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바일 주민등록증 발급해보니
지갑을 안 가지고 다닌 지 오래다. 웬만한 결제는 카드로 하는 탓에 현금이 필요 없어서다. 심지어 카드지갑도 필요하지 않다. 각종 체크·신용카드부터 교통카드까지 휴대폰 칩에 내장돼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은행, 관공서, 병원에 갈 때다. 지갑에 고이 넣어둔 신분증을 깜박 잊기 일쑤다. 그런데 지갑을 어디 놔뒀더라?
앞으로는 이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3월 14일부터 전국 모든 주민센터에서 행정안전부의 ‘모바일 주민등록증’이 전면 발급된 덕이다. 주민등록증마저 스마트폰 속에 넣어둘 수 있게 됐다는 얘기. 실물 신분증이 요구되는 온·오프라인 모든 곳에서 모바일 주민등록증은 그 역할을 대신한다. 공공·금융기관, 공항, 식당, 편의점 등에서 신원을 확인하는 용도로 쓸 수 있다. 앞서 2022년 국내 최초의 디지털 신분증인 ‘모바일 운전면허증’이 발급됐지만 운전면허가 없는 사람은 이용이 제한되고 반드시 주민등록증을 제시해야 하는 상황도 있었다. 모바일 주민등록증은 언제 어디서든 프리패스다. 바야흐로 ‘지갑 없는 세상’의 완전한 구현!
주민등록증을 소지한 17세 이상 국민이라면 누구나 발급 가능하다. 일단 행정복지센터(주민센터)를 방문해야 하는데 주소지와 상관없이 전국 주민센터 어느 곳이든 이용해도 된다는 점 역시 편리하다. 주민센터에 방문할 시간이 없다고? 정부24(www.gov.kr)에서도 발급 가능하니 걱정 마시라.

앱 설치·얼굴인증만 하면 발급 완료
집 앞 주민센터로 달려갔다. 준비물은 딱 하나, 실물 주민등록증이다. 직원에게 발급을 요청하니 곧장 이런 말이 따라온다. “애플리케이션(앱)은 다운받으셨어요?” 모바일 주민등록증 발급의 첫 단계는 앱 설치다. 휴대폰으로 ‘대한민국 모바일 신분증’을 검색한 뒤 앱을 내려받고 본인인증 절차를 걸치면 1단계 준비 완료. 그다음으로는 IC칩 내장 방식과 QR코드 인증 방식 중 선택해야 하는데 추가 비용이 들지 않는 QR코드 인증 방식을 택했다. IC칩 내장 방식은 IC칩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아야 해 수수료 1만 원이 든다. 대신 스마트폰에 이 실물 주민등록증을 접촉하면 모바일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을 수 있어 휴대폰 교체나 분실 시 직접 재발급이 가능하다는 게 장점이다.
발급 신청서를 작성한 뒤 주민센터 키패드에 뜬 QR코드를 휴대폰 카메라로 찍자 ‘얼굴인식’ 단계로 넘어갔다. 휴대폰 화면을 보며 최대한 자연스러운 표정을 지어본다. 그런데 웬걸? 인식 실패. 다시 한 번 도전, 그러나 또 실패다. 직원에게 문의하자 “실물 주민등록증 사진과 다르다고 판단하면 인식되지 않는다”는 답변이 돌아온다. “아무래도 사진이 오래된 탓 같다”는 말에 주민등록증 발급일자를 보니 무려 7년 전. 헤어스타일도 체중도 달라졌다.
다행히 주민센터 직원이 직접 얼굴을 확인한 뒤 인증할 수 있는 절차가 있다. 이후 컴퓨터에 코드번호를 입력하면 인증 성공이다. 한 번에 얼굴인증을 성공하고 싶다면 카카오톡 모바일 신분증 채널의 ‘안면인증 가이드’를 미리 살펴보자. 발급 후 직접 모바일 주민등록증을 사용할 때도 얼굴인증이 필요하기 때문에 정확한 사용법을 숙지해두면 도움이 된다.
이렇게 하면 모든 절차는 끝이다. 앱 화면엔 실물 주민등록증과 똑같은 모습의 이미지가 떴다. 주민번호 뒷자리는 가려진 채다. 휴대폰을 흔들거나 화면을 터치하면 뒷자리와 주소까지 모두 뜬다. 상황에 따라 중요정보를 가리고 신분증을 보여줄 수 있다. 실물 신분증이 갖지 못한 장점이다.
