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젊은 시절에 국가를 위해 헌신한 장병들이 전역 후 안정적으로 사회에 진출할 수 있도록 국방부는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번 박람회를 통해 장병들에게는 취업역량 강화와 일자리 마련의 기회를, 기업들에는 최고의 인재를 발굴할 수 있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
4월 29~30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2024년 국군장병 취업박람회(이하 취업박람회)’가 열렸다. 김선호 국방부 차관은 개막식에 참석해 이같이 말하고 취업을 준비하려는 장병들을 응원했다. 1996년 시작된 취업박람회는 구직 장병과 구인 기업을 잇는 만남의 장이다. 2015년부터 9년 동안 장병 약 1만 명의 취업 성공을 도왔다.
국방부는 취업박람회를 1년에 두 차례(4월·9월) 개최해왔지만 이번엔 한 차례로 줄이는 대신 내실을 다졌다. 초급간부 전역 시기가 6월 말인 데다 기업 채용 시기가 상반기에 집중된 점을 반영하고 ‘당해 연도 전역 예정 초급간부와 상병 및 병장’의 참여를 적극 권장해 실질적인 취업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한 것이다.
2024년 취업박람회 현장은 ‘청년 장병의 내일(My Job+Tomorrow)을 디자인하다’를 슬로건으로 꾸려졌다. 대기업 33개사, 중견기업 42개사, 중소기업 46개사, 정부 및 공공기관 등 유관기관 13개사, 부대행사 참여기관 21개사 등 총 155개사가 참가했으며 현장 부스는 채용 수요가 많은 11개 업종으로 분류됐다. 이는 2023년에 비해 2개 업종(의약·바이오, MICE)이 늘어난 것이다. 양질의 취업정보를 얻을 수 있는 부스가 늘어난 만큼 2023년 취업박람회 대비 두 배에 달하는 2만여 명이 참석하는 등 장병들의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았다.
취업설명회부터 실제 면접 전형까지
4월 29일 오전 취업박람회장 입구가 열리기 전부터 인파가 로비를 가득 채웠다. 오전 9시 정각이 되자 장병들이 속속 입장하기 시작했다. 이번 취업박람회에는 ‘하이패스 입장’ 시스템이 도입됐다. 장병들은 온라인으로 받아놓은 QR코드를 검색대에 내보이기만 하면 돼 입장 시간이 대폭 단축됐다.
곧장 채용공고 게시판으로 향하는 무리가 있는가 하면 미리 점찍어둔 기업의 부스로 직진하는 장병도 있었다. 하나하나 놓치지 않겠다는 듯 초입부터 차례로 이동하는 장병도 있었다. 마치 군사작전처럼 일사불란했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 참석한 민세빈(27) 중위는 “지원할 수 있는 기업이 더 다양해졌다. 1년 전보다 좀 더 절실해진 마음으로 들여다보게 된다”며 채용공고 게시판을 살폈다.
장병들은 방산, 정보기술(IT)·반도체·로봇, 물류·유통, 관광·스포츠, 경호·보안, 제약·바이오 등의 업종에 고루 관심을 보였다. 전호성(21) 상병은 “오래전부터 경호원이 되는 것이 꿈이었는데 어떤 스펙이 필요한지는 정확히 알지 못했다. 이번 박람회에서 확실한 정보를 수집할 수 있어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정재우(23) 상병은 “입대 전 대학교에서 자동차과를 전공하고 있었는데 제대 후 전기과로 전과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며 “전과를 한다면 어떤 진로 설정이 가능한지 상담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부스마다 장병들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았다. 그중에서도 특히 인기있는 부스는 현직 기업의 인사 담당자 및 취업한 군 선배가 함께하는 ‘현직자 멘토링관’, ‘1:1 컨설팅관’이었다. “온라인상에서는 다 해결되지 못한 궁금증을 직접 물어보고 들을 수 있는 기회였다”는 박규보(23) 병장의 얘기가 긴 대기 행렬의 이유를 대신 설명해줬다.
취업박람회에 참석한 한 기업 인사 담당자는 장병들이 공통적으로 “지금 내가 가진 스펙 외에 어떤 것들이 더 필요한지”를 묻는다고 했다. 이 담당자는 “먼저 사회생활을 시작한 선배로 생각하고 궁금한 점을 묻는다거나 인생 고민을 털어놓는 장병도 있었다”면서 “같은 고민을 했던 사람으로서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 수 있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취업박람회장 한편의 세미나관에서는 취업설명회가 한창이었다. ‘MZ세대를 위한 취업 SNS 활용 전략’을 필두로 ‘대통령경호처 공무원 채용 설명회’, ‘대기업 채용 설명회’, ‘대기업 논술시험 경제 특강’ 등이 이어졌다.
