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월이면 화단이나 공원에서 온통 홍자색으로 물든 나무를 볼 수 있다. 잎도 나지 않은 가지에 길이 1~2㎝ 정도의 꽃이 다닥다닥 피기 때문에 나무 전체가 홍자색으로 물든 것 같다. 박태기나무다.
박태기나무에 물이 오르면, 딱딱한 나무에서 꽃이 서서히 밀고 올라와 부풀어 오르는 모습은 정말 신기하다.
물론 아무 데서나 꽃이 피어나는 것은 아니고 겨우내 꽃눈을 달고 있다가 점점 부풀어 오르는 것이다.
이 화려한 꽃을 볼 때마다 박완서의 단편 ‘친절한 복희씨’가 떠오른다. 이 소설은 버스 차장을 목표로 상경한 순박한 시골 처녀가 처음 이성에게 느낀 떨림을 박태기꽃에 비유하고 있다.
‘나는 내 몸이 한 그루의 박태기나무가 된 것 같았다. 봄날 느닷없이 딱딱한 가장귀에서 꽃자루도 없이 직접 진홍색 요요한 꽃을 뿜어내는 박태기나무, 헐벗은 우리 시골 마을에 있던 단 한 그루의 꽃나무였다. 내 얼굴은 이미 박태기꽃 빛깔이 되어 있을 거였다. 나는 내 몸에 그런 황홀한 감각이 숨어 있을 줄은 몰랐다.’
박태기나무는 중국이 원산이지만 우리나라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나무다. 나무 이름은 꽃이 피기 직전 꽃망울 모양이 밥알을 닮은 데서 유래한 것이다. 필자 고향에서는 밥알을 ‘밥태기’라고 불러서 이 나무 이름을 듣고 금방 수긍할 수 있었다.
박태기나무는 꽃이 피면 화려하고 모양도 독특해 화단이나 공원에 많이 심는다. 이 나무만 심어 생울타리를 만드는 경우도 있다. 콩과 식물이기 때문에 메마른 곳에서도 뿌리혹박테리아가 질소를 고정해 살아갈 수 있다. 잎은 계수나무 잎과 비슷한 심장형이고 좀 두껍고 반들반들하다. 꽃이 지고 나면 10㎝쯤 되는 꼬투리 모양의 열매가 달린다. 열매도 꽃처럼 다닥다닥 달린다. 어쩌다 꽃이 흰색인 박태기나무도 볼 수 있다.
글·사진 김민철
야생화와 문학을 사랑하는 일간지 기자. 저서로 ‘꽃으로 박완서를 읽다’, ‘문학 속에 핀 꽃들’, ‘꽃을 사랑한 젊은 작가들’ 등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