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떤 꽃을 가장 좋아하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예쁜 야생화가 많아서 하나만 고르라면 뭘 골라야 할지 난감하다. 그래도 답을 해야 할 경우 ‘처녀치마’라고 한다.
처녀치마는 이름이 특이해 야생화 공부를 시작할 때부터 관심이 갔다. 산에 갈 때마다 처녀치마를 찾아봤지만 쉽게 만날 수 없었다. 그러다 어느 해 4월 북한산 대남문 근처에서 처녀치마 꽃을 보는 기쁨을 맛봤다. 수북한 낙엽 사이에 핀 보라색 처녀치마 꽃은 마치 신비로운 빛을 보는 것 같았다.
처녀치마는 전국 산지의 개울가 등 습기가 많은 곳에서 자란다. 꽃은 자주색 또는 보라색으로 줄기 끝에서 3~10개 정도 꽃술이 비스듬히 아래로 뻗으면서 하나의 꽃 뭉치를 이룬다. 꽃잎 밖으로는 긴 암술대가 나와 있다.
처녀치마는 겨울에도 푸르죽죽한 잎을 볼 수 있는 반(半) 상록성이다. 꽃이 필 때는 꽃대가 10㎝ 정도로 작지만 수정을 한 다음에는 꽃대 길이가 50㎝ 정도까지 훌쩍 크는 특이한 꽃이다. 꽃대를 높이는 것은 꽃씨를 조금이라도 멀리 퍼트리는 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처녀치마라는 이름처럼 꽃 모양과 색깔이 세련된 아가씨의 치마같이 생겼다. 미니스커트 같기도 하고 짧은 캉캉치마 같기도 하다. 로제트형(뿌리에서 직접 생긴 잎이 땅에 붙어 자라는 형태)으로 퍼진 잎도 치마 모양과 닮았다.
꽃시장에서 처녀치마를 사서 기른 적이 있다. 그런데 아파트 발코니에서 길러서인지 끝내 꽃이 피지 않았다. 나중에야 그 이유를 알았다. 처녀치마는 북방계 식물이라 한겨울에 추위를 겪어야 꽃이 핀다. 집에서 처녀치마를 기를 경우 한겨울에 꽁꽁 얼 정도로 밖에 내놓아야 봄에 비로소 꽃을 볼 수 있다. 일정한 냉각량을 견뎌야 휴면 상태에서 벗어나 꽃을 피울 수 있는 것이다.
글·사진 김민철
야생화와 문학을 사랑하는 일간지 기자. 저서로 ‘꽃으로 박완서를 읽다’, ‘문학 속에 핀 꽃들’, ‘꽃을 사랑한 젊은 작가들’ 등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