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020년 9월 2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2차 국정원·검찰·경찰 개혁 전략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정부는 마지막 저무는 때까지 ‘일하는 정부’로 남고자 합니다. 한 정부의 국정 성과는 국민적으로 공유돼야 하고 국민적 자부심으로 축적돼야 합니다. 파도에 휩쓸리듯 사라지지 않고 계승되려면 국민들의 가슴에 남아야 합니다. 그런 바람과 함께 문재인정부가 겪었던 위기와 극복, 도약의 큰 발자국들을 담았습니다. <편집자 주>
권력기관 개혁 완수
1990년대에 어느 군대 훈련소에서 있었던 일이라고 합니다. 사물함 정리를 제대로 하지 않은 훈련생에게 조교가 팔굽혀펴기 얼차려를 명령했습니다. ‘명령’은 군의 기본 알고리즘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런데 이 훈련생은 명령을 거부하고 “마음대로 하라”고 언성을 높였다고 합니다. 징계가 불가피한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훈련소에서는 훈련생 대표가 훈육대장을 만나 협상을 하게 됩니다. “명예를 중시하는 귀관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앞으로 팔굽혀펴기 같은 것은 시키지 않겠다”는 답변이 나왔습니다. 이후부터 훈련이 끝날 때까지 얼차려는 없었다고 합니다.
술병이 적발되는 일도 있었습니다. 외박 금지와 벌점 등 조치가 내려지자 이번에는 훈련생들이 단식투쟁을 벌였습니다. 실제로는 초코파이 등을 먹으면서 하는 ‘간식 투쟁’이었다고 합니다. 어쨌든 징계는 또 철회됐습니다.
검사 출신 김두식 교수가 저서 <헌법의 풍경>에서 군법무관 임관에 앞선 기초군사훈련 중 있었던 일화라고 전한 내용입니다. 새내기 법조인들이 자신들에게 부여됐다고 믿은 ‘권력’을 그 시작 때부터 무지막지하게 발휘했던 셈입니다. 김 교수는 행군 도중 이탈해 목욕탕에 총을 세워놓고 목욕한 후 택시를 타고 집결지로 갔다는 전설 같은 일화도 전해져온다고 했습니다. 그야말로 무소불위이자 일그러진 권력의 태동기라 할 만합니다.
▶한 시민단체가 2019년 10월 15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에서 검찰 개혁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한겨레
‘검찰 믿는다’ 36.4%… 주요 기관 중 신뢰도 최하위권
한국행정연구원의 2020년 사회통합실태조사에서 검찰에 대해 ‘약간 믿는다’는 32.3%, ‘매우 믿는다’는 4.1%에 그쳤습니다. ‘별로 믿지 않는다’가 50.9%로 가장 많고 ‘전혀 믿지 않는다’는 12.8%였습니다. 주요 기관들 중에서 신뢰도가 최하위권입니다.
검찰을 비롯한 권력기관 개혁은 역대 정부의 중요 과제였으나 난제, 요즘 말로 하면 ‘넘사벽(넘을 수 없는 4차원의 벽)’과 같았습니다. 국민이 부여한 권력인데 오히려 국민 위에 군림하고 국민을 괴롭히는 데 쓰이는 일이 적지 않았습니다.
검찰은 일제강점기 때부터 형사사법의 권한을 독점하는 형태로 굳어졌고 권위주의 정권 시기에는 순응했으며 민주화 이후에는 정치 비리와 재벌 수사 등을 통해 몸집을 불리면서 제어하기 쉽지 않은 권력의 성을 쌓았습니다. 문재인정부가 반드시 풀어야 할 매듭이었습니다.
힘이 지나치게 집중되면 부패한다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가 가장 유념해야 할 대목입니다. 검찰 개혁의 핵심은 독점하고 있던 기소권을 분산해 ‘견제와 균형’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재판에 넘길지 말지를 검찰이 도맡아서 결정하는 권한을 남용하거나 혹은 덮어버리는 일들이 쌓이다 보니 이른바 ‘선택적 정의’라는 비판을 받게 된 것입니다.
가시밭길 뚫고 공수처 출범… 검찰 개혁 상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그 이름만으로도 검찰 개혁의 상징이자 어려움을 함축적으로 느끼게 합니다. 입법, 사법, 행정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독립적이며 고위공직자들과 판사와 검사, 경무관 이상 경찰공무원 등의 범죄를 수사하고 기소하는 반부패 수사기구입니다.
1996년 시민단체 참여연대가 입법 청원하고 1999년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 법안이 발의된 이후 20년이 훌쩍 지났습니다. 노무현정부에서 본격적으로 추진했으나 당시 강한 저항에 부딪혔고 넘어서지 못했습니다. 공수처 설립과 맞물려 대검찰청 중수부 폐지가 논의되자 당시 검찰총장은 “(폐지하려면) 내 목을 (먼저) 치라”며 반발하기도 했습니다.
이후에도 공수처 법안이 계속 발의되긴 했지만 별다른 진척을 보지 못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검찰 개혁 공약으로 공수처 설치를 내걸었고 국회에서 여야 간 치열한 밀고 당기기 끝에 2020년 1월 공수처법이 제정되기에 이릅니다.
