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년 말부터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언론을 통해 화제가 되는 기술이 있다. 인공지능(AI) 그 이후의 기술로 주목받고 있는 ‘양자컴퓨터’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구글과 IBM 같은 기업들이 양자컴퓨터에 대한 꾸준한 투자와 함께 상용화에 도전하고 있는 상황에서 최근 마이크로소프트(MS)가 상용화를 앞당긴 기술을 개발했다고 밝히면서 양자컴퓨터를 둘러싼 기술 경쟁이 가속화되는 모양새다.
양자컴퓨터란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원자, 분자의 움직임을 설명하는 ‘양자역학’을 기반으로 한 컴퓨터를 뜻한다. 양자컴퓨터는 기존 컴퓨터와 근본적으로 다른 방식으로 정보를 처리한다. 기존 컴퓨터는 0과 1로 구성된 비트(Bit) 단위를 사용해 연산을 수행하지만 양자컴퓨터는 양자비트(Qubit, 큐비트)라는 개념을 활용한다. 큐비트는 양자역학의 특성을 적용한 정보 단위로 0과 1을 동시에 가지는 ‘중첩’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예를 들어 2비트의 고전 컴퓨터는 ‘00’, ‘01’, ‘10’, ‘11’ 등 네 가지 상태 중 하나만 가질 수 있지만 2큐비트의 양자컴퓨터는 네 가지 상태를 동시에 가질 수 있다. 큐비트 수가 늘어날수록 동시에 처리할 수 있는 정보량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또한 두 개 이상의 큐비트가 서로 강하게 연결돼 한 큐비트의 상태를 측정하면 다른 큐비트의 상태도 즉시 결정되는 ‘얽힘’ 현상도 활용한다. 얽힘을 이용하면 양자컴퓨터 내에서 연산을 매우 빠르게 수행할 수 있다.
하지만 큐비트를 이용해 연산하려면 ‘양자 현상’을 유지해야 하는데 이게 쉽지 않다. 큐비트를 물리적으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크게 세 가지 방식을 활용한다. 초전도체, 이온 트랩, 마지막으로 위상 초전도체다.
초전도체는 말 그대로 ‘초전도체’를 활용한다. 초전도체의 특징은 저항이 ‘0’이다. 두 개의 초전도체 사이에 얇은 절연층을 놓으면 양자 상태가 만들어지고 이때 외부에 전압이나 자기장을 조절해 큐비트를 조작할 수 있다. 이 방식은 연산속도가 빠른 것으로 알려져 있고 연구가 많이 이뤄진 만큼 구글, IBM 등이 활용하고 있다. 다만 큐비트가 매우 불안정해 상태가 쉽게 깨진다는 단점이 있다.
두 번째는 이온 트랩 방식. 전기장을 이용해 이온을 공중에 띄운 뒤 레이저를 쏴서 차갑게 냉각시켜서 양자 상태를 만드는 방식이다. 양자컴퓨터 기업 ‘아이온큐’가 활용하는 방식으로 연산 정확도가 상당히 높다는 장점이 있지만 큐비트 수를 빠르게 늘리기 어렵다는 단점도 존재한다.
마지막으로 위상 초전도체다. 초전도체와 방식은 비슷한데 조금 차이가 있다. ‘독특한 구조’를 가진 초전도체는 ‘마요라나 준입자’라는 것을 만들어낸다. 여기서 만들어진 큐비트는 외부환경의 영향을 덜 받아 오류율이 낮다고 알려져 있다. 이를 구현하면 양자컴퓨터의 큐비트를 빠르게 확대할 수 있는데 아직 실제 실험실에서 구현된 바 없다.
전문가들은 초전도체 방식과 위상 초전도체 방식을 다음과 같이 비유하기도 한다. 초전도체 방식이 빙판 위에서 스케이트를 타는 것과 같다면 위상 초전도체는 롤러코스터 트랙이라고 볼 수 있다. 스케이트는 빙판이 거칠거나 불순물이 있으면 쉽게 걸려 넘어질 수 있는데 이는 전자의 움직임이 방해받으면서 큐비트가 깨지는 현상과 비슷하다. 롤러코스터 트랙은 만들기는 어렵지만 잘 설계하면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롤러코스터가 방해받지 않고 움직일 수 있다.
세계적 기술 경쟁… 2030년께 상용화 전망
현재 구글과 IBM은 초전도체 방식으로 1000큐비트가량을 구현해낸 상황이다. 일반적으로 양자컴퓨터 상용화를 위해서는 수백만 개의 큐비트가 필요하다고 알려져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MS가 2025년 초 ‘위상 초전도체’ 기반의 양자 칩 ‘마요라나1’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MS는 “이번에 공개한 칩을 통해 양자컴퓨터가 수십 년이 아닌 수년 내에 다양한 산업과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이바지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MS는 위상 초전도체 기반의 양자 칩을 통해 양자컴퓨터 큐비트의 수를 이른 시간 안에 100만 개까지 확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양자컴퓨터가 상용화되면 인류는 정보처리의 패러다임이 완전히 변화하는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금융, 보안, 약물 개발, 기후 예측 등 복잡한 연산이 필요한 분야에서 혁신적인 발전이 이뤄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신약 개발 과정에서 기존에는 수년이 걸리는 단백질 구조 분석과 최적화가 단 몇 시간 내에 이뤄질 수 있으며 날씨 예측 모델의 정확도가 획기적으로 향상될 것이다. 또한 기존 암호화 기술이 양자컴퓨터에 의해 무력화될 가능성이 있어 새로운 보안체계인 ‘양자 암호화’ 기술도 발전할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는 이러한 양자컴퓨터 상용화 시기를 2030년 전후로 전망하고 있다.
원호섭
과학이 좋아 마블 영화를 챙겨보는 공대 졸업한 기자. ‘과학 그거 어디에 써먹나요’, ‘10대가 알아야 할 미래기술10’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