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는 눈부신 황금의 나라였다. 신라에는 금광이 많았기 때문에 풍부한 원료를 바탕으로 4세기 중엽부터 뛰어난 금속 세공 기술이 발달했다. 신라인들은 귀걸이와 목걸이는 말할 것도 없고 반지와 팔찌, 허리띠와 신발까지 금으로 만들었다. 금관총, 금령총, 서봉총, 천마총, 황남대총 등의 신라 고분에서 출토된 금관은 신라 금속 세공 기술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금관의 형태는 거의 비슷했다. 금테에 산(山)자 모양을 3~4개 겹친 세움 장식과 사슴뿔 모양의 장식을 덧붙였고 그 장식 위에는 둥근 금판과 굽은옥을 금실로 연결했다. 금테 아래로는 드림장식을 양쪽으로 늘어뜨렸다. 신라 금관은 화려함과 세련미가 돋보이는 신라 금속 미술의 대표작이다.
그러나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은 금관이 아니다. 신라 고분에서는 금관과 함께 금관모(金冠帽)와 금관식(金冠飾)도 함께 출토됐다. 금관모는 머리에 쓰는 고깔모자를 본떠 금판으로 만든 것이고 금관식은 따로 제작해 금관모 앞에 끼우게 돼 있는 장식품이다. 이 금관식이 바로 이 글의 주인공이다. 금관식의 형태는 마치 날개를 펼친 매의 형상 같다. 날개 길이가 작은 금관식을 나비 모양이라고 부르는 학자도 있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참새나 꾀꼬리처럼 작은 새를 본뜬 것 같다.
그렇다면 신라인들은 왜 머리에 쓰는 모자 장식 문양을 새의 날개 형태로 만들었을까? 고대인들은 사람이 죽으면 하늘나라로 돌아간다고 생각했다. 하늘나라에서 내려와 잠시 동안 사람으로 살다 원래의 고향인 하늘나라로 되돌아가는 것이 죽음이었다. 누군가 세상을 떠났을 때 ‘돌아가셨다’고 표현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때 새는 죽은 자의 영혼을 하늘나라로 인도하는 안내자라고 여겼다. 새는 하늘과 땅 사이를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영물(靈物)이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한 듯하다.
새가 죽은 자의 영혼을 천상세계로 인도한다는 생각은 신라인뿐만이 아니었다. 고구려인도 마찬가지였다. 고구려 고분벽화에는 사람이 새를 타고 하늘을 날아가는 모습이 자주 등장한다. 감신총은 5세기 이전에 축조된 무덤인데 사람이 탄 새가 어찌나 몸집이 큰지 마치 새 모양 배를 탄 것 같다. 새는 머리를 위로 향하고 있어서 무덤 주인의 영혼을 태우고 하늘로 날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학자들은 새를 탄 사람을 신선이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는데 세상을 떠난 무덤 주인이 신선처럼 하늘세계에 진입하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았기 때문이다. 고구려 고분벽화에선 봉황이나 학, 새, 용을 탄 인물들을 자주 볼 수 있다. 이것은 당시에 유행한 도교의 단면을 확인함과 동시에 새가 천상과 인간 세계의 메신저였음을 의미한다.
새는 사람을 도와주는 이로운 존재 신라 고분의 금관식이 새의 모양을 한 것은 새가 무덤 주인의 영혼을 어두침침한 저승이 아니라 저 높은 하늘세계로 데려다줄 것으로 믿었기 때문이다. 새가 날개를 활짝 편 이유는 영혼을 실은 새가 날개를 퍼드덕거리며 날고 있다는 뜻이다. 힘차게 뻗은 날개에는 둥그런 작은 금이파리들이 깃털처럼 가득 달려 있다. 금빛으로 찬란하게 빛나는 새가 주인의 영혼을 태우고 하늘을 날아간다고 상상해보라. 사악한 귀신이라도 눈이 부셔서 접근할 수 없었을 것이다. 죽어서까지도 이런 위엄을 드러낼 정도의 영혼이라면 무덤 주인은 일개 평민이 아니라 왕이나 족장처럼 힘 있고 권세 있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금관식은 살아서의 영화로움이 죽어서까지도 계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긴 부장품이다.
꼭 죽음이 아니더라도 고대인들은 새를 신성하게 여겼으며 사람을 도와주는 이로운 존재라고 믿었다. 까마귀와 까치는 견우와 직녀가 1년에 한 번 만날 때 다리가 돼준다고 여겼다. 유화부인이 고구려 시조 주몽을 알로 낳자 금와왕이 들판에 버리게 했는데 그 알에서 나올 때까지 새들이 모여 날개로 덮어줬다. 신라의 박혁거세와 석탈해, 가야의 김수로왕은 모두 새의 알에서 태어났다고 전해진다. 마을의 경계를 표시하고 수호신으로 세우는 솟대는 장대 위에 나무로 만든 새를 앉혔다. 신화와 전설 외에도 쌍영총, 무용총 등의 고구려 벽화에선 머리에 새의 깃털을 꽂는 조우관(鳥羽冠)을 쓰고 사냥을 하거나 연회에 참석한 인물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당나라 측천무후의 둘째 아들 장회태자(654~684)의 묘에는 고구려 사신이 조우관을 쓴 모습이 그려져 있다. 죽음의 세계에서뿐만 아니라 현생에서도 깊은 영향을 줬던 새는 지금 우리에게는 어떤 의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