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8일 오후 서울 노원구 상계3·4동 덕암초등학교 학생들이 노태갑 학교보안관의 안내에 따라 정문 앞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다.
4월 28일 오후 서울 노원구 상계3·4동 덕암초등학교 방향으로 꺾어 들자 어린이 보호구역(스쿨존)이 보였다. 도로 바닥 전체가 짙은 녹색으로 포장됐기 때문에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중간중간 블록 포장을 해 갑자기 차량이 설 때 미끄러짐도 방지했다. 학교 정문 앞 삼거리에는 회전교차로처럼 노란색으로 큰 원을 그려 놓아 자연스럽게 일단 멈춤을 유도했다. 횡단보도 맞은편을 노란색으로 칠해 아이들이 그 위에서 신호를 기다리도록 유도하고 운전자들이 쉽게 인식할 수 있는 옐로카펫을 그려 놓았다. 녹색, 노란색, 붉은색 등 다양한 색상으로 안전 디자인을 적용해 운전자의 경각심을 높이면서 산뜻하고 밝은 느낌이다.
학교 앞에서 자녀의 귀가를 기다리던 학부모 유은영 씨는 “길바닥이 많이 깨끗해졌다. 전에는 학교 정문 앞 도로에만 붉은색으로 칠했는데 다양한 색상과 디자인으로 개선되면서 속도도 많이 줄고 주·정차를 안 하니까 덜 위험하다”고 말했다. 학생들의 등·하굣길을 동행하는 교통안전지도사는 “도로 바닥을 녹색으로 도색하니까 어린이 보호구역이 확연히 구별돼 좋다”며 “차를 운전하면서 이 길은 조심해서 가야 하는 길이라고 다시 한 번 생각했다”고 말했다.
학교 앞 세 갈래 도로 전체 녹색 포장
1년 전만 해도 덕암초등학교 주변 통학로는 도로 폭이 4~8m로 협소한 데다 노면 상태와 교통시설물 노후로 환경 개선이 시급했다. 학교 후문에서 정문으로 이어지는 내리막길은 출·퇴근 시간 차량 과속과 부주의로 사고 위험이 컸던 곳이다. 학교보안관 제도가 생긴 2011년부터 덕암초등학교를 지키고 있는 노태갑 학교보안관은 “처음에 학교에 왔을 때 상황이 열악했다. 뚜렷하게 도장이 돼 있는 것도 아니고 통학로 주변 환경이 어수선했다”며 “학교 북쪽에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동으로 넘어가는 터널이 있는데 5년 전부터 큰 도로가 막히면 학교 앞 내리막 도로를 샛길처럼 이용하는 차량이 많아지면서 위험해졌다”고 말했다.
2020년 3월 25일 도로교통법과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 등 이른바 ‘민식이법’을 시행하면서 대대적인 변화가 일었다. 정부와 지자체는 덕암초등학교 앞을 지나는 세 갈래 도로 750m 구간 전체를 도색하고 미끄럼 방지 포장을 했다. 과속과 주·정차를 단속하는 폐쇄회로텔레비전(CCTV) 카메라 두 대와 주행 속도와 어린이 보호구역을 표시하는 발광다이오드(LED) 표지판도 새로 설치했다. 횡단보도와 과속 방지턱을 정비하고 안전 울타리 등을 교체했다.
노태갑 학교보안관은 “학교 앞으로 향하는 도로 전체 색깔이 바뀌고 현재 속도가 표시되니까 그냥 막 달리던 차들도 천천히 다니고 1년 전과 확연히 다르다. 나무가 표지판을 가리지 않도록 전지 작업도 많이 했다”며 “도로나 주변 환경이 좋으니까 학생들도 기분이 상쾌하다고 말한다”고 전했다.
2021년 3월 덕암초등학교에 부임한 박은숙 교감은 “이렇게 도색이 잘된 도로가 있는 학교는 처음 봤다. 다른 학교들도 여기처럼 어린이 보호구역 전체를 다 칠하면 좋겠다”고 바랐다.
▶덕암초등학교 후문에서 정문으로 이어지는 내리막길 바닥에 CCTV 단속구간임을 알리는 문구가 적혀 있고 울타리에는 불법 주정차 집중 단속을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덕암초등학교로 향하는 도로 전체가 짙은 녹색으로 포장돼 있다. 중간중간 블록 포장을 해 갑자기 차량이 설 때 미끄러짐 방지도 할 수 있다.
사회적 인식 자리 잡으며 불법 주·정차 ‘뚝’
학부모들이 느끼는 가장 큰 변화는 길가 주·정차 문제다. 학부모 유은영 씨는 “예전에 등하교 시간이면 학교 앞 길가에 주·정차가 심했다. 길이 워낙 좁고 아이들이 많이 다니는 길이라 주·정차 차량 때문에 아이들이 위험한 경우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날 하교 시간에 정문 앞에 주·정차한 차량은 한 대도 보이지 않았다. 학부모들은 모두 정문 맞은편 보행로에 서서 자녀의 하교를 기다렸다. 노태갑 학교보안관은 “전에는 등하교뿐 아니라 아파트 단지에 주차를 하지 못한 사람이나 외부에서 온 사람들도 차를 세워 놓고 그냥 가버리는 경우도 많았다. 제지해도 차를 세워 놓고 가 버리면 조치할 방법이 없어 힘들었다”며 “CCTV 카메라를 설치한 2020년 하반기부터 주·정차를 안 한다. 구청에서 도로 양쪽에 불법 주·정차 집중 단속을 알리는 현수막을 설치하고 수시로 단속하면서 어린이 보호구역에 주·정차 하면 과태료가 부과된다는 사실이 많이 알려진 것 같다”고 말했다.
