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9일 오후 서울시 강남구 테헤란로에 있는 모라이 기업부설연구소에서 고명근 모라이 자율주행팀장이 서울 상암 자율주행 시범운행지구의 디지털 트윈 맵(지도)에서 ‘자율주행 시뮬레이션’을 시연하고 있다.
한국판 뉴딜로 일어선 기업을 가다
자율주행은 운전자가 핸들과 가속페달, 브레이크 등을 조작하지 않아도 자동차가 스스로 목적지까지 찾아가는 기술이다. 자율주행 차량에 달린 카메라와 라이다(Lidar) 센서가 사람의 눈 역할을 대신해 주변 상황을 파악한다. 라이다는 레이저를 발사해 그 빛이 대상 물체에 반사돼 돌아오는 것을 받아 물체까지 거리 등을 측정하고 물체 형상까지 이미지화할 수 있다. 여기에 3차원(3D) 정밀지도와 위성항법시스템(GPS) 등이 결합해 안전한 자율주행이 가능해진다.
이렇게 복잡한 자율주행 기술을 연구개발(R&D)하려면 실증할 수 있는 시험장(테스트베드)이 필요하다. 정부는 서울 상암, 경기 판교(제로시티), 충북, 세종, 광주, 대구, 제주 등 7개 지구의 9개 노선을 자율주행 시범운행 지구로 지정해 운영하고 있다. 또 경기 화성에는 세계 최고 수준의 자율주행 실험도시 K-시티가 조성돼 있다.
자율주행 시뮬레이션 신 시장 부상
이와 함께 자율주행 차량들이 실제 도로를 주행하지 않고 가상 환경에서 검증할 수 있는 ‘자율주행 모의실험(시뮬레이션)’도 새로운 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다. 개발 초기 단계에서는 실제 도로에서 검증하다 탑승자나 보행자의 안전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안전한 가상 환경에서 자율주행 시스템의 인지, 제어, 판단 등 모든 과정이 개발 의도대로 작동하는지 검증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자율주행 시뮬레이션은 일반 차량 개발용 시뮬레이션에서 이용되지 않던 다양한 기술이 복합돼 난도가 훨씬 높다. 그래서 기존 시뮬레이션 기업들이 아닌, 자율주행 시뮬레이션을 전문으로 하는 기술 신생기업(스타트업)들이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국내 업체로는 모라이가 대표적이다.
김미라 모라이 홍보팀장은 “핵심 엔진을 포함한 자율주행 시뮬레이션의 독자적 기술을 가진 회사는 국내에서 모라이가 유일하다”며 “정밀지도 데이터를 기반으로 현실과 동일한 가상의 도로 환경(디지털 트윈)을 자동으로 빠르게 대규모로 구축하는 기술이 우리의 경쟁력”이라고 설명했다. 자율주행 차량 제조사들은 모라이의 디지털 트윈 속에서 가상의 차량과 센서를 이용해 자신의 자율주행 알고리즘을 검증할 수 있다.
모라이는 2018년 한국과학기술원(KAIST) 자율주행 차량 연구진들이 주축으로 창립한 신생기업이다. 지금까지 70곳 이상의 자율주행 기업과 기관에 시뮬레이션을 제공하는 등 다양한 협력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2020년 초 13명이었던 임직원이 1년 반 만에 50여 명으로 늘어날 정도로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네이버, 현대자동차, 신용보증기금, 카카오벤처스, 에이티넘인베스트먼트 등으로부터 약 44억 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2월 글로벌 기업 앤시스(Ansys)와 자율주행 기술 연구개발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한 데 이어 최근에는 인공지능(AI) 분야 세계적 기업인 엔비디아(NVIDIA)의 신생기업 지원 프로그램에 선정됐다. 또한 세계 라이다 시장점유율 1위 업체인 벨로다인(Velodyne)과 제휴하는 등 해외시장에도 본격 진출했다.
▶모라이 기업부설연구소에서 연구원들이 ‘자율주행 시뮬레이션’을 개발하고 있다.
데이터 바우처 지원 받아 신 기술 개발
2021년 초 모라이는 세계 3대 정보통신기술(ICT) 전시회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미국 라스베이거스 소비재 전시회(CES) 2021에서 새롭게 개발한 ‘테스트 시나리오 자동 생성 기술’을 선보였다. 자율주행을 하면서 수집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실제 상황과 유사한 시뮬레이션 환경을 구축하는 기술이다. 이 기술을 활용하면 실제 도로에서 검증하기 어려운 사고 상황이나 안개, 미세먼지 등 악천후 등을 조합해 수만 가지 상황을 재연할 수 있다.
정지원 모라이 공동대표는 “정부가 디지털 뉴딜 주요 사업으로 내세운 데이터 이용권(바우처) 지원사업 덕분에 이 기술을 개발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데이터 바우처 지원사업은 디지털 뉴딜 계획에 따라 중소기업, 신생기업이 데이터 기반 서비스를 개발하거나 분석하는 데 필요한 데이터 구매나 가공 서비스를 전문기업으로부터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업이다.
모라이는 2020년 데이터 바우처 지원사업의 인공지능(AI) 가공 부문 수요 기업으로 선정돼 약 7000만 원의 지원금을 받았다. 덕분에 드론으로 촬영한 교차로 영상을 자율주행용 데이터 가공 전문업체에 맡겨 신호 없는 교차로에서 운전자들이 어떻게 운전하는지 경향을 파악할 수 있었다.
