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슬기샘어린이도서관 트윈웨이브
“되게 좋은 데 있다!”

경기 수원시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다니는 아이들끼리 ‘트윈웨이브’를 소개할 때 하는 말이다. 트윈웨이브에서 만난 아이들은 하나같이 “친구가 좋은 데가 있다고 해서”, “재미있는 데가 있다고 해서 처음 오게 됐다”고 말했다. 도대체 어떤 곳이기에? 수원문화재단 슬기샘어린이도서관 트윈웨이브는 이름만 들어서는 어떤 곳인지 쉽게 짐작이 가지 않는다. 도서관 안에 있는 곳이 얼마나 재미있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그러나 트윈웨이브는 아주 특별한 곳이다.

트윈웨이브는 아무나 들어갈 수 없다. 나이 제한이 있다. 트윈세대 전용공간이다. 트윈세대란 ‘10대(Teenager)’와 ‘사이(between)’를 결합한 단어로, 어린이와 어른 사이의 낀 세대를 일컫는 말이다. 정확한 나이로 정의하진 않지만 대략 12세에서 16세까지를 의미한다. 이른바 질풍노도의 시기라는 사춘기를 지나는 아이들이다. 이런 아이들의 전용공간이라니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할까?

한창 비밀이 생기고 친구가 최우선이며 개인 공간을 열심히 찾아다니고 혼자만의 시간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때다. 엄마 손에 이끌려 가거나 선생님이 불러서 가는 곳과는 차원이 다를 수밖에 없다. 이제는 왠지 귀찮아진 어린 동생들도 없다. 트윈웨이브가 트윈세대에게 “되게 좋은 데”로 통하며 주말이면 ‘오픈런’이 벌어질 만큼 핫플레이스가 됐는지 이해가 된다. 도서관 안에 있지만 기존 도서관의 모습을 상상하면 안된다.





도서관 멀어지는 나이
2021년 7월에 문을 연 슬기샘어린이도서관 트윈웨이브는 재단법인 도서문화재단씨앗이 진행하고 있는 ‘스페이스 T’ 프로젝트로 탄생한 공간이다. 스페이스 T는 지방자치단체 대표 공공도서관 안에 트윈세대를 위한 전용공간을 조성하는 프로젝트다. 전주시립도서관 ‘우주로 1216’에 이어 트윈웨이브가 세 번째 공간이다.

현재 서울 노원구 공릉청소년문화정보센터와 세종시립도서관 ‘스페이스 이도’ 등 모두 4곳의 ‘스페이스 T’ 공간이 있다. 도서문화재단씨앗이 공간 설계 및 시공은 물론 콘텐츠 기획까지 기금과 운영 전반을 지원한다. 2007년 설립된 도서문화재단씨앗은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위해 도서관이 자신의 세계를 발견하고 성장의 기회를 제공하는 공공 인프라가 될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스페이스 T’를 비롯해 도서관 속 어린이 작업실 ‘모야’, 트윈&틴 전용 ‘라이브러리 티티섬’, ‘미술관 속 그림책도서관’ 등이 그렇게 탄생한 공간들이다.

트윈웨이브는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도서관을 자주 찾지 않는 것에 대한 수원시의 고민에서 시작됐다. 수원시 어린이·청소년 인구는 약 20만 명이다. 어린이도서관이란 개념이 다소 낯설던 2000년대 초반부터 슬기샘어린이도서관을 포함해 3곳의 어린이도서관을 운영해왔을 정도로 수원시는 아이들과 관련된 인프라가 잘 갖춰진 도시다. 그럼에도 청소년기 도서관 공백은 어쩔 수 없었다. 슬기샘어린이도서관 책문화부 유정호 대리의 말이다.

“영유아 시기부터 엄마와 함께 도서관에 오기 시작하지만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가 되면 거의 오지 않는 게 현실이다. 학원 등으로 바빠지는 시기기도 하고, 독서를 좋아하는 친구라도 도서관은 그저 책을 빌리는 공간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된다. 한마디로 가봐야 재미없고 할 거 없는 곳인 거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도서관을 떠나지 않을까 고민했고 트윈세대를 이해하는 데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었다.”

특히 트윈세대를 위한 공간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트윈세대에게 놀이터는 유치했고 입시는 한참 남아 도서관에서 공부만 할 나이도 아니었다. 아무리 둘러봐도 갈 곳이 없었다. 수원시는 도서관을 트윈세대에게 기꺼이 내주기로 했다.





설계 단계부터 아이들 직접 참여
‘스페이스 T’는 공공도서관에 트윈세대 전용공간을 만드는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공간을 조성하는 데 있어 도서관을 떠난 트윈세대가 다시 돌아오도록 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어떤 공간’인지보다 ‘무엇을 할 수 있는 공간’인지가 중요했다. 이를 위해 트윈세대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또 아이들을 직접 프로젝트에 참여시켜 디자인 워크숍 등을 열고 설계, 감리, 공간 이름을 짓는 것까지 함께했다. 전주, 수원, 세종 등 ‘스페이스 T’ 프로젝트가 진행된 지역마다 이름도 공간도 다른 이유다. 도시의 환경이나 경험에 따라 아이들이 원하는 것도 다르기 때문이다.

