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업미래 만드는 안해성 ‘포천딸기힐링팜’ 대표
서울에서 50㎞, 경기 포천에서 스마트팜(지능형 농장) ‘포천딸기힐링팜’을 운영하는 안해성 대표를 얼핏 평범하게 성공한 청년 귀농인으로만 생각하기 쉽다. 대기업에 다니다 고향으로 돌아와 4628㎡(약 1400여 평)의 넓은 딸기농장을 열었고 연 매출액이 3억 원에 가깝다는 얘기만 들으면 그렇다. 그러나 포천딸기힐링팜에 발을 들여보면 안 대표에게는 청년농업인 이상의 이야깃거리가 숨어 있다는 사실을 금방 알 수 있다.
당장 포천딸기힐링팜에 찾아오는 사람이 매년 1만~2만 명에 달한다. 농장 체험프로그램을 이용하기 위해서다. 포천딸기힐링팜의 입구 부근은 키즈카페처럼 돼 있다. 아기자기한 도구들로 꾸며진 모래놀이터가 있고 작은 텐트들도 줄 이어 놓여 있다. 직접 따온 딸기를 씻어 먹는 아이들, 미끄럼틀이며 썰매를 타며 소리를 지르는 아이들, 모래놀이에 빠져 모래범벅이 된 아이들의 사진을 찍는 부모들, 직접 만든 딸기아이스크림을 먹는 가족들로 포천딸기힐링팜의 넓은 공간은 쉬는 날 없이 매일 시끌벅적하다.
방문객들이 활용하는 공간 외에도 포천딸기힐링팜에는 남는 공간이 많다. 2층에서는 종종 ‘교육’이 이뤄진다. 안 대표가 가지고 있는 또 다른 직함 중 하나가 ‘귀농닥터’ 멘토다. 귀농귀촌종합센터에서 운영하는 귀농닥터 서비스는 귀농귀촌 희망자 등이 전문가의 멘토링(개별상담)을 받을 수 있는 정책이다. 귀농닥터로 임명될 수 있는 전문가는 지방자치단체의 추천을 받는 등의 인증된 인물이어야 한다. 포천딸기힐링팜에서는 청년창업농 교육도 이뤄진다. 농림축산식품부에서 매년 선발하는 청년창업농은 다양한 지원프로그램을 통해 청년들이 농촌에 정착해 안정적인 농업을 할 수 있게 돕는 정책이다.
이렇게 포천딸기힐링팜을 직접 거쳐간 교육생만 1년에 1000여 명에 달한다. 안해성 대표는 “사실 포천딸기힐링팜의 주된 정체성은 ‘교육’에 있다”고 한다. 재능기부에 가까운 일이지만 안 대표는 딸기농장을 운영하는 만큼 후계농 교육에도 신경을 쏟고 있다.
그 이유는 안 대표 스스로가 정체성을 귀농인보다 ‘청년창업인’에 더 비중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안 대표는 “농업도 창업”이라고 여러 번 강조했다. “창업이라는 자세로 시작하지 않으면 실패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평소 지론대로 “후배들이 성공한 창업인이 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나의 책무”라며 교육에 임하고 있다는 것이 안 대표의 말이다. 아이들이 뛰어노는 소리가 들리는 사무실에서 안 대표와 이야기를 나눴다.

‘농업인이 되겠다’고 마음먹으면 보통 햇볕 아래서 땀 흘리는 장면을 상상하곤 한다. ‘농업은 창업’이라는 자세는 사뭇 다르다.
교육을 할 때 항상 하는 얘기지만 농업이야말로 ‘창업의 끝판왕’이다. 농업을 전통적 농사 개념으로 접근하면 실패하기 십상이다. 전통적 농사라면 파종하고 수확하고 판매하는 정도의 과정만 생각해야 한다. 그러나 창업으로서 농업은 정보기술(IT)을 기반으로 한 제조업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생산할 작물을 결정하고 농지를 사서 스마트팜을 설계하는 과정에서 알아야 하는 법령만 두 손 가득하다. 그걸 다 파악한 상태에서 시설을 구축하고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나에게 맞는 스마트팜을 설계하면 생산까지 책임져야 한다. 수확물을 얻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판로를 개척해야 하는데 요즘은 여기에 서비스까지 제공한다. 단순히 농산물을 판매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체험프로그램 같은 것을 통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것이다. 이걸 ‘6차 산업화 농업’이라고 한다.

6차 산업화 농업이라는 말이 낯설다. 농업이 전통적 형태에서 변화한 것 같다.
국내에서는 공식적으로 ‘농촌융복합산업’이라고 한다. 6차 산업이라는 건 1차 산업이 농림수산업이고 2차 산업이 제조업이다. 3차 산업이 유통·서비스업인데 이걸 다 더해 농업은 6차 산업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수확물을 얻기 위해 스마트팜 인프라(기반시설)를 조성해야 한다는 것이고 그걸 유통하는 새로운 경로는 물론 체험농장이나 교육프로그램처럼 부가가치를 창출함으로써 미래 농업에 가까워질 수 있다는 얘기다.
포천딸기힐링팜은 농촌융복합산업 현장이라고 할 수 있나?
농림수산식품교육문화정보원(농정원)에서는 ‘6차 산업 인증제도’를 운영한다. 포천딸기힐링팜은 공식적으로 1·2·3차 산업을 모두 수행하고 있다는 인증을 받았다.
창업한 지 1년 만인 2020년에는 영농정착 우수사례로 농식품부장관상 최우수상을 수상했고 ‘2022 대한민국 농식품 ESG 경영대상’에서도 상을 받았다. 기술적으로도 포천딸기힐링팜은 성과를 내고 있다. 2021년에는 ‘K-에코디지털 아이디어 공모전’에서 환경부장관상을 받았고 특허도 여럿 출원했다.

