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상식을 제쳐두자. 일반 기업에 대한 이미지를 떠올리면 어반플레이를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비슷한 일을 다른 개념으로 접근하기 때문이다. 일단 책을 만든다. 커피와 참기름을 판매한다. 마을 축제를 기획한다. 전시회와 문화 강연도 진행한다. 듣다 보면 갸우뚱할 수밖에 없다. 홍주석 대표가 가장 많이 받는 질문도 “그래서 뭐하는 기업인데?”다. 각각의 영역이지만 귀결되는 점이 있다. ‘도시재생’이다. 홍 대표는 어반플레이를 “도시문화 콘텐츠를 만들고 소개하는 기업”이라고 설명한다.
어반플레이(URBANPLAY)의 의미도 중의적이다. 도시를 의미하는 ‘어반(urban)’과 놀이를 의미하는 ‘플레이(play)’를 합성해 도시를 놀이 공간으로 재해석한다는 뜻이 있다. 또 플레이에 재생(再生)의 의미도 들어 있다. 어반플레이는 도시를 놀이터로 만들며 재생하는 역할을 하는 기업인 것이다. 도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분야를 가리지 않는다.
사람이 있고 삶이 있어야 도시도 존재한다. 발길이 끊기면 도시는 생동력을 잃는다. 도시의 숙명이다. 낙후된 도시의 해법은 주로 재개발이었다. 건물을 철거하고 새 건물을 세우는 과정에서 도시는 일률적인 모습으로 변했다. 새로운 공간 형성은 심미성·효율성 관점에서 순기능이 있었지만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은 어쩔 수 없었다.
도시를 재개발보다 재생의 시각으로 접근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쇠락한 지역에 숨을 불어넣는 것. 새로운 요소를 투입해 도시를 보존하면서도 활력을 찾는 방법이 주목받았다. 경남 통영시의 동피랑 벽화마을이 대표적이다. 달동네 동피랑 마을 곳곳에 벽화를 그렸다. 동피랑은 삶의 공간은 유지하면서 관광객의 사랑을 받는 공간이 됐다. 그러나 동피랑 마을을 벤치마킹한 벽화마을이 우후죽순 생기며 제2, 제3의 동피랑 마을은 정체성이 모호해졌다.
동네도 아는 만큼 즐길 수 있다
ⓒC영상미디어
홍주석 대표가 도시재생을 떠올린 건 여행을 다니면서다. 건축학을 전공한 그는 세계를 여행했다. 여행객들에게 알려진 코스 외에도 좁은 골목을 누볐다. 해외 골목은 아는 사람만 다닐 수 있는 곳이었다. 스마트폰이 보급화된 시대, 누구나 골목에 대해 잘 알 수 있는 때가 됐다고 판단했다. 특색을 갖춘 로컬 콘텐츠만 있다면 충분히 경쟁력도 있었다. 우리나라에도 개성 있는 골목이 많으니 승산이 있어 보였다.
어반플레이는 동네가 갖고 있는 콘텐츠에 집중했다. 평범한 일상에 트렌드를 접목해 고유의 콘텐츠로 승화하는 것이다. 도시의 업그레이드에 가깝다. 2015년부터 진행한 ‘연희, 걷다’ 프로젝트는 어반플레이의 면모를 단적으로 드러낸 기획이다. 홍주석 대표는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을 주목했다. 점포마다 다수의 매력적인 콘텐츠를 갖고 있는 곳이었다. 연희동의 가치를 부각할 수 있는 방법, 그는 네트워크에서 답을 찾았다. 각각의 점포를 공동 마케팅으로 묶어 문화적 가치를 찾고자 했다. 방문객이 연희동 구석구석을 재발견할 수 있게 마을 곳곳의 정보를 제공하기로 했다. 골목길을 걸으며 사진, 회화, 공예 등 작품을 감상하고 가방, 플라워박스, 브로치 등을 직접 만들 수 있게 했다. 연희동 주민이 도슨트(해설가)가 되어 전하는 마을 이야기도 눈길을 끌었다. ‘연희, 걷다’ 프로젝트 기간 마을 전체가 팝업 전시관이 됐다. 단순한 접근법이지만 효과가 있었다. 방문객은 연희동을 한층 더 즐기게 됐다. 참여 점포의 수익도 덩달아 증가했다. ‘연희, 걷다’는 연희동 간판 프로젝트가 됐다. 10여 개 점포가 참여하던 프로젝트는 50여 개 점포로 확대되며 오는 가을이면 4회째를 맞이한다.
