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노레 도미에, ‘삼등 열차’, 캔버스에 유화, 65.4×90.2cm, 1862~1864,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1760년대에서 1840년대까지 영국에서 전개된 산업혁명의 영향은 프랑스 사회에도 깊숙이 침투했다. 프랑스의 젊은이들은 일거리와 자본이 집중된 대도시로 앞다퉈 몰려갔다. 세상이 바뀐 도시를 찾은 젊은이들과 시민들은 급격한 사회경제 체제의 변화에 적응할 길잡이가 필요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신문과 잡지였다. 숨 가쁘게 돌아가는 세상 소식과 유익한 정보를 날마다 제공하는 신문과 잡지는 산업화 초기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지적 갈증을 해소해준 청량제였다.
프랑스에서 시민혁명이 60년 가까이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도 신문과 잡지의 대중화에서 비롯된 시민의식의 확장 때문이었다. 언론과 문화 인프라의 확산은 왕족과 귀족 중심의 특권층에서 일반 대중으로 무대의 주인공이 바뀌는 근대문학의 탄생을 이끌었고, 화가들에게는 창작의 운신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결정적인 기회를 제공했다. 화가들은 대량 복제가 가능한 신문이나 잡지의 지면을 화폭 삼아 역시 대량 제작이 특징인 석판화에 자신의 예술혼과 창작의 성과를 빠르고 광범위하게 투영한 것이다.
그 선두에 선 인물이 19세기 프랑스의 대표적인 풍자화가 오노레 도미에(1808~1879)다. 도미에는 당시 특권층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던 문화적 향유의 폐쇄성을 대중이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신문과 잡지 속 시사풍자만화를 통해 무장해제시키는 데 성공했다. 문화는 이제 더 이상 왕족과 귀족들의 독점적 소유물이 아니었다.
19세기 프랑스 시민계급의 탄생과 성장에 기여한 대표적인 예술가로 꼽히는 도미에는 1808년 지중해 연안의 항구도시 마르세유에서 가난한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빠듯한 가정 형편 탓에 10대 초반 서점에서 일하는 등 일찍이 밑바닥 인생의 애환을 체험한 도미에는 20세 무렵 석판화 기술을 익혀 1830년부터 잡지에 풍자만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서민들 고단한 일상 인본주의로 포착
1832년, 24세의 도미에는 풍자화가로서 자신의 명성을 결정적으로 굳히는 사건에 연루된다. 바로 전해 창간한 주간지 <라 카르카튀르>에 루이 필리프 국왕의 탐욕을 노골적으로 고발하는 내용의 석판화 <가르강튀아>를 통해서다. 거인왕을 뜻하는 가르강튀아는 프랑스 작가 프랑수아 라블레가 쓴 전 5권짜리 풍자소설 중 1534년에 나온 제1권의 제목이다.
삽화에서 필리프 왕은 서민들의 고혈(膏血)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는 배불뚝이 괴물처럼 묘사됐다. 부자들에게는 세금을 감면해주고 힘없고 가난한 서민들에게는 감당할 수 없는 세금을 물린 필리프 왕의 무지몽매한 학정을 적나라하게 비판한 것이다. 왕이 앉은 의자 밑으로 배설물로 쏟아지는 각종 훈장과 공적(功績) 서류들을 서로 차지하려고 아귀다툼을 하는 정치가와 고급관료들의 모습은 권력층의 부패와 아첨이 극에 달한 나라의 은유다.
석판화를 본 국왕은 대노해 도미에에게 6개월의 금고형을 내렸고, 잡지사는 재산을 압류당했다. 그럼에도 도미에는 1847년까지 석판화가 겸 풍자화가로 활동하면서 가진 자들의 비리와 위선을 통렬하게 고발해 서민들에게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안겼다.
젊은 시절부터 서민들의 애환을 따뜻한 인간미로 바라보았던 도미에는 마흔이 되면서 소외되고 암울하지만 정직한 삶을 살아가는 소시민들의 일상생활을 애틋한 필치로 표현하는 그림에 집중한다. 그가 1862~1864년 사이에 유화로 제작한 <삼등 열차>가 대표적이다. 근대사회로 진입하는 산업화 초기 서민들의 고단한 일상을 특유의 인본주의적 감성으로 포착한 도미에의 대표작이다. 당시 삼등 열차는 빈부격차와 계급사회의 희생양으로 전락한 밑바닥 인생들이 이용하던 싸구려 대중교통이었다.
