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남 당진시 솔뫼성지
주소 충남 당진시 솔뫼로 132 | 문의 (041)362-5021
“길은 걸어가면 뒤에 생기는 것입니다.”
한국 최초의 사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이하 김대건 신부)의 일대기를 담은 영화 ‘탄생’에서 청년 김대건이 남긴 명대사다. 중국에서 고국인 조선으로 돌아갈 방법을 찾던 중 “여기는 길이 아니지 않습니까?”라는 동지의 물음에 대한 그의 답은 종교를 초월해 선구자이기를 자처했던 김대건 신부의 짧은 일생을 압축한 말이면서 가르침이기도 하다.
‘2024년 열린관광지’로 선정된 충남 당진시 솔뫼성지는 김대건 신부의 생애와 고결한 정신을 만날 수 있는 탄생지다. 연간 40만 명이 찾는 천주교 성지순례지로 피정과 묵상의 공간이기도 하다. 김대건 신부가 앞서 걸어간 그 발자국을 찾아 솔뫼성지로 떠났다.

4대의 순교 역사 간직한 성지
일찍이 조선 영조시대 때 이중환이 인문 지리서 ‘택리지’를 통해 ‘충청도에서 제일 좋은 땅’이라고 했던 ‘내포’, 그중에서도 당진의 중심에 있는 솔뫼성지는 김대건 신부가 탄생(1821년 8월 21일)해서 천주교 박해를 피해 경기 용인 ‘골배마실(한덕동)’로 이사 가기 전인 7세 무렵까지 살았던 생가 일대를 성지로 조성한 곳이다. 1784년 한국천주교회가 창설된 직후부터 김대건 신부의 증조할아버지 김진후(1814년 해미에서 순교), 작은할아버지 김종한(1816년 대구 관덕정에서 순교), 아버지 김제준(1839년 서울 서소문 밖에서 순교), 김대건 신부(1846년 서울 한강 새남터에서 순교)에 이르기까지 4대에 걸친 순교자가 살았던 터전이다. 김대건 신부는 이곳에서 유년기를 보내며 신앙의 싹을 틔웠다.
‘솔뫼’는 소나무(솔)가 우거진 산(뫼)이라는 뜻이다. ‘솔뫼성지’라 쓰인 표지석을 마주하고 성지는 크게 두 구역으로 나뉜다. 왼쪽은 ‘솔뫼성지’, 오른쪽은 대성당을 품은 천주교 복합예술공간 구역이다. 솔뫼성지에 들어서면 소나무 숲부터 눈에 들어온다. 소나무 숲을 중심으로 김대건 신부 생가를 비롯해 김대건 신부 동상, 광장 겸 야외 미사 및 행사 장소로 쓰이는 솔뫼 아레나, 김대건 신부 기념관, 천주교 대전교구 역사관, 성모 경당 등이 멀지 않은 거리에 서로 모여 있다. 각 탐방 코스 사이엔 경사가 없거나 완만한 경사의 산책로가 이어져 있어 유모차나 휠체어로도 편히 둘러볼 수 있다.


김대건 신부 기념관부터 생가까지
천주교 순례객들은 김대건 신부 생가를 시작으로 김대건 신부 동상에서 참배하고 십자가의 길, 김대건 신부 기념관, 천주교 대전교구 역사관 순으로 탐방한다. 일반 탐방객은 김대건 신부 기념관부터 들러보길 권한다. 김대건 가문 순교자 연보부터 김대건 신부가 직접 만든 ‘조선전도(프랑스국립도서관 소장)’, 한국 교회사에 관해 쓴 3편의 비망록까지 김대건 신부의 생애와 발자취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김대건 신부는 16세 때 프랑스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모방 신부에 의해 최양업(토마스), 최방제(프란치스코)와 함께 신학생으로 간택돼 마카오로 유학을 떠난다. 이후 1845년 중국 상하이 ‘김가항성당’에서 페레올 주교로부터 사제 서품을 받고 한국 최초의 사제가 돼 그해 10월 고국으로 돌아온다. 귀국 후 용인 일대(현 은이성지)에서 사목을 펼치다가 병오박해(1846년) 때 군문효수형을 받고 ‘새남터(서울 용산구 이촌동 소재)’에서 25세의 나이로 순교한다. 이후 1984년 5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성인 품위에 오른다.
기념관에 들어서면 ‘어떤 나무든지 열매를 보면 그 나무를 알 수 있다’는 성경 구절이 시선을 끈다. 아래엔 김대건 신부의 가계도가, 아담한 영상관에선 사제서품식 관련 영상인 ‘예, 여기 있습니다’가 기다린다. 1845년 부제 서품을 받은 김대건이 입국했을 당시에 그렸다던 ‘조선전도’는 김정호의 ‘대동여지도(1861년)’보다 16년 앞서 제작된 것으로 우리나라의 지명을 서구 사회에 처음 알린 지도로서 가치가 있다.
김대건 신부 흉상은 가톨릭대 해부학교실 팀이 김대건 신부의 유골을 바탕으로 얼굴을 복원해낸 전시품이다. 이곳 문화관광해설사에 따르면 김대건 신부 유해인 뼛조각에 대한 과학적 분석을 통해 골격을 제작한 뒤 19세기 당시 남성의 얼굴 윤곽에 맞춰 만들었다고 한다. 이 흉상을 통해 김대건 신부의 실물을 어렴풋이 추측해볼 수 있다. 오랫동안 솔뫼성지 성당으로 사용해오다 복합문화공간으로 재개관한 천주교 대전교구 역사관도 들러볼 만하다.
김대건 신부 생가는 생가지에 자리잡고 있다. 생가의 역사는 1906년 김대건 신부 순교 60주년을 맞아 당시 합덕성당의 주임신부였던 크렘프 신부가 주변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 생가 터를 고증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순교 100주년인 1946년에 순교 기념비를 세우면서 소나무 군락과 함께 성지로 조성하기 시작했다. 1998년부터는 생가지 발굴 작업을 시작해 2004년에 생가 안채가 복원됐다. 생가 마당엔 2014년 이곳을 방문했던 프란치스코 교황이 당시 기도하던 모습을 동상으로 재현해놨다.
‘소외받은 자’들을 위해 평생 헌신하다 4월 21일 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4년 8월 4박 5일간 방한했다. 즉위(2013년) 이듬해 첫 아시아 방문지로 한국을 택한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방한 중 세월호 참사 유족을 위로하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나 꽃동네 장애인 등 고통받거나 소외된 이들과 마주하며 한국 사회에 용기와 희망을 불어넣었다.

