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동물병원생명사회적협동조합
서울 마포구 성산동 큰길에서 주택가로 접어들자 ‘우리동생 동물병원’ 간판이 달린 2층짜리 주택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동생’은 ‘우리동물병원생명사회적협동조합’을 줄인 말이다. 2015년 6월 개원한 세계 최초 협동조합 동물병원이다.
1층 병원에 들어서자 1년 10개월 된 치와와 ‘피클’이 진료실로 들어가고 있었다. 김재윤 원장은 “광견병 중화항체가 검사를 위해 피클의 혈액을 채취해 검역원에 보내려 한다”고 설명했다. 피클은 진료실은 물론 의료진의 손길이 익숙한 듯 피를 뽑는 내내 얌전하게 몸을 맡기고 있었다.
피클의 보호자인 전윤성 씨는 “캐나다에 취업해 정착할 계획으로 이주하는데 귀국할 경우를 대비해 광견병 중화항체가 검사를 미리 받으러 왔다”고 말했다. 1년 전 피클의 중성화수술을 위해 동물병원을 검색하다 우리동생을 알게 된 그는 “협동조합 동물병원이면 믿고 편하게 올 수 있을 것 같아 조합원으로 가입했다”고 했다.
조합원은 가입할 때 5만 원 이상 출자하고 매달 1만 원의 조합비를 내야 한다. “피클이 설사를 자주 해 매달 한 번 정도 왔는데 여기 수의사들이 세심하게 잘 봐주고 과잉 진료 걱정 없이 믿을 수 있어 출자비와 조합비가 크게 부담된다는 생각은 안 들었어요.”

병원 지속 위해 스스로 혜택 줄여
고양이 세 마리를 키우는 김수진 씨는 우리동생이 개원하자마자 조합원으로 가입했다. 고양이는 특성상 자주 아픈 게 아니라 3~5년 동안 아무 일도 없다가 갑자기 아파 동물병원을 찾게 된다. “그때마다 병원이 없어졌거나 수의사가 바뀌곤 해서 고양이들이 생애 내내 안정적으로 관리받을 수 있는 병원이 있었으면 하고 바랐다”고 말했다.
김수진 조합원이 가입할 때만 해도 조합비 없이 출자금 5만 원 이상만 내면 진료비 20%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김현주 상임이사는 “동물병원은 정해진 표준수가가 없고 더더구나 협동조합 동물병원은 선례가 없어 일단 조합원이면 진료비를 20% 할인해줬는데 계속 운영하다 보니 적자가 너무 심해졌다”고 말했다.
김 조합원은 “처음에는 진료비가 싼 게 마음에 들었지만 동물병원의 소비자이자 운영자 입장이 되고 보니 ‘이렇게 계속 할인 혜택을 받다가 우리 조합이 망하면 어떡하지’ 걱정이 들었다”고 했다. “고양이들의 생애주기를 안정적으로 관리해주길 원했는데 병원이 없어지면 안 되잖아요. 조합원들과 밤을 새워가며 토론을 벌인 끝에 지속 가능한 운영을 위해 할인 혜택을 줄이기로 했죠.”
그 뒤로도 지속 가능한 운영 방식과 할인 혜택을 놓고 끝장 토론은 계속 이어졌다. 2016년 12월 조합비를 신설했고 줄어든 할인 혜택을 다시 늘리기도 했다. 현재는 진료 항목에 따라 0%부터 30%까지 할인 폭이 다양하다.

초기엔 ‘빨대 병원’ 의심도 받아
초기에는 수의사가 계속 바뀌면서 조합원들의 걱정이 컸다. 현재 대표 원장을 맡고 있는 김재윤 원장이 2016년 11월부터 근무하면서 안정감을 찾기 시작했다.
경기도 광주에서 개인 동물병원을 7년 동안 운영하던 그는 조합원이었던 단골손님의 소개로 정경섭 초대 이사장을 만났다. “동물병원을 협동조합 형태로 운영하는 건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에 하나밖에 없는데, 수의사를 못 구해 그 하나마저 없어지게 생겼다면서 수의사를 구해달라는 이사장의 부탁을 받았다”고 했다.
주변에 수소문해보니 수의사들 사이에는 “협동조합에 참여하는 수의사는 배신자”라는 분위기가 있었다. 한 수의사 매체는 이런 식의 협동조합이 생기는 것에 대해 의견을 묻는 투표를 진행할 정도로 동물병원 협동조합은 뜨거운 논란거리였다.
김현주 상임이사는 “보호자들이 직접 협동조합을 만들어 동물병원을 운영한다고 하니 가격을 막 후려쳐 모든 소비자를 빨아들이려는 이른바 ‘빨대 병원’이 아니냐는 의심도 받았다”고 했다. 김 조합원은 “처음엔 ‘일반 동물병원에서 만족하지 못하는 진상 소비자들이 모여 수의사를 고용한다더라’는 소문도 돌았다. 지배 구조가 사무장 병원과 비슷해 수의사 입장에서는 싫었을 것 같다”고 했다.

