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남북정상회담의 주요 의제는 한반도 비핵화, 한반도 평화 정착, 남북관계 발전이다. 첫 단추는 비핵화다. 이 과정은 먼저 핵협상을 이룬 ‘리비아식’도 ‘이란식’도 아닐 가능성이 크다. 한반도 실정에 맞는 평화적 해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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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한국형 모델’을 제시한다. 남북정상회담에서 ‘포괄적 합의’를 이룬 뒤 북미정상회담에서 ‘일괄적 타결’을 시도해야 한다는 것으로, 추후 재개될 비핵화 다자회담에서 ‘단계적 이행’을 추진하는 방식이다.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남북·북미정상회담의 역할 분담이 강조되는 대목이다.
아울러 남북이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전쟁 상태를 끝내려는 노력을 통해 평화정착에 한 걸음 내딛기를 기대했다. “지금이 한반도 냉전구조를 완전히 해체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라고 강조하는 조성렬 연구위원. 점점 기회의 창이 열리는 듯하다.
‘2018 남북정상회담’이 2000년·2007년 남북정상회담과 어떤 차이가 있나?
과거 두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은 냉전구조 해체를 위해 우리 정부가 주동적으로 남북관계를 풀고 주변국이 따라오는 형태로 진행됐다. 그런데 지난해 말 북한이 국가핵무력 완성을 선언하며 ‘균형의 힘(power of balance)’이 이뤄졌다. 북한의 협상 요구를 무시할 수 없게 된 상황이다. 북핵,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미사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남북, 북미 대화가 필요하다.
2000년에는 6월 남북정상회담 후 10월 미국 올브라이트 장관과 북한 조명록 차수가 만나 북미공동코뮤니케를 발표했다. 한반도 평화체제 보장, 북미정상회담 이야기가 오갔지만 한 달 뒤 부시 행정부가 등장하며 합의가 무산됐다. 2007년도 10월 남북정상회담 후 두 달 뒤 새로운 정부가 등장하며 동력을 확보하지 못했다. 2018 남북정상회담은 문재인 대통령 4년, 트럼프 대통령 2년 8개월의 시간적 여유가 있어 상당한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기대감이 높다.
비핵화가 주요 의제로 거론되고 있다. 먼저 협상이 타결된 리비아와 이란 비핵화 방식이 북한 비핵화 방식과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리비아는 과거 미국 팬암기 폭파사건에 리비아 정부가 연계돼 있었다는 사실로 궁지에 몰렸다. 게다가 2003년 10월 핵개발을 위해 고농축우라늄을 밀반입하다가 적발됐다. 당시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있던 때로 다음 타깃으로 리비아가 유력하다는 이야기가 파다했다. 리비아는 2003년 10월 핵포기 선언을 했다. 핵 관련 프로그램을 미국에 넘기며 핵시설을 분해·폐기하기 시작했다. 연락사무소를 개설하고 제재가 부분적으로 해제됐고, 핵시설이 완전히 해체된 뒤에야 제재 해제와 국가 정상화가 이뤄졌다. 22개월이 걸렸다. 리비아는 미국이 원하는 걸 다 들어주면서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핵개발 수준이 초기 단계로 미국이 공격할 경우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반면 북한은 핵실험을 여섯 차례 하고 ICBM급 미사일을 개발해서 협상력이 다르다. 리비아 해법은 북한에 적용하기 어렵다.
이란은 2015년 ‘P5+1(미국, 중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독일)’ 국가와 핵협상을 타결했다. 이란은 1만 9000기가 넘는 원심분리기를 한 번에 없앨 수 없었다. 10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가동을 완료하고 그에 맞춰 제재를 해제해 동결을 완료하면 사실상 핵을 폐기하는 방식을 취했다. 단계적으로 핵을 폐·동결하는 내용이었는데 트럼프 대통령이 제동을 걸었다. 핵동결을 10년간 유지하기만 하면 자동으로 모든 제재를 해제해 주기로 한 ‘일몰조항’을 5월 12일까지 삭제할 것을 요구했다. 이란 정부가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으면 이란 핵합의를 인정하지 않게 된다. 북한은 이란 정부의 입장을 지지하고 있어 향후 북미 비핵화 협상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식 비핵화 해법으로 ‘한국형 모델’을 제시하고 있는데?
‘한국형 모델’은 비핵화 해법에서 ‘포괄적 합의’, ‘일괄적 타결’, ‘단계적 이행’으로 접근하는 방식이다. 우리가 요구하는 북한 비핵화는 핵 제조시설, 핵물질, 핵탄두, ICBM급 장거리미사일 모두를 포함한다. 반면 북한은 체제 안전 보장, 군사 위협 해소를 말한다. 한국과 미국, 북한이 원하는 모든 것을 바구니에 담는 개념이 ‘포괄적 합의’다. 남북정상회담에서 이뤄져야 할 부분이다.