산업혁명이 낳은 결실이자 증기력을 동력으로 한 증기기관차는 당시 막 부상한 대중교통 수단이었다. 같은 열차라도 객실마다 등급이 달랐다. 가장 비싼 일등석에서 제일 싼 삼등석까지 열차 객실은 3등급으로 구분됐다. 등급 구분의 기준은 당연히 돈. 가난한 노동자들에게 일등석은 그림의 떡, 그들은 비좁은 좌석과 낡은 시설에다 퀴퀴한 땀 냄새가 범벅인 삼등석 말고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열차 객실 안에도 신분 계급이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도미에가 고단한 하루 일과를 마치고 파김치가 돈 몸을 삼등 열차 객실에 실은 멍한 표정의 그들에게 연민의 정과 진정 어린 존경심을 담아 헌정한 사실주의 그림이 바로 <삼등 열차>다.
노동의 고단함과 부조리한 사회상
초기 자본주의 사회가 빚어낸 빈부격차에서 비롯된 서민들의 박탈감과 가난의 대물림, 노동의 고단함과 부조리한 사회상을 허름한 열차 객실의 풍경을 통해 애잔하게 묘사한 도미에의 대표작이다. <삼등 열차> 작품 속 사람들에게 열차와 여행은 동의어가 아닌 딴 세상의 언어일 뿐이다. 그들에게 열차는 그저 집과 일터를 부지런히 오가는 운반 도구일 따름이다.
늦가을 땅에 떨어진 나뭇잎처럼 칙칙한 갈색 톤의 색조, 빛과 어둠이 극명하게 엇갈리는 강렬한 명암대비, 그리다 만 듯한 과감한 생략이 눈길을 끄는 인물묘사, 선이 굵고 뚜렷한 윤곽선…. 도미에가 의도적으로 기획한 네 가지 장치는 모두 삶에 찌든 하류인생의 날것 그대로의 모습을 진솔하게 드러내기 위해서다.
어두운 객실 앞 가운데, 광주리 손잡이 위에 기도하듯 두 손을 모으고 앉아 있는 노파(老婆)가 보인다. 어딘가를 초점 없이 응시하는 노파는 가족의 무사(無事) 행복을 기도하는 것일까, 당장 오늘 저녁 먹거리 걱정에 홀로 속앓이를 하고 있는 것일까. 일체의 표정 변화가 없는 노파와 딸(혹은 며느리) 사이에는 무거운 침묵만 흐른다. 노파 뒤로 보이는 다른 승객들 모습도 마찬가지다. 약속이나 한 듯, 입을 꾹 다문 그들 사이를 가로지르는 것은 단 하나 숨 막히는 정적뿐이다.
그림 전체를 지배하는 암울하고 쓸쓸한 속성의 갈색 톤의 색조와 함께 이 모두가 하루 종일 일해봤자, 입에 풀칠하기도 버거운 서민들의 현실을 대변한다. 팍팍한 현실이 막막할 따름인 삼등 열차 승객들에게 남에게 관심을 보인다거나 말을 거는 행위 따위는 안중에 있을 리 없다. 그들에게는 한 끼를 때울 식사 걱정, 하루하루의 삶을 지탱해 나가는 것만이 유일한 관심거리다.
그럼에도 이 그림을 보는 우리들은 가난하지만 결코 비굴하지 않고, 남에게 기대지 않고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아가겠다는 의지를 승객들 모습에서 읽을 수 있다.
박인권 문화칼럼니스트_ PIK문화연구소 소장으로 전 <스포츠서울> 문화레저부 부장과 한국사립미술관협회 팀장을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는 <시와 사랑에 빠진 그림> <미술전시 홍보, 이렇게 한다>, 미술 연구용역 보고서 ‘미술관 건립·운영 매뉴얼’ ‘미술관 마케팅 백서’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