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에 훈풍이 불고 있는 요즘 북한은 이전보다 우리에게 좀 더 친숙한 존재가 됐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통역 없이 대화하는 모습이나 북한의 음식이 소개되며 같은 민족이라는 동질감도 한층 짙어졌다. 하지만 북한 주민들의 생활 모습이나 일상은 우리에게 알려진 바가 별로 없다. 올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시작으로 ‘신필름예술영화제’, ‘울주세계산악영화제’ 등에서 북한 영화가 소개됐다. 영화제에 나온 북한 영화는 모두 정부의 승인을 받고 난 후 공개 상영이 결정됐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처음 상영된 ‘우리 집 이야기’를 본 관객들의 반응도 대체로 “신기하다”였다. 북한의 생활상과 문화를 엿볼 수 있다는 면에서 관객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그간 교류가 활발하지 않아 북한의 생활상을 잘 모르지만 그들도 우리와 비슷한 모습으로 생활하는 것이 색다르게 느껴진 듯했다.
▶ 영화 ‘우리 집 이야기’의 한 장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우리 집 이야기’는 2016년 ‘평양국제영화축전’에서 최우수영화상을 받은 작품이다. 평안남도 남포 인근에 사는 은정, 은향, 은철 세 남매의 안타까운 사연으로 시작한다. 최근에 제작된 작품이지만 사회주의국가 특유의 체제 선전 내용은 빠지지 않았다. 세 남매는 오래전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마저 얼마 전 유명을 달리했다. 졸지에 소녀가장이 된 은정은 동생들을 챙기느라 바쁘다. 사정을 아는 이웃집 언니 정아가 살뜰하게 이 집 남매들을 챙겨주려 하지만 자존심 강한 은정은 도움을 거부한다. 지역 노동당 책임비서인 김송학이 사연을 듣고 목수 아저씨 행세를 하며 남매를 돕는다. 정아의 계속된 노력은 은정의 닫힌 마음을 열고 점차 널리 알려져 나중에는 ‘처녀 어머니’라는 칭호를 받는다.
영화 곳곳에 우리와 같은 듯 다른 북한의 일상이 비친다. 정아가 일하는 급양관리소와 은정 남매의 부모가 일하던 강선제강소의 모습이 나온다. 강선제강소는 북한의 대표적인 철강 생산 공장이다. 축구선수를 꿈꾸는 은정의 동생 은철이 스포츠 브랜드 ‘푸마’의 축구 유니폼을 입은 점, 북한에서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세 평방의 정리’라고 부르는 것도 눈에 띈다.
▶ 영화 ‘김 동무는 하늘을 난다’의 한 장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우리 집 이야기’가 북한 체제를 선전하는 측면이 강하다면 ‘김 동무는 하늘을 난다’는 좀 더 오락성을 띠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2012년 열린 ‘제17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이미 한 번 소개된 적 있어서 국내에서 가장 잘 알려진 북한 영화이기도 하다. 2012년 평양국제영화제에서 최고감독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벨기에의 안야 다엘레만스, 영국의 니콜라스 보너, 북한의 김광훈 세 감독이 공동연출한 작품이다. 김 동무는 주인공인 김영미를 부르는 말이다. 평양교예단의 공중곡예사가 꿈인 탄광 인부가 그 꿈을 이루기까지의 과정을 풀어냈다.
김영미는 탄광노동자의 딸이다. 계급이 정해진 북한 사회에서 이룰 수 없는 꿈인 곡예사를 꿈꾸지만 할머니를 제외한 가족은 모두 영미의 꿈이 못마땅하다. 평안남도 우수 노동자로 선정돼 평양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영미는 설레는 마음으로 평양으로 향한다. 평양교예단의 공연을 보고 다시 꿈에 부푼 영미는 우연히 얻은 교예단원 시험에 참가했다가 고소공포증 때문에 사다리에서 떨어진다. 영미는 우여곡절 끝에 고소공포증을 이겨내고 노동자공연단을 만들어 노동자 축제에서 놀라운 곡예를 선보인다. 곡예단 시험에서 떨어진 영미를 무시하던 곡예사 장필은 노력하는 영미를 보고 훈련을 돕는다.