다음으로 북한이 핵시설을 포기하면 무엇을 줄 건지, 핵탄두를 포기하면 무엇을 줄 건지 등가로 교환해야 한다. 단, 항목이 많으니까 현재·미래 핵, 과거 핵, ICBM 등 세 개의 카테고리로 구분해 폐기에 상응하는 보상 내용을 규정하는 것이다. 첫 번째 패키지인 현재·미래 핵은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재가입과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 복귀, 북한의 핵 시설 폐기를 말한다. 플루토늄을 만드는 영변원자로와 고농축우라늄(HEU) 생산을 위한 원심분리기는 신고·폐기·검증한다. 그런데 이 부분은 시간이 오래 걸린다. 의외로 시간이 적게 걸리는 건 두 번째 패키지인 과거 핵이다. 이미 보유하고 있는 과거 핵을 북한이 해외로 반출하는 조치를 취하는 것이다. 핵탄두는 핵물질과 기폭장치로 이뤄지는데 평소에는 분리 보관한다. 가장 안전한 건 핵물질을 반출하고 기폭장치 해체가 병행되는 것이다. 마지막 패키지는 ICBM 해체다. 세 개의 카테고리 별로 ‘일괄적 타결’을 이룬다. 비핵화 방법에 대한 약속으로, 이행은 아니다. 북미정상회담에서 논의돼야 할 부분이다. 그다음이 ‘단계적 이행’이다. 이 과정을 통틀어 한국식 해법이라고 제안한 것이다.
비핵화 외에도 ‘종전’에 대한 논의가 나오고 있는데?
트럼프 대통령이 미일정상회담에서 “남북한이 종전을 협의하는 것을 축복한다(They do have my blessing to discuss the end to the war)”고 했다. 이는 ‘종전선언’이라는 개념화된 용어를 거론한 것이라기보다 남북이 상호불가침, 상대방에 대한 전쟁 불용 등 적대행위를 종식한다는 개념에 가깝다. 당장의 남북정상회담에서 종전선언은 어렵다. 차후 남·북·미·중 4자가 할 일이다. 대신 남북이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미국과 중국이 추인하는 방식의 평화체제 전환 이야기는 가능하다. 평화체제 전환은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르지만 크게 법제도, 군비통제, 대외관계 등 세 가지 측면에서 볼 수 있다. 법제도 측면에서는 평화협정 체결, 군비통제 측면에서는 남북군사회담과 긴장 완화, 대외관계 측면에서는 북미 정상화를 뜻한다.
조 연구위원은 군비통제 측면에서 남북 군사회담 외에도 남·북·미 군사회담을 제안하고 있는데?
남북 군사회담에서는 우발적 충돌을 방지하고 군사적 신뢰 구축 등을 추진할 수 있다. 이외에 한반도 군사구조 문제를 남·북·미 군사회담에서 논의할 필요가 있다. 1997~1999년 사이 진행된 4자회담 당시 ‘평화체제 분과’, ‘긴장완화 분과’가 있었다. 북한이 군사적 긴장완화 측면에서 주장한 주요 내용이 주한미군 철수였다. 미국은 주한미군을 철수하면 한반도 군사 균형이 깨진다는 이유로 반대했다. 그런데 2007년 미국 싱크탱크 아틀란틱 카운슬(Atlantic Council) 보고서에 남·북·미 군사협정 이야기가 언급됐다. 북일·북미 수교는 양자가 하고, 군사협정은 남·북·미 3자, 평화협정은 남·북·미·중 4자, 동북아 다자안보는 6자가 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지금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연장선상에서 남·북·미 간 군사문제를 협의하면 된다. 중국은 한반도 역외다. 한반도에 군대를 주둔한 주체가 남·북·미이고 1994년 군사정전위에서 중국이 철수하며 한반도 군사구조 문제에 관여할 권한도 없어졌기 때문이다. 셀리그 해리슨이 쓴 <코리아 엔드게임>에도 북한이 3자 군사기구를 언급한 바 있다.
남북정상회담이 남·북·미정상회담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우리 정부는 남·북·미정상회담까지 시야를 두고 진행하는 것 같다. 북미정상회담 장소로 평양, 워싱턴이 거론되는데 개인적으로는 제주도에서 열렸으면 한다. 제주도에서 북미정상회담이 열리면 우리 정부도 자연스럽게 참여할 수 있다. 물론 북미가 결정할 문제로 쉽지는 않을 전망이다. 남북미 정상이 만나는 자리로 9월 열리는 유엔총회도 기회가 될 수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워싱턴에 들르고 세 정상이 뉴욕 총회에서 만나는 거다. 또 별도의 회담을 마련할 가능성도 있다.