정지원 대표는 “아무리 AI로 주변 차량과 보행자의 시나리오를 만든다고 하더라도 실제 도로에서 차선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나 버스, 택시의 운전 형태까지 모사하기 쉽지 않은데 공중 촬영 영상이나 공공기관에서 제공하는 데이터를 잘 가공하면 사람이 운전했던 행동 특성이 그대로 녹아 있다”고 설명했다. 이 상황에 자율주행차를 투입하면 사람이 운전하는 차량에 대해 어떻게 대처하는지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지원 대표는 “자율주행 기술의 핵심은 정밀도로지도 데이터”라며 “우리 같은 신생기업 입장에서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데이터에 1억 원까지 투입하는 건 상당히 부담스러운데 정부의 지원사업 덕분에 신규 서비스까지 만들 수 있었다”며 “데이터 가공 전문업체들도 매출 면에서 큰 도움이 되기 때문에 시장 생태계도 활성화됐을 것 같다”고 평가했다.
▶모라이는 2021년 2월 글로벌 기업 앤시스(Ansys)와 자율주행 기술 연구개발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 모라이
글로벌 ICT 미래 유니콘 기업 선정
모라이는 최근 정부의 2021년 글로벌 정보통신기술(ICT) 미래 유니콘 육성사업에도 선정됐다. 글로벌 ICT 미래 유니콘 육성사업은 글로벌 성장 잠재력이 높은 ICT 융·복합 분야 유망 중소기업을 발굴해 해외진출, 자금(투·융자) 제공 등 종합 지원을 통해 미래 유니콘 기업으로 육성하는 사업이다. 2020년 처음 선정된 15개 기업은 투자 유치 1095억 원, 매출액 1532억 원, 고용창출 278명, 법인 설립 4건, 사업 제휴 35건, 특허 출원·등록 226건 등의 성과를 냈다.
2021년 사업 공모에는 57개 기업이 신청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기술 수준과 시장성, 국제적 역량,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에 대한 환원 계획 등을 평가해 모라이를 포함한 15개 기업을 최종 선정했다. 이들 기업은 신용보증, 투자 유치 연계, 해외 현지 특화 프로그램, 이행보증보험 지원, 법률자문 등을 패키지(묶음) 형태로 지원 받는다.
조경식 과기정통부 2차관은 “역량 있는 ICT 유망 기업들이 맞춤형 종합 지원을 통해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해 세계시장을 선도할 수 있도록 정부가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글·사진 원낙연 기자
디지털 뉴딜의 핵심 데이터 바우처 지원
데이터는 한국판 뉴딜 가운데 디지털 뉴딜 사업의 핵심 분야다. 정부는 여러 분야에 모인 데이터를 축적하고 분석해 인공지능을 학습시키고 학습된 인공지능을 금융, 교육, 의료, 교통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하기 위해 데이터 이용권(바우처) 지원사업 등을 펼치고 있다. 이를 통해 인공지능·데이터 경제를 가속하는 한편 경기부양, 일자리 창출에 더해 모든 분야에서 혁신을 끌어낼 것으로 기대한다.
정부는 2021년 본예산과 추가경정예산을 통해 6449억 원을 투입, 산업계에서 부족한 양질의 데이터 생산·개방을 위해 대량자료(빅데이터) 플랫폼·센터를 확대 구축하고 인공지능 서비스 개발에 필수적인 인공지능 학습용 데이터를 대규모로 구축·개방하고 있다.
데이터 바우처는 2021년 1230억 원을 투입해 2580개 기업·기관에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5월 24일 발표한 수요기업 선정 결과를 보면, 스쿨존 사각지대에서 어린이를 인식해 경고하는 ‘인공지능 어린이 보호 알림이 속도 표출 신호등’과 영유아 질병을 비대면으로 조기에 진단하는 ‘영유아 건강 신호등 챗봇 서비스’ 등의 과제가 지원 받는다. 지도 기반으로 전기차 충전 정보와 캠핑 관련 정보를 실시간으로 알려주는 서비스와 혼합현실(MR)을 활용한 디지털 모델하우스, 인공지능을 활용한 개인 맞춤형 패션 추천 등의 서비스도 뽑혔다.
2021년 공모에는 모두 6179건이 접수돼 2.4 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특히 정보통신기술(ICT) 분야가 아닌 기업의 신청 건수가 매년 늘어나는 점이 눈에 띈다. 제조(22.4%), 유통(11.4%), 문화(8.7%), 통신(8.6%), 교육(3.9%) 등 다섯 개 산업 분야가 전체 선정 건수의 55%를 차지해 다양한 산업에서 디지털 전환이 확산하고 데이터 전문기업의 저변이 넓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2020년에 뽑힌 과제들은 인공지능을 활용해 폐기물의 색상과 오염도 등을 자동 인식하는 폐기물 인식·분류 시스템을 개발하고, 인공지능 기반 물류 자동화 서비스 기술을 고도화해 작업 속도의 획기적 향상, 물류비용 절감과 생산성 제고 등 국민과 기업이 체감할 수 있는 성과를 거뒀다.
과기정통부 정책 담당자는 “데이터 바우처 지원사업은 국민 생활 밀접 분야와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데이터 활용 저변을 확대하고 기업의 생산량 증대와 새로운 시장 창출 등 데이터 활용에 따른 가시적 효과를 창출하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며 “이 사업을 통해 데이터 상품과 서비스를 다양화하고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혁신 사례를 창출해 모든 산업과 사회 분야의 디지털 대전환에 속도를 내겠다”고 밝혔다.
▶한국데이터산업진흥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