장미꽃을 형상화한 대성당
소나무 숲이 우거진 십자가의 길까지 한 바퀴 둘러본 후 천주교 복합예술공간인 ‘기억과 희망’ 안에 자리한 대성당으로 향해볼 차례다. 2021년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을 맞아 개관한 공간이다. 대성당은 장미꽃잎을 형상화했다. 대성전 입구에 자리 잡은 커다란 석문은 프란치스코 교황 방문 당시 축복한 돌을 옮겨 문으로 삼아 의미를 살렸다. 500명이 미사를 볼 수 있는 성당 내부로 들어서면 신비로운 빛을 뿜어내는 압도적인 스테인드글라스와 마주한다. 성당 한쪽엔 지난해 새롭게 조성한 ‘김대건 신부 집안 기념관’도 있다. 김대건 신부 가문에서 순교한 이들의 이름이 조명과 함께 은은하게 빛난다. 비치된 QR코드를 찍으면 스마트폰으로 해설을 들을 수 있다. 바로 옆에선 솔뫼성지 성역화 사업에 관한 100년 역사도 한눈에 훑어볼 수 있다. 맞은편에 있는 ‘이춘만 미술관’에선 가톨릭 미술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합덕성당, 버그내순례길까지
솔뫼성지 탐방 후 당진 성지순례 코스를 이어간다면 ‘합덕성당’과 ‘신리성지’ 등을 눈여겨볼 일이다. 차로 합덕성당이 5~6분, 신리성지가 10~12분 거리에 있다. 특히 솔뫼성지에서 시작해 신리성지로 이어지는 코스(13.3㎞)는 ‘한국의 산티아고’로 불리는 성지순례길이자 도보 여행길인 ‘버그내순례길’이다. 버드나무 드리운 호젓한 산책길과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벌판을 가르는 둑길 등 다양한 코스가 기다린다. 천주교의 역사와 순교자들의 숭고한 정신을 따라 밟는 길에 뜻밖의 힐링이 숨어 있다.
글·사진 박근희 객원기자

가까이 있는 열린관광지 합덕제수변공원
조선 3대 저수지… 천연기념물이 사는 생태체험장
솔뫼성지에서 차로 5~6분 거리에 있는 합덕제는 황해도 연안 남대지, 전북 김제 벽골제와 함께 조선 3대 저수지 중 하나로 꼽힌다. 축조 시기는 고려시대 이전으로 추정한다.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2017년 국제관개배수위원회가 지정한 ‘세계 관개시설물 유산’으로 등재됐다. 현재는 농경지로 사용하고 있으며 제방의 원형만 남아 있어 일부 구간을 ‘연지’로 조성했다. 연꽃이 많아서 연지, 연호방죽으로도 불린다.
솔뫼성지와 함께 2024년 열린관광지에 선정된 ‘합덕제수변공원’은 생태체험장이자 나들이 명소로 인기다. 천연기념물인 큰고니, 고니, 저어새와 멸종 위기 야생동물인 금개구리, 수원청개구리, 맹꽁이 등이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여름엔 연꽃이, 봄에는 벚꽃과 버드나무, 초화류가 볼거리를 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