끝으로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다면?
우리가 판은 만들었지만 이번 정상회담의 주역은 한국이면서도 트럼프 대통령, 김정은 국무위원장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남북정상회담은 북미정상회담에 앞서 열리는 길잡이 역할임”을 강조했다. 한국이 드라이브를 걸기는 했지만 세 나라 모두 주인공이라고 해야 한다.
지금은 한반도 냉전구조를 완전히 해체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다. 아직 가보지 않은 길을 가는 것이라 예측하지 못한 난관이 숨겨져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도 작은 문제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초당파적 협력과 국민의 지지가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어렵게 만든 불씨를 잘 가꿔가면서 진정한 한반도 평화정착과 통일을 만들어가야 한다.
*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서울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하고 성균관대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북한연구학회 회장, 한국국제정치학회 부회장을 역임하며 다양한 학술·연구 활동을 이어왔고 다수의 통일·외교·안보 관련 저서를 집필하며 연구의 저변을 넓혀왔다. 청와대 국가안보실 자문위원, 통일부 자문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남북정상회담 자문단 전문가 자문위원으로 임명됐다.
한반도 평화정착 위한 중매자
“최고지도자 간 톱다운 방식으로 신뢰 구축해야”
▶ ‘세종국가전략포럼’이 2018 남북정상회담과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 전략을 주제로 4월 12일 개최됐다. ⓒ통일부
‘2018 남북정상회담과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 전략’을 주제로 ‘세종국가전략포럼’이 지난 4월 12일 개최됐다. 세종연구소와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회가 공동 주최한 이번 포럼에서는 2018 남북정상회담 개최 합의 배경과 의의, 한반도 비핵화와 냉전구조 해체 전략, 남북 정치·군사적 신뢰 구축과 남북경협 추진 방향 등이 논의됐다.
정해구 정책기획위원장은 개회사에서 “2018 남북정상회담이 한반도의 비핵화를 담보하고 항구적인 평화 안착의 직접적인 계기가 돼야 한다”고 했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로서 우리의 운명이 걸린 사안에 대해 (정부는) 창의적인 해법을 마련하고 주도적인 노력을 기울여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정착 과정에 적용할 수 있는 해법을 모색하기 위해 머리를 맞댔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리더십을 재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정 실장은 “김 위원장 집권 후 당·경제 엘리트의 영향력이 확대되고 시장이 활성화되면서 주민들의 경제사정도 개선되는 변화들이 감지됐다”면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보여준 과감한 군부 개혁, 경제 개혁·개방 조치 등을 고려할 때 새로운 안전보장 장치와 경제 부흥의 계기가 마련되면 핵포기 결단을 내릴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이어 “핵포기 결단을 내릴 때 대북 제재 해제, 북한 경제개발구의 투자 등으로 대응한다면 김 위원장은 중국의 덩샤오핑과 같은 개혁·개방 지도자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김용현 동국대 교수는 “북한을 움직이게 하는 힘은 평화체제일 수밖에 없다”면서도 “종전선언을 트럼프 대통령이 제안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무소유의 중매자’ 역할을 강조하며 “남북·북미정상회담에서 비핵화 성과가 나온다면 모든 공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줘도 좋다”고 했다. 또 최고지도자 간 ‘통 큰 결단’을 통해 톱다운(Top-down) 방식으로 상황을 하나하나 돌파해가면서 신뢰를 쌓아갈 것을 당부했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북한이 2016년 8월 발간한 도서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전보장문제>를 근거로 들며 비핵화에 대한 대가로 ▲평화협정 체결 ▲북미관계 정상화 ▲주한미군 문제 등을 제시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어 북미정상회담 개최가 북한이 예상한 속도를 뛰어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현재 (북한의) 예상 속도보다 1.5~2배가량 빠른 것”이라고 말한 홍 실장은 “북미정상회담 이후에는 남·북·미 또는 남·북·미·중 정상회담을 준비하고 체제안전 보장의 제도화를 위한 대외 행보에 나설 것”이라고 분석했다.
문장렬 국방대 교수는 “북한의 비핵화, 북미관계 개선, 남북 정치군사적 신뢰 구축이 긍정적으로 결합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도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군사적 신뢰 구축 방안으로 접촉-교류-협력-통합의 로드맵을 제시했다. 문 교수는 “남북 정상 간 핫라인 설치 후속으로 군사당국자 간에도 핫라인을 설치·운용해야 한다”며 “군사 핫라인은 당국자 간 신뢰 구축을 위한 수시·정기 통화를 실시함으로써 위기시의 ‘핫라인’뿐 아니라 평상시 ‘웜라인(warm line)’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선수현 | 위클리 공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