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손승연은 뮤지컬‘보디가드’에서 레이첼 마론을 연기했다. ⓒ24th Street
가수가 되고 나니 많은 사람이 물었다. 노래를 하지 않았다면 무엇이 됐겠느냐고. 그럴 때마다 이렇게 답했다. “노래 말고 다른 걸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음악이 좋아서 노래를 시작했고 가장 행복한 순간도 노래를 부를 때다. 꽤 오래전부터 그랬다.
열네 살 무렵으로 기억한다. 당시 난 여느 중학생들처럼 친구들과 어울려 노래방에 가는 걸 좋아했다. 흥이 많았던지라 장기자랑 무대에 서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교내 팝송대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들은 친구들이 내게 참가를 권했다. 솔깃했다. 다만 ‘팝송’을 불러야 한다니 선곡을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때마침 어린 학생이 ‘I have nothing’을 노래하는 동영상을 보게 됐다. ‘나도 이 노래 부를 수 있을 것 같은데…’ 원가수를 찾아보니 휘트니 휴스턴이란다. 원곡을 놓고 무작정 연습에 들어갔다.
팝송대회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수상과 동시에 축제에 나갈 수 있는 기회도 주어졌다. 200명 앞에서 같은 노래를 불렀다. 그날 관중이 보낸 박수와 함성을 결코 잊지 못한다. ‘가수를 해야겠다’고 결심한 첫 순간이었다. 휘트니 휴스턴이 내 우상이 된 날이기도 했다.
그렇게 10년 넘은 시간이 흘렀다. 가수로서 유명 선배 가수의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기회도 많아졌다. 우상을, 그의 노래를 할 수 있는 순간까지 왔다. 2016년 국내 초연 뮤지컬 ‘보디가드’의 ‘레이첼 마론’ 역에 추천된 것이다. 휘트니 휴스턴 주연의 동명 영화 ‘보디가드’가 원작인 작품 속 여주인공이라니. 오디션에 도전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노래뿐 아니라 연기적 표현도 평가받아야 했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연기를 해본 건 오디션이 처음이었다. 그때만큼 얼굴 전체가 새빨개질 정도로 긴장한 것도 처음이었다. 보다 섬세한 표정과 몸짓을 담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했다. 간절함이 닿았나 보다. 레이첼 마론이 될 수 있는 최종 관문을 통과했다.
레이첼 마론은 휘트니 휴스턴이 연기한 대표 캐릭터다. 내가 레이첼 마론으로 분할 때면 나의 우상을 만나는 기분이 드는 것은 그 때문이리라. 감히 그의 삶을 온전히 흡수한 채 연기할 순 없어도 회를 거듭할수록 공감의 도가 점점 더 깊어짐을 느꼈다. 그래서였을까. 무대에서 소화해야 하는 열 곡 중 ‘One moment in time’을 가장 이해할 수 있었다. “아픈 날도 마주하곤 했죠. 나를 봐요. (…) 그 영원 같은 자유가 내 안에 내 삶에 가득하길.” 유독 닮고 싶었던 사람의 일생에 잠시 머무는 듯했다.
사실 그 누구보다 휘트니 휴스턴과 그의 노래를 오랫동안 사랑한 덕분에 뮤지컬 곡을 외우는 덴 무리가 없었다. 난관이라면 연기였다. 발연기라는 지적만 받지 말자는 심정이었다. 스스로 최선을 다해 연기를 공부했고 상대 배우에게서 많은 도움도 받았다. 관객이 응답했다. 전석 매진 기록을 세운 건 당연하고 연장 요청까지 들어왔으니 말이다.
어느덧 7년 차에 접어든 가수지만 뮤지컬 배우로서는 이제 막 한 발을 뗀 셈이다. 여전히 도전하고 있으며 또 도전할 것이다. 요즘 연습에 한창인 단독 콘서트는 그 일환이다. 기존 손승연과 또 다른 손승연을 보여주고 싶다. 여러 장르의 음악을 할 수 있는 가수임을, 나아가 한국 음악이 얼마나 다양한지를 보여주고 싶다. 조금 더 욕심을 낸다면 나의 음악이 그리고 노래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 꿈이 되길 바라본다.

손승연│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