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연실 씨가 강원도 속초시 여행자센터 ‘고구마쌀롱’에서 일하고 있다.
‘청정지역 프로젝트’ 참가한 조연실 씨
“속초살이를 하고 있는 서울 청년입니다.”
조연실(24) 씨는 2020년 5월 고향 서울을 떠나 강원도 속초로 내려왔다. 이제는 ‘소호거리’로 불리는 복고풍의 감성 공간들로 탈바꿈한 속초시외버스터미널 뒷골목이 그의 활동 지역이었다. 속초 소호거리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게스트하우스 소호259와 형제 공간인 여행자센터 ‘고구마쌀롱’에서 근무했다. 고구마쌀롱은 속초의 다양한 문화·관광 콘텐츠를 추천 서비스하고 지역 주민과 여행자가 함께 소통할 수 있는 사랑방 같은 공간을 운영하는 신생기업(스타트업)이다.
일터인 고구마쌀롱에서 조 씨는 이름 대신 ‘타미’로 불렸다. “즐겨 봤던 드라마 여주인공의 별명이에요. 주인공처럼 별명을 부르는 회사에 들어가면 사용하려고 생각했는데…. 드라마를 현실로 체감 했어요.”
고구마쌀롱에서 타미가 하는 일에 대해 물었다. “고구마 하면 빠질 수 없는 사이다의 역할이랄까요. 특별한 속초여행 콘텐츠를 기획하고 안내했어요.” 조 씨의 목소리에 즐거움이 넘친다.
속초살이에서 찾아가는 꿈
“속초는 태어나서 처음이에요. 여행으로 온 적도 없어요.” 서울 토박이 청년은 왜 연고도 없는 낯선 지역을 선택한 걸까? 몇 년 전부터 유행한 지역살이를 좇아 내려온 걸까?
“코로나19로 취업문이 꽉 닫혔어요.” 여행사 취업을 준비하던 조 씨는 대학 졸업을 앞두고 갈 길을 잃었다. 코로나19가 세상을 전복시키며 조 씨가 가려는 관광업계는 침몰했다. “여행사 쪽은 공채 자체가 올라오지 않아요. 어쩌다 인턴 공고라도 올라오면 경쟁률이 어마어마하죠.”
하루하루 불안 속에서 살던 어느 날 한 공고가 조 씨 눈에 들어왔다. 서울 청년들이 지역에 있는 기업에서 직무 경험을 쌓도록 지원하는 ‘청정(靑停)지역 프로젝트’ 참여자 모집이었다.
“업무 경력도 쌓고 사회공헌 활동도 하고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여기에 지역살이라는 특별한 경험까지 해볼 수 있고요.”
서울을 벗어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을까?
“취업난이 계속되는 현실, 스펙이 중요한 이 시대에 서울에서는 아르바이트조차 구하기 힘들어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곳이 서울이 아니면 어때요.”
생각의 방향타를 조금 수정했더니 조 씨에게 다른 삶이 보였다.
“코로나 시대, 누구든 가는 해외여행이 이제 꿈이 됐어요. 그렇게 생각하니까 그럼 사람들은 어디로 여행을 갈까 생각했죠. 그랬더니 국내로 여행객이 몰리겠다는 변화가 보였어요.”
여러 지역 중에 왜 속초여야 했을까 궁금증이 이어졌다. 이유는 딱 하나였다고 한다.
“여행자센터 때문이었어요. 관광경영학을 전공하면서 내가 기획한 여행 상품, 여행자와 설렘을 꿈꾸곤 했는데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서울 청년에게 고구마쌀롱은 꿈을 펼칠 첫 무대가 되는 곳이었다. 연실 씨는 망설임 없이 한 달간 준비했다. 그렇게 연실 씨의 속초살이는 시작됐다.
“한창 성수기 때는 ‘60일의 SUMMER’라는 물놀이 프로그램을 바다에서 진행했어요. 또 속초에서 5박 6일 살아보는 ‘세탁 숙소’ 참여자들이 속초를 온전히 느낄 수 있게 안내하고 나 홀로 여행객이나 지역 주민들에게도 특별한 프로그램을 제공했어요.”

▶조 씨가 속초시 지역아동센터를 찾아 아이들과 함께 음식을 만들고 있다.
또 다른 미래를 준비하는 지금
전공을 공부하면서 늘 꿈꿨던 여행 일이 조 씨의 일상을 신나게 만들었다. 조 씨는 ‘청정지역 프로젝트(서울 청년, 지역으로 가다)’에 참여해 속초에서 12월 말까지 8개월 동안 머물었다. 하루 8시간씩 주 5일제로 월 220만 원의 급여를 받았다.
“고구마쌀롱에서 주 32시간 근무했어요. 여행자센터의 업무 특성상 출근 시간은 늦어요. 월요일과 금요일은 오전 11시 30분부터 저녁 8시 30분까지, 토요일과 일요일은 오후 12시 30분부터 저녁 9시 30분까지 일했어요. 여행자들과 같이 움직이다 보니 매일매일 저도 여행하는 기분이 들어 행복했어요.”
근무활동 이외에 주당 8시간씩 지역사회 공헌 활동도 병행했다.
“화요일마다 속초 행복한 홈스쿨 지역아동센터를 찾아 아이들에게 학습지도와 책 읽어주기, 보드게임, 요리 프로그램 등을 진행했어요. 아이들과 함께 누리는 속초는 더 특별하게 다가왔어요.”
조 씨는 속초에 머물면서 자신의 가능성을 실험해봤다.
“내려오기 전에 상상했던 것보다 일이 더 재미있고 짜릿했어요. 그래서 일주일에 한 번씩 친구들을 속초로 초대해 함께 여행했어요. 그들에게 속초를 알리고 또 함께 속초의 추억을 쌓았어요.” 연실씨는 고구마쌀롱에서 배운 일 경험을 일상생활에 확장하고 있다.
서울을 벗어난 곳에서 꿈꿔온 미래를 그리고 있는 조 씨는 행복하다. 그는 “집과 일터가 새롭고 내가 걸어가는 모든 길이 하나부터 열까지 다 새로워서 또 다른 미래를 준비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글 심은하 기자, 사진 곽윤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