슬기샘어린이도서관 트윈웨이브 역시 아이들의 의견이 반영된 결과물이다. 자세히 살펴보면 트윈웨이브가 얼마나 아이들의 의견을 곳곳에 반영했는지 확인할 수 있다. 트윈웨이브는 크게 ▲아이들이 창작한 작업물과 멀티포맷의 자료 컬렉션이 있는 ‘전시공간’ ▲신나게 놀고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는 ‘게임과 놀이공간’ ▲자유롭게 표현해 볼 수 있는 ‘창작공간’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쉴 수 있는 ‘테라스공간’ 등 다양한 경험존으로 구성돼 있다.

트윈웨이브에서 문이 있는 공간은 화장실을 제외하면 각종 촬영장비와 함께 크로마키(화면 합성 등의 특수효과를 위해 이용하는 배경)벽이 설치된 방음부스뿐이다. 다른 공간에 있는 아이들이 뭐 하고 있나 관심을 가지고, 아이들끼리 교감하며 서로 영향을 줄 수 있도록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

유정호 대리는 “트윈웨이브라는 이름도 아이들의 투표를 통해 결정됐다”며 “바다를 탐험하듯 자기가 하고 싶은 걸 이 공간에서 찾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뜻에서 트윈웨이브를 이용하는 아이들을 캡틴(captain)이라 부른다”고 했다. 이어 “아이들의 의견보다 우선시된 것은 없다. 게임 허용이 대표적”이라고 덧붙였다.

트윈웨이브는 4곳의 트윈세대 전용공간 중 유일하게 게임공간이 있다. 게임이라고 무조건 금기시하기보다 아이들과 조율을 통해 합의점을 도출했다. 게임의 중독성과 폭력성에 대한 어른들의 우려를 전하고 유료 사행성 게임이 왜 부적절한지 알리며 어떤 게임을 설치할 것인지 결정했다.

트윈웨이브 게임공간에는 일반 가정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콘솔게임(비디오게임)과 과거 문구점 앞이나 오락실 등에 있던 추억의 오락게임기가 설치돼 있다. 게임공간은 분명 트윈웨이브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곳 중 하나다. 그러나 게임만 하면 어쩌나 걱정할 필요는 없다. 게임을 하다 옆에서 신기한 재료로 만들기를 하는 친구가 재밌어 보여 따라하거나 다락에 숨어 만화책을 보다가도 최신 유행곡에 맞춰 아이돌 춤을 추는 친구들을 구경할 수 있도록 모든 공간과 영역이 시선으로 맞닿아 있다.



건강한 성장 돕는 제3의 공간
각종 프로그램과 행사가 진행되는 다목적실에는 마치 아이돌 연습실처럼 대형 벽거울이 설치돼 있다. 천장에는 화려한 블랙라이트 조명까지 돌아간다. K-팝 댄스를 위한 최고의 공간이 아닐 수 없다. 계단 위 다락방 서가는 트윈세대의 관심과 흥미를 반영한 장르문학과 만화, 웹툰 등으로 채워져 있다. 서점에는 있지만 도서관에는 없던 책들을 과감히 배치했다. 창작공간에서는 30여 가지가 넘는 도구가 채워진 재료바, 지류함, 디지털 도구 등을 이용해 공작활동을 할 수 있다. 조형작업뿐 아니라 그림, 영상 등 다양한 매체로 자신을 표현한다.

여자화장실의 파우더룸도 빼놓을 수 없다. 한창 외모에 관심을 가지고 화장을 시작하는 연령인 만큼 조명 화장대를 설치해놨다.

이처럼 트윈웨이브는 아이들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그 과정을 통해 자신의 취향을 알고 무한한 가능성을 발견하길 바랐다. 유정호 대리는 “반항기가 시작되는 트윈세대는 부모님도 싫고 선생님도 싫고 오직 자신의 최애(가장 아끼고 좋아하는 대상)만 좋아지는 시기”라며 “아무것도 간섭받지 않고 나만의 공간을 찾는 아이들에게 집과 학교 외에 제3의 공간은 반드시 필요한데 그 공간을 만들기에 가장 안전한 곳은 도서관”이라고 했다.

트윈세대는 뭐든 처음 경험하는 것이 많은 나이다. 그 처음을 만들어주는 안전한 공간이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다. 트윈웨이브는 도서관이 그 대안이 될 수 있음을 확인시켜준다.

도서관은 이제 단순히 책을 빌리거나 시험공부를 하는 곳이 아니다. ‘책’이라는 물리적 재화를 넘어 ‘성장’이라는 키워드를 내세우면 새로운 자극, 멋진 경험, 좋은 친구, 예술·문화 향유 등 연결할 수 있는 단어가 많아지고 도서관의 역할도 무궁무진해진다. 이용요금도 없고, 어른의 잔소리도 없고, 하지 말라는 간섭도 없는 완벽하고 안전한 도서관 아지트! 트윈세대가 인정하는 ‘되게 좋은 데’가 우리 동네에 있다.

강은진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