이 영화가 특별한 점은 사회주의 영화 특유의 이념적 색채를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북한을 배경으로 사랑과 꿈을 그린 로맨틱 코미디를 보는 듯하다. 주인공이 고소공포증과 노동계급이라는 환경적 어려움을 극복하고 꿈을 이뤄가는 전통적인 묘사를 취하되, 곳곳의 코믹한 요소들이 웃음을 자아내 훈훈함을 준다. 북한의 아름다운 산천과 평양을 앉아서 관광하는 듯한 즐거움까지 느낄 수 있다.
신상옥 감독이 북한에서 연출한 ‘소금’은 9월 6일부터 8일까지 이틀간 열린 신필름예술영화제에서 처음 공개 상영됐다. 신 감독은 ‘한국 영화계의 산증인’으로 평가받으며 유일하게 남한과 북한에서 모두 영화를 만들었다.
‘소금’의 배경은 간도 지방이다. 반식민지 무장투쟁에 가담한 외아들을 찾으러 소금 짐을 지고 길을 나선 어머니의 이야기를 담았다. 당시 북한 영화 최초로 동시녹음을 사용하고 함경도 사투리를 그대로 살린 점이 돋보인다. ‘소금’은 1930년대 경향파 작가인 강경애 단편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영화이다. 여주인공을 맡은 최은희는 ‘소금’으로 1985년 모스크바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어린이용 애니메이션도 눈에 띈다. ‘교통질서를 잘 지키자요’는 아이들에게 교통질서 의식을 키워주기 위해 제작된 시리즈물이다. ‘철남이가 찬 뽈’, ‘동생이 쓴 축하장’, ‘주차장에서’ 등 에피소드마다 15분 내외로 유튜브 등으로 볼 수 있다. 여기에도 교통질서를 지켜야 할 만큼 교통량이 증가한 북한의 모습이 잘 드러난다. 내용은 우리나라 공익 애니메이션과 유사하다. 교통신호를 잘 배우고 실천하기, 육교를 건너는 법 등이 소개돼 있다.
유치원에 다니는 윤순이는 연하장을 보내러 우체국에 가자고 오빠에게 조른다. 오빠는 연날리기 경기가 있으니 나중에 부치러 가자고 하지만 윤순이는 기어코 지금 보내겠다며 오빠를 따라 길을 나선다. 연하장을 들고 우체국에 가는 길에 윤순이와 오빠는 술래잡기를 한다. 도망가는 오빠를 따라가던 윤순이가 횡단보도를 건널 때 신호등이 빨간불로 바뀌면서 윤순이는 사고를 당할 위험에 처한다. 다행히 자동차들이 급정거를 해 큰 사고를 면했지만 거리는 엉망이 된다. 오빠는 동생을 제대로 지켜주지 못한 것을 반성하고 앞으로 길을 갈 때는 동생의 손을 꼭 잡고 건너겠다고 다짐한다.
국내 영화제에 소개된 북한 영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불가사리(1985)
신상옥 감독 연출, 북한 최초의 SF영화
울주세계산악영화제
산 너머 마을(2013)
장인학 감독 연출, 북한·미국 합작영화
향기골에 온 감자(2000)
조선426아동영화촬영소 제작,
감자 농사를 다룬 애니메이션
농부와 얼룩이(1999)
조선426아동영화촬영소 제작,
은혜 갚은 개를 주제로 한 애니메이션
참외를 굴린 개미(1983)
조선426아동영화촬영소 제작, 우화
나무 할아버지가 준 선물(2007)
조선426아동영화촬영소 제작,
자연 보호 교훈을 담은 애니메이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