▶ 방앗간과 카페를 콜라보레이션 한 ‘연남방앗간’은 일반 주택을 개조했다. ⓒC영상미디어
▶ 1 ‘누군가의 책방’은 책장을 내어주는 곳으로 창작자가 책을 진열할 수 있게 했다.
2 ‘연남방앗간’에 들어서면 선반에 진열된 각종 참기름을 마주하게 된다. ⓒC영상미디어
어반플레이가 다시 주목받은 건 ‘연남방앗간’이 문을 열면서다. 개업한 지 3개월도 채 되지 않았지만 이미 입소문을 타고 평일 낮에도 빈자리를 찾기 어려운 ‘핫’한 곳이 됐다. 방앗간이지만 전통적인 방앗간의 모습은 아니다. 일반 주택을 개조해 방앗간과 카페를 콜라보레이션 했다. 방앗간답게 대표 메뉴도 참깨라떼, 참깨아이스크림이다. 방앗간의 정체성을 살리기 위해 어반플레이는 전국 참기름 장인을 수소문했다. 경북 안동, 예천, 군위, 강원 영월, 제주 한림 등에서 직접 수확한 참깨로 착유한 참기름을 이곳에서 판매했다. 참기름과 그들의 영상을 상영하며 이야기도 판매했다. 직접 착유한 참기름에 이야기가 더해지니 고소한 냄새가 솔솔 풍겼다. 인근 지역으로 판매처가 국한돼 있던 참기름 장인에게도 새로운 시장이 생겼다.
방앗간은 이야기가 모이는 동네 사랑방
왜 하필 방앗간일까? 홍 대표는 과거 방앗간이 사랑방 같은 공간이었다고 설명한다. 동네 사람들이 모이고 이야기가 꽃피는 그런 곳. 그런데 동네마다 있던 방앗간이 점차 사라져갔다. 마을의 사랑방 역할을 대신할 곳이 없어졌다는 뜻이기도 했다. 도시에 방앗간을 되살려 사람과 이야기가 넘치는 곳을 만드는 게 ‘연남방앗간’의 취지였다. 연남동에 방앗간을 만든다고 할 때 주변의 만류가 심했다. 요즘 누가 그런 데 관심을 갖느냐고. 하지만 다양한 연령대가 ‘연남방앗간’을 찾는다. 방앗간과 오래된 주택에 대한 추억을 갖고 있는 40~50대는 물론 오묘한 매력을 주는 공간에 20~30대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아울러 팝업 형태로 전시와 문화 강연도 진행하는 이곳은 동네 복합문화공간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점차 사라져서 아쉬운 건 방앗간뿐만이 아니에요. 세탁소, 쌀집, 철물점도 마찬가지예요. 예전에는 철물점 아저씨가 실내 디자인을 결정하는 역할을 했죠. 철물점에 갖고 있는 타일, 문고리 등 재료가 비슷비슷해서 동네마다 집 안 모양도 비슷비슷했거든요. 쌀집 아저씨도 어느 집에 식구가 몇 명인지, 마을 대소사를 다 알고 있었죠. 그런 기능을 하는 공간들이 사라져가니 이웃 간의 교류도 줄어들었어요.”
홍 대표가 기획하는 도시재생에는 방앗간을 비롯해 세탁소, 철물점, 사진관 등 사양 업종이 주요 콘텐츠다. 콘텐츠 자체도 매력 있지만 신흥 상권이 형성될 때 젠트리피케이션(임대료 상승으로 원주민이 내몰리는 현상)에 가장 취약할 수 있는 업종이기 때문이다. 상업 논리에 의해 인위적으로 조성된 도시보다 우리가 살고 싶은 도시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 그의 이상과 부합한다. 살고 싶은 도시의 첫 단추는 개인의 삶이 모여 함께 이루는 삶이란 설명이다.