쉽지 않은 가시밭길이었습니다. 여당이 일부 야당 의원들과 함께 신속처리대상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하자 제1야당이 강하게 반발하면서 충돌을 빚었고 이후 여야 의원들이 국회선진화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기도 합니다. 오랜 시간과 산통 끝에 얻어낸 결과물입니다. 권력형 범죄를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처벌하기 위한 체계가 만들어졌고 검사의 죄는 덮어준다는 이른바 ‘제 식구 감싸기’도 이제는 어려워졌습니다.
검경 수사권 조정, 검찰은 공소 기관으로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 조정 역시 핵심이자 오래 묵은 과제였습니다. 2018년 6월 국무총리와 법무부장관, 행정안전부장관이 함께 ‘검경 수사권 조정 합의문’을 발표했습니다. 이에 기초한 형사소송법과 검찰청법 개정안이 2020년 1월 국회를 통과했고 유예기간을 거쳐 2021년부터 시행됐습니다.
정부 수립 후 70년간 변화가 없었던 체계에 일대 변화를 가져온 것입니다. 검사의 수사지휘권이 폐지돼 경찰과 수직적 지휘 관계가 수평적 협력 관계로 전환됐고 경찰에는 1차적 수사종결권을 부여했습니다. 검찰은 수사 절차가 적법한지를 통제하는 인권보호관이자 범죄자를 소추(형사사건 재판 요구)하는 공소 기관으로, 경찰은 1차적인 수사 책임을 지는 기관으로 변혁이 이뤄졌습니다. 검찰에는 부패, 경제, 공직자, 선거, 방위사업, 대형참사 등 6대 중요 범죄 수사권만을 남겼습니다.
검사가 작성한 피의자 신문조서의 내용을 피고인이 부인할 경우 형사재판 증거로 쓸 수 없게 함으로 자백을 압박하는 인권침해 수사가 근절될 수 있도록 하는 법안도 2022년부터 시행됩니다. 흔히 영화에서 그려지는 검사와 형사의 관계, 검찰 취조실에서의 위협과 압박 같은 일들은 이제 현실과 멀어지게 될 것입니다. 따지고 보면 검사는 법률가인데 그동안 지나치게 수사를 주도적으로 해온 측면이 있습니다. 그야말로 ‘비정상의 정상화’라 할 만합니다.
검찰 조직도 달라졌습니다. 권한 남용의 상징 같았던 ‘특별수사부(특수부)’를 10개에서 단계적으로 4개까지 줄이기로 하고 명칭도 ‘반부패수사부’로 변경했습니다. 직접 수사하는 부서인 공공수사부, 외사부, 전담범죄수사부도 11개에서 7개로 축소했고, 8개의 거점 검찰청에는 인권보호부를 신설했습니다. 검찰이 하는 일의 성격과 범위는 문재인정부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경찰도 분리해 견제와 균형… 국정원 ‘국내 정보’ 폐지
물론 경찰 역시 개혁의 대상이었습니다.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비대해진 경찰 권력을 내부적으로 쪼개는 방식입니다. 2020년 국회를 통과한 ‘국가경찰과 자치경찰의 조직 및 운영법’에 따라 국가경찰사무, 자치경찰사무, 수사사무로 분리됐습니다. 2021년 1월에는 국가수사본부가 정식 출범했습니다.
경찰청장은 개별 사건 수사에 대해 지휘나 감독을 할 수 없고 예외적으로 국민 생명이나 안전에 중대한 위험을 초래하는 경우만 가능하도록 돼 있습니다. 자치경찰제는 국민 중심의 치안을 위한 핵심 제도로 평가됩니다. 또 경찰이 정치적으로 연결되지 않도록 한다는 방침 아래 서울 한남동 정보분실을 폐쇄했으며 남영동 대공분실 관리권을 행정안전부로 이관했습니다.
국가정보원은 오랫동안 정치 개입과 사찰 같은 ‘흑역사’를 안고 있습니다. 권위주의 정권 시절의 음습하고 두려운 이미지는 쉽게 가시지 않았습니다. 국정원 개혁 역시 시대적 과제였습니다. 문재인정부 출범 직후에 국내 담당 정보관을 폐지했고 2020년 12월에는 국정원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업무 범위에서 국내 보안정보 전면 삭제, 대공수사권 이관(2024년 1월 시행), 정치개입 우려 조직 설치 금지, 불법 감청과 위치추적 금지 등입니다. 인권침해 근절을 위해 외부 변호사를 인권보호관으로 위촉하기도 했습니다.
군사정권이 시작했던 정보기관의 권력기구화를 제도적으로 종식시킨 의미가 있습니다. 이제 국정원은 대북, 그리고 해외 전문 정보기관으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권력을 위한 기관에서 국익과 국민을 위한 기관의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권력기관은 정치로부터 완전히 독립시키겠습니다. 그 어떤 기관도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할 수 없도록 견제 장치를 만들겠습니다.”
2017년 5월 10일 문 대통령의 취임사 중 한 대목입니다. 이 약속은 지켜졌고 앞으로 더 단단히 자리 잡도록 하는 과제가 남아 있습니다.
글 정책기획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