2차 산업으로서 포천딸기힐링팜은 어떤 기술적 특징을 가졌나?
포천딸기힐링팜에서 개발한 ‘그린큐브’가 바로 환경부장관상을 받은 탄소저감 기술이다. 일종의 탄소거래 플랫폼인데 특허도 출원했다. 얼마 전 만들어진 연구개발(R&D) 센터도 농장에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로부터 16억 원을 지원받아 집에서 쉽게 작물을 키울 수 있는 기술을 개발 중이다. 스마트팜으로만 봐도 포천딸기힐링팜은 독보적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 드는 난방비만 해도 다른 농장의 10분의 1 수준으로 적다. 다른 건 몰라도 우리 농장은 최고 ‘가성비’를 내는 딸기농장이다.
생산성을 높이는 ‘가성비’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은 기술적 지식을 갖춘 안 대표의 독특한 이력 덕분인 것 같다. 맨 처음 영농 창업의 꿈을 꾸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지질학을 전공하고 건설회사에 다니고 있었지만 농사일에 익숙했다. 아버지가 이곳 포천에서 농사를 짓고 계셨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내가 영농 창업을 하겠다고 하자 온 가족의 반대가 극심했다. 사실 창업하는 순간까지 반대를 꺾지 못했다. 그냥 밀고 나갔다. 오래 준비한 만큼 확신이 있었다. 교육을 받거나 사업을 구상하는 것은 2015년부터 해온 일이었기 때문이다. 성과는 금방 나왔다.
체험프로그램은 어떤 생각에서 시작했나?
이제 농업은 6차 산업이다. 농업체험, 농업교육 서비스는 자연스럽게 뒤따르는 것이다. 특히 영농 창업인에게 강조되는 것은 낙후된 농촌지역을 활성화하는 일이다. 교육생들에게 항상 하는 이야기지만 청년농업인에게는 농지에서 수확물을 생산하는 일을 넘어서 지역경제를 일으킬 책임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영농 창업인은 매우 다양한 지원을 받는다.
후계농 교육에 앞장서는 이유도 그런 책임감 때문인가?
확실히 그렇다. 받은 도움만큼 돌려줘야 한다는 책임감도 있다.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영농 창업이 어렵지만 밝은 전망을 가지고 있다는 것, 청년농업인이 성공하면 지역도 살아난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창업 초기부터 유튜브 채널 ‘안스팜티비’를 개설해 각종 영상을 제작하고 있다. 책 <대기업 퇴사하고 농사를 짓습니다>도 썼다. 이 책을 창업을 준비하는 청년과 농업 관련 기관에 무료로 배포했다. 매년 1000명에게 강의를 하기도 하지만 경북 스마트팜혁신밸리와 협약을 맺어 1년 혹은 그 이상 우리 농장에서 인턴십처럼 일하는 청년들도 있다. 지금 직원들이 지원프로그램을 통해 배우러 온 사람들이다.
직원과 교육생들은 무엇을 배워가나?
가볍게는 스마트팜 운영 방식과 시스템 같은 것도 배우지만 넓게 보면 영농 창업에 대한 가치관을 배워간다. 맨 처음 이곳 농지를 사려고 했을 때 많은 사람이 반대했다. 비료 냄새가 나고 아무 것도 없는 곳이었다. 이제 매년 1만~2만 명의 사람이 찾으니까 마을 분위기가 달라졌다. 주변에 편의점도 생길 예정이고 레스토랑도 들어선다. 청년 창업인은 이런 역할을 해야 한다.
계속해서 부가가치를 창출해야 한다는 의지가 굳건한 것 같다.
실제로 계속해서 무언가를 개발하고 시도하고 있다. 이를 테면 체험농장에서는 앞으로 치유농업을 해볼 계획이다. 치유농업은 농사 자체가 생업이 아니라 신체적·심리적 치유를 위해 짓는 것을 말하는데 앞으로는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분야다.
수출 판로도 개발하고 있다. 포천딸기힐링팜을 거쳐간 직원이 50명이 넘는다. 이들과 단체 메신저 방을 만들어 운영 중 어려운 점을 나누고 서로 격려하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 이 ‘힐링팜’ 그룹이 모여 딸기 수출을 함께하는 거다. 그룹 형태의 계약 재배를 하고 있고 앞으로 할 계획이다.
쉬는 시간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일에 몰두하는 것 같다.
나는 오히려 농장을 관리하거나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대신 시스템을 개발하고 교육을 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쏟는다. 대신 스트레스가 쌓일 때면 농장에 온다. 농장에 와서 딸기들을 보면 스트레스가 풀린다. 벌이 날아다니는 소리, 아이들이 웃는 소리, 이런 것들은 어디서도 듣기 힘든 무공해 소리다. 농장에서 힘을 얻는다.
김효정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