“도시에서 중요한 건 라이프 스타일이에요. 사람들은 여기에 민감하게 반응해요. 요즘처럼 급변하는 시대에 도시의 개성을 살리며 트렌드하게 풀어내는 게 우리 임무라고 생각해요. 연남방앗간을 시작으로 세탁소, 목욕탕, 정육점, 철물점 등 우리 시대에서 사라져가는 공간을 재해석하는 일을 계속할 거예요. 사라져가는 공간을 재해석한 문화공간이 많아지면 다양한 콘텐츠를 소비하는 문화적 토양이 만들어지지 않을까요?”
▶ 연희동 한 점포의 전시 모습, 당시 연희동 자체가 팝업 전시관이 됐다. ⓒ어반플레이
로컬 30~40년, 시간의 켜 자체가 엄청난 일
어반플레이가 서울 외 지역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 중 하나는 강원 삼척시에 있다. 삼척 어촌마을은 사람들이 떠나며 빈집이 늘어났다.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는 어르신들이 주로 남았다. 마을을 보존하면서 활력을 되찾기 위해 홍 대표가 찾아낸 방법은 문화공간으로의 전환이었다. 청년이 중심이 되어 빈집은 공유 키친, 문화 살롱으로 재탄생했다. 평생을 물질을 하며 쌓아온 할머니들의 해산물 레시피도 결합됐다. 홍 대표는 동네 어르신들과 함께 요리하며 어촌마을을 즐기러 오는 사람이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사람들은 과거의 공간이 없어지는 걸 아쉬워만 해요. 많이 이용하는 게 답인데 삶의 패턴이 변하니 어쩔 수 없죠. 1차 책임은 상업 활동을 하는 당사자에게 있지만 평생 한 가지 일만 하던 사람들이 새로운 접근을 하기란 쉽지 않아요. 소비자가 즐기고 찾을 수 있게 재가공하는 일, 우리가 잘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이외에도 서울 제기동 약령시장의 숨은 이야기를 정리한 ‘서울 약령시 스토리 아카이브’, 대전 유명 빵집 성심당의 60주년 기념 ‘나의 도시, 나의 성심당’ 프로젝트 등을 진행했다. 또 폐교를 새로운 공간으로 해석하는 일도 추진하고 있다. 어반플레이가 도시재생 과정에서 경계하는 건 획일화된 모습이다. 그 동네만의 특색을 유지하는 놀이터를 만들고자 했고, 이는 공식화된 여행 코스를 따라가기보다 지역(로컬)의 특별한 경험을 찾는 여행 트렌드와도 부합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소상공인과의 연계를 강조했다. “한 공간에서 30~40년씩 시간의 켜가 쌓인 것 자체가 엄청난 일”이라며 이들의 생업을 하나의 콘텐츠로 해석한 이유를 설명했다.
어반플레이의 동네 프로젝트는 책으로도 출간됐다. <아는동네 아는연남>과 <아는동네 아는을지로>가 그것이다. 세계 여행 가이드북 <론니플래닛>의 동네 버전인 셈이다. 동네를 둘러보기 좋은 지점을 소개하고 익숙한 동네를 다른 시각으로 접근하는 재미를 발견할 수 있다. 현재 이태원 편이 출간 예정이다. 콘텐츠는 온라인 ‘아는동네’를 통해서도 보급된다. 도시 전반을 다루는 팟캐스트도 곧 선보일 예정이다. 어반플레이가 하는 일들에 대해 누군가는 묻는다. 이런 일들은 공공기관의 역할이 아니냐고. 홍 대표의 생각은 다르다.
“오히려 민간이 할 일을 이제까지 공공에서 해온 측면이 있어요. 공공기관은 프로젝트나 단발성 사업에 그치지만 어반플레이 같은 도시 콘텐츠 전문기업은 이 부분에 집중해서 고민해요. 그리고 생각보다 많은 작가들이 동네 이야기를 소개하고 싶어 해요. <아는동네 아는연남> 판매 실적도 예상보다 좋아요. 사람들의 관심이 많다는 뜻이죠. 공공기관이 주체가 되면 외주로 거액의 예산을 투입하는데 그건 지역을 콘텐츠로 하는 작가들의 창작 생태계를 죽이는 일이에요. 민간이 더 좋은 콘텐츠를 발굴할 수 있게 지원하는 형태로 머물렀으면 좋겠어요.”
선수현│위클리 공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