매출 압박 없어 필요한 진료만
김 원장은 정 이사장과 세 번째 만남에서 믿을 수 있는 동물병원을 만들자는 협동조합의 목표에 동참하기로 결정했다. “대학병원에서 근무했고 직접 병원도 운영해봤지만 제일 힘든 게 과잉 진료를 의심하는 보호자들의 눈길이었어요. 의료서비스를 받는 조합원들이 수의사를 고용하는 협동조합 형태여야 믿을 수 있는 병원을 만들 수 있다는 정 이사장의 말에 동의했습니다.”
영리 동물병원에서는 진료한 동물을 입원실이나 수술실로 보내면 받는 성과급이 기본급보다 더 많은 경우도 있다. “10만 원짜리 검사 한 번 하려면 과잉 진료를 의심하는 보호자에게 끝도 없이 설명해야 하는데 여기서는 의심하는 눈빛을 안 받으니 스트레스가 굉장히 줄어들었습니다.”
김 상임이사도 “다른 수의사도 ‘매출을 늘리기 위해 추가로 진료해야 한다는 압박이 없는 게 우리동생의 장점’이라고 하더라”고 전했다. 김 조합원은 “진료비에 대한 불신 때문에 동물병원 여러 곳의 진료비를 비교하는 반려동물 보호자도 큰 스트레스”라고 했다. “인터넷에서 ‘그 선생님 어때’라는 평판을 찾아보지 않아도 되는 안정성과 신뢰성이 협동조합의 가장 큰 장점이죠. 그냥 믿고 맡길 수 있는 단골 병원이 있으면 편하잖아요.”
보호자-수의사 오해 푼 ‘정책 시험장’
우리동생은 진료비를 다른 병원과 비교해 책정하지 않는다. 운영위원회에서 원가에다 인건비, 고정비 등 지출을 고려해 합리적으로 결정한다. 김 원장은 “중요한 예방의학 쪽은 조금 손해 보더라도 저렴하게 책정하되 정형외과 수술비 등은 조금 비싼 편”이라며 “협동조합 지속을 위해 조합원들이 그렇게 합의해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김 조합원은 “수의사 한 사람의 독단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관여해 진료비를 책정했고, 그 원가에 대한 정보를 언제든지 볼 수 있다는 점이 신뢰의 토대를 쌓은 것 같다”며 “이런 과정을 겪으며 수의사의 입장도 이해하게 됐다”고 했다. “우리동생은 반려동물과 동물병원에 대한 작은 정책 시험장이라고 생각해요. 소비자는 동물병원을 신뢰하고 동물병원은 정직하게 이윤을 창출할 수 있는 제도를 정부가 고민하듯 소비자이자 운영자의 입장인 조합원은 동물병원의 바람직한 지속가능성을 고민하거든요.”
김 상임이사는 “예전에 김 원장이 ‘수의사와 보호자 사이의 깊은 오해를 풀 수 있는 곳이 우리동생’이라고 한 적이 있는데 그 말에 정말 공감한다”며 “우리동생은 동물과 사람이 더불어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마을을 합동으로 만드는 곳”이라고 정의했다.
글·사진 원낙연 기자

정부, 동물병원 진료비 조사·공개 100개 질병·진료 항목 표준화 보급
정부가 전국 동물병원의 진료비를 조사해 2023년 상반기까지 공개한다. 2024년까지는 동물병원에서 사용하는 질병명과 진료행위 항목 100개에 대한 표준을 개발해 보급한다. 농림축산식품부는 9월 6일 이런 내용을 담은 ‘반려동물 진료분야 주요정책 추진계획’을 발표했다.
최근 동물병원 서비스 수요는 커지고 있지만 병원별 진료비 편차, 진료비에 대한 사전 안내 부족 등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정부는 이를 해소하기 위해 우선 소비자단체, 동물의료 관련 단체 등과 함께 동물병원의 진료비 현황을 조사해 지역별로 공개하기로 했다.
2022년 안에 진료현황 조사설계 관련 연구용역을 마무리하고 2023년 1월부터 전국 동물병원 4900여 곳을 대상으로 진료 항목별 진료비, 산출 근거, 진료 횟수 등을 조사한다. 조사 결과는 2023년 6월까지 공개할 예정이다. 지역별 최저·최고·평균·중간 비용 등을 분석한 뒤 농식품부 누리집 등에 안내한다.
또 병원마다 질병 명칭과 진료 항목이 달라 진료비 편차가 발생하는 일을 막기 위해 주요 질병명과 진료행위 절차를 표준화해 보급한다. 당초 2024년까지 40개 표준화 항목을 개발할 계획이었는데 해당 분야의 2023년도 예산이 늘어나 목표 항목을 100개로 늘렸다.
농식품부는 동물병원 표준수가제의 도입 여부와 도입 방식을 검토하기 위해 2023년 1월부터 연구용역을 추진한다. 진료비 조사·공개, 진료 항목 표준화 등을 차질 없이 추진하기 위해 동물의료계, 소비자단체, 동물보호단체 등이 참여하는 ‘동물의료 발전 협의회’를 운영하기로 했다. 또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 협의해 2022년 말 ‘동물의료 중장기 발전 방향’을 마련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