퍼스널컬러 진단·힐링버스 등 이색 부스 인기
실제 채용 면접을 치르는 경우도 있었다. 일부 기업은 제대를 앞둔 장병을 대상으로 채용 전형을 진행했다. 이 경우 제대 후 취업까지 소요되는 기간을 줄일 수 있다. 이를 위해 ‘면접 복장’을 무료로 대여해주는 부스가 있었다. 정장으로 갈아입은 한 병장은 “옷을 갈아입으니 빨리 직장생활을 해보고 싶어졌다. 옆 부스에서 증명사진도 무료로 찍어준다”며 웃었다. 이날 면접을 치른 장병에게는 ‘KB면접지원금’ 1만 원이 지급됐다.
기업 채용 관련 부스 외에 한국폴리텍대학 부스, 군 간부 모집관 부스, 비상근 예비군 모집관 부스도 있었다. 한국폴리텍대학 부스의 경우 ‘산업잠수장비 착용 및 호흡, 통화 체험’이 펼쳐졌다. 특수장비를 착용하고 수중에서 토목공사, 선박정비, 용접 등을 할 때 필요한 작업이다. 한국폴리텍대학 산업잠수과 관계자는 “이런 교육이 가능한 기관도 있다는 것을 홍보해야 진로를 고민하는 장병들에게 더 넓은 선택지가 주어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직업체험관에서는 가상현실(VR)로 미래직업을 체험해볼 수 있었다. ‘가상공간디자이너’가 돼 가상공간 속 박물관을 자유롭게 구성하거나 ‘문화재복원전문가’가 돼 발굴 현장에서 유실된 문화재를 찾고 복원하는 첨단기술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제대 후 창업을 계획 중인 장병들을 위한 ‘KB 소호 컨설팅’ 부스도 북적였다. 이곳에서는 자금조달, 마케팅·홍보 등 창업 준비 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서비스에 대한 안내가 이뤄졌다.
인기 부스 중에선 본인에게 가장 어울리는 색을 찾아주는 ‘퍼스널컬러 진단’도 빼놓을 수 없다. 한 장병이 “민망하다”고 자리를 피하자 또 다른 장병이 “면접에서 잘 보이려면 이런 것도 알아둬야 한다”며 붙잡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처음 받는 메이크업이 쑥스러운 듯 눈치를 보던 장병은 금세 진지한 표정으로 ‘이미지 컨설팅’을 받기도 했다.
취업박람회장 중앙에 놓인 실물 버스는 ‘찾아가는 힐링버스’다. 버스에 올라타면 스트레스지수를 분석하는 전문기기, 안마의자, 명상 영상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준비돼 있다. 이번 취업박람회에 처음 적용됐다.
국방부·한국경제인협회 업무협약 체결도
‘인증사진’ 촬영을 위해 줄을 서는 풍경도 벌어졌다. 군 서바이벌 예능 프로그램인 ‘강철부대’ 출연진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육군 특전사 출신이자 ‘강철부대 마스터’로 유명한 방송인 최영재는 개막식 사회를 맡았다. 개막식 축하 영상에 등장한 가수 박군, 아나운서 김황중 역시 ‘강철부대’ 출연자다. 이들은 장병들이 복무 경험을 발판으로 전역 이후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한편 이번 취업박람회 개막식에서는 국방부와 한국경제인협회(이하 한경협) 간의 업무협약(MOU)이 체결됐다. 다양한 방식의 상호협력을 기반으로 장병들의 취업역량을 강화하겠다는 것을 골자로 한다. 국방부는 초급간부들이 취업을 희망하는 대기업 및 중견기업 등의 고용 확산을 촉구하는 정책적인 노력을 강화하고 있다. 한경협은 정부와 기업의 가교 역할을 이행해 청년장병 일자리 지원 확대를 위한 협력체계를 마련할 계획이다. 김창범 한경협 부회장은 개막식 축사를 통해 “국가를 위해 인생의 황금기를 기꺼이 내어준 헌신이 사회적으로 널리 인정받고 각자 꿈꾸는 미래를 실현해나가길 성원한다”고 전했다.
이근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