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정리하고 새해 계획을 세우는 크리스마스 시즌은 비단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많은 이들에게 큰 의미를 지닐 수 있는 때였다. 그러나 이미 오래전부터 크리스마스 특유의 분위기는 활기를 잃은 채 시든 꽃처럼 퇴색되었다. 아마도 인터넷과 디지털이라는 말이 보편적으로 쓰이게 되면서부터 우리는 크리스마스의 그 따사롭고 포근한 모습을 잃어온 듯하다.
우리가 잃은 크리스마스의 모습 중 가장 두드러진 건 생각건대 크리스마스 캐럴이 아닐까 한다. 이제는 거리에서 캐럴을 거의 들을 수가 없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성탄 시즌에 집에서 편히 앉아 느긋하게 캐럴을 듣는 것도 아니다. 휴식이나 축일을 즐기는 방식과 분위기가 달라진 거다. 문득 고등학교 때 음악선생님이 생각난다. 겨울방학을 앞둔 어느 날 수업시간에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부른 적이 있다. 합창을 하고 난 후 분위기에 취한 듯 잠시 침묵하던 선생님은 캐럴에 얽힌 여러 얘기를 들려주고 이런 말씀을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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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캐럴이 꼭 종교적인 의미를 가지는 건 아냐. 나는 교회에 다니지는 않지만 성탄 때만이 아니라 한여름에도 캐럴을 듣고 싶을 때가 있거든. 근데 말이다, 캐럴을 듣고 있으면 마음이 참 편안해진다. 흥겨운 리듬이든 조용한 멜로디든 그걸 가만히 들으면서 흥얼거리다 보면 마음이 착해지는 것 같단 말이지. 그래서 너희들한테도 캐럴을 권하고 싶다. 페리 코모나 앤디 윌리암스, 프