 없더라도 환경보호를 실천해야 하는 이유를 묻는다면?
우리가 먹고 마시는 모든 것은 땅, 즉 지구에서 온다. 오염된 땅에 살면 우리 몸도 오염된다는 얘기다. 당장 전 세계 커피 생두 가격이 치솟는 이유도 환경오염과 관련이 깊다. 식재료 가격이 폭등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지구와 우리는 연결돼 있다’는 말은 결코 먼 미래의 일이 아니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조윤 기자
‘탄소중립포인트제’ 아직 가입 안하셨나요?
텀블러 사용하고 연 7만 원 포인트
3년 만에 180만 명 참여
탄소중립포인트제에 가입한 국민이 3년 만에 180만 명을 돌파한 것으로 나타났다(2024년 12월 말 기준). 이에 환경부는 올해 참여자를 더욱 확대하기 위해 ‘공영자전거 이용’과 ‘잔반제로 실천’ 항목을 추가로 도입하기로 했다.
탄소중립포인트제(녹색생활 실천 분야)는 일상 속에서 탄소중립 녹색생활 실천활동을 하면 현금처럼 사용가능한 포인트를 받을 수 있는 제도다. 10개 항목을 모두 합쳐 1인당 연간 최대 7만 원을 받을 수 있다. 항목은 ▲일회용컵 반환(300원/개) ▲텀블러·다회용컵 이용(300원/개) ▲다회용기 이용(1000원/회) ▲친환경제품 구매(1000원/개) ▲폐휴대폰 반납(1000원/개) 등이다.
점주에게도 혜택이 있다. 소상공인이라면 다회용컵 및 다회용기 이용 실적에 연 최대 15만 원까지 포인트를 지급받는다. 자세한 내용은 누리집(www.cpoint.or.kr/netzero)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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