모바일 주민등록증을 손에 쥐기까지 걸린 시간은 단 9분. 만약 앱을 미리 설치한 뒤 주민센터를 방문했거나 얼굴인식에 오류가 나지 않았다면 시간은 절반으로 줄어들었을 것이다. 실제로 ‘발급에 채 5분이 걸리지 않았다’는 후기가 많았다. 단 몇 분만 투자하면 주민등록증을 365일 휴대폰 속에 넣어 다닐 수 있게 된 것이다.
계좌개설부터 증명서 발급까지 OK
이제 직접 사용해볼 차례다. 마침 새 계좌를 개설해야 했다. 제도 시행 약 한 달, 모바일 주민등록증은 현실 세계에서 잘 통할까? 신분 확인이 까다로운 은행으로 향했다.
창구에서 계좌를 만들겠다고 하니 당장 신분증부터 달라고 한다. 모바일 신분증 앱을 켠 뒤 직원에게 내밀었다. 혹시나 실물 신분증을 요구하진 않을까? 걱정과는 달리 직원은 창구에 설치된 패드에 QR코드를 띄운 뒤 본인인증을 하라고 했다. 휴대폰으로 QR코드를 촬영한 뒤 얼굴인식 절차를 거쳤다. 앞서 모바일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을 때와 같은 방식이다. 이번엔 얼굴인식도 한 번에 성공했다.
이후 신청서를 작성하고 몇 가지 안내사항을 전달받고 나니 계좌개설이 끝났다. 이 역시 7~8분 내외로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앞서 본인인증-휴면계좌 해지-계좌개설-체크카드 발급까지 QR코드와 얼굴인증을 매번 새로 해야 해 번거로웠다는 몇몇 후기와 달리 모든 절차가 금세 마무리됐다. 이유가 있었다. 정부가 ‘진위확인·사본저장 서비스’를 도입한 덕분이다. 이제 모바일 신분증도 실물 신분증처럼 접수 기록을 위한 사본을 남길 수 있다. 즉 한 번만 개인정보 검증 절차를 거치면 디지털 방식으로도 신분증 사본을 생성·출력·저장하는 게 가능해졌다는 얘기다.
그런데 만약 신분증 제시가 필요한 상황에서 모바일 주민등록증 사용을 거절당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앱 화면 아래 ‘법적 효력 안내’를 누르면 ‘일반 주민등록증과 동일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안내문구와 함께 행정안전부장관의 직인이 뜬다. 이 화면을 보여줘도 상황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다시 그 아래 ‘콜센터 도움받기’ 메뉴를 눌러보자. 곧장 콜센터 전화(1688-0990)로 연결돼 직원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은행 밖으로 나가려던 찰나, 무인민원발급기를 보니 아이 유치원에 가족관계증명서를 제출해야 한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이때도 본인인증을 모바일 주민등록증으로 할 수 있다. 이 밖에도 전입신고, 인감증명서 발급, 주민등록표 열람 등에도 휴대폰 속 주민등록증은 유효하다.

해킹 걱정? 실물 신분증보다 안전해
디지털 세상의 편리함에 감탄하는 사이, 우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개인정보 유출 위험성이 높지 않느냐’는 것이다. 정부의 설명에 따르면 모바일 주민등록증을 포함한 모바일 신분증은 실물 신분증보다 안전하다. 블록체인과 암호화 기술을 기반으로 본인의 스마트폰으로만 발급이 가능하고 앱을 열기 위해선 생체인증 등을 거쳐야 해 개인정보가 쉽게 유출되기 어렵다. 특히 개인정보가 공용 서버에 저장되는 공인인증서와 달리 신분증명에 필요한 정보가 휴대폰의 ‘개인키’에만 저장된다. 개인정보의 주체가 기관이 아닌 ‘나’라는 얘기다.
물론 한계도 있다. 모바일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인터넷·데이터 환경이 좋지 않을 땐 서비스가 다소 느릴 수 있다. 앞서 말했듯 얼굴인증이나 QR코드 인식이 더욱 원활해질 필요도 있다. 그럼에도 휴대성과 안전성, 범용성은 거부하기 힘든 장점이다. 어르신들도 어려움을 느끼지 않을 만큼 사용법이 간편하다. 오늘도 신분증 챙기는 걸 깜박했다고? 이젠 집으로 돌아갈 필요가 없다. 모바일 주민등록증으로 두 손 가벼운 디지털 세상의 편리함을 누려보자.
조윤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