1년 전 남양주 별내동에서 이사 온 학부모 이은순 씨는 “별내동에 있는 학교에서도 주·정차 문제가 심각했다. 등하교 시간이면 녹색어머니회에서 나와서 못 대게 했다. 여기는 단속 카메라 때문인지 몰라도 다른 곳보다 많이 안 대는 것 같다”고 했다.
정석우 덕암초등학교 교사도 “1년 전만 해도 주·정차 문제가 심각했지만 학교에서 주기적으로 가정통신문을 보내고 사회 분위기가 바뀌면서 운전자들이 경각심을 갖고 조심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은순 씨는 “저 또한 학교 앞은 무조건 시속 30km 이하로 운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어린이 보호구역에 대한 인식이 점점 자리 잡는 것 같다”고 했다.
2학년 학생 학부모인 ㄴ씨는 “이제 운전자들이 학교 앞은 조심하는 것 같은데 아파트 단지 안이 더 위험하다고 느낀다. 아이들이 체구도 작고 잘 안 보이기 때문에 조금 더 신경 써 주면 좋겠다. 특히 아파트 단지 안에 공사하는 구간이 있어 걱정”이라며 “그래도 학생의 등·하굣길을 동행하는 교통안전지도사 제도가 있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어린이 보호구역 교통사고 건수 15.7% 감소
정부는 민식이법 시행 1년 동안 초등학교 주변 어린이 교통사고 우려가 큰 지역에 무인교통단속장비 같은 안전시설을 확대·설치했고 불법 주·정차와 통학버스 관련 제도를 집중 개선했다. 무인교통단속장비 2602대와 신호기 1225개를 설치했고 초등학교 등 주 출입문과 직접 연결된 도로에 있는 불법 노상주차장 281곳을 폐지했다. 안전신문고를 활용한 불법 주·정차 신고 대상에 어린이 보호구역도 추가함에 따라 하루 평균 254건의 신고가 접수되는 등 지역 주민의 적극 참여가 이어졌다.
또한 어린이 보호구역 주·정차 위반 차량에 대한 범칙금·과태료를 현행 일반도로의 두 배에서 세 배로 상향하도록 도로교통법 시행령을 개정했다. 통학버스 신고 의무 대상 시설을 현행 6종에서 아동복지시설 등 18종으로 확대했고 대국민 공모로 어린이 교통안전 표어를 선정했다. 또 릴레이 챌린지 캠페인 등으로 어린이 우선 교통문화 확산을 위해 노력했다.
이 결과 2020년 어린이 보호구역 내 교통사고 건수와 사망자 수는 전년 대비 15.7%와 50% 감소했다. 차량의 평균 통행 속도와 과속 비율도 각각 6.7%와 18.6%로 줄어드는 등 운전자들의 운전 습관도 개선됐다.
글·사진 원낙연 기자
어린이 보호구역 교통안전 더 강화
정부는 2021년 어린이 보호구역에 5529대의 무인교통단속장비를 설치하고 3330곳에 신호기를 추가한다. 도로교통법을 개정해 신호기가 없는 보호구역 내 횡단보도에서 반드시 일시 정지한 뒤 서행하도록 의무를 부과하고 11년 이상 된 노후 통학버스를 교체하도록 추진하는 등 어린이 통학버스 안전 의무를 강화할 방침이다.
먼저 어린이 보행자 보호 강화를 위한 도로교통법을 개정하고 보호구역 인증제를 도입할 계획이다. 신호기가 없는 횡단보도에서 차량이 일시 정지하도록 의무화하고 보도와 차도가 구분되지 않은 도로에서 보행자 우선 도로를 도입해 보행자에게 통행 우선권을 부여한다. 보호구역 지정 범위 밖에서 어린이가 주로 통행하는 구간을 보호구역으로 지정할 수 있도록 했다. 무인교통단속장비 5529대를 설치하고 신호기가 없는 횡단보도 3330곳에 신호기를 보강한다. 운전자가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어린이를 쉽게 인식할 수 있도록 900개 학교에 옐로카펫을 추가 설치하고 보호구역 정비 성공 모델 마련을 위한 시범 사업도 추진한다. 안전 무시 관행을 근절하고 어린이 우선 교통문화를 정착하고자 국민이 쉽게 참여하는 이벤트를 지속해서 실시하고 기업의 사회공헌활동과 연계한 관계 기관 공동 홍보도 확대할 방침이다.
강화된 불법 주·정차 규제에 따라 보호구역 전용 노면 표시등 신규 시설을 도입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며 초등학교 주변에서 불법 주·정차 빈도가 높은 구간에 단속 장비를 2323대 설치하는 한편 주차난 해소를 위해 공영주차장 공급도 확대한다. 이 밖에도 노인 일자리 사업을 활용한 어린이 등·하교 교통안전 계도 활동을 2022년까지 전국 모든 초등학교로 확대해 학교당 6명씩 모두 3만 6000명 배치한다. 교통안전전문기관이 정기적으로 평가해 지침에 맞지 않거나 노후·방치된 안전시설을 체계적으로 정비할 수 있도록 ‘어린이 보호구역 인증제’를 2021년 하반기에 새롭게 도입한다. 아울러 어린이 통학버스 운영 시설에 대한 관계 기관 합동 점검을 정례적으로 추진하고 유치원·학교·학원이 운영하는 어린이 통학버스 중 출고된 지 11년이 지난 노후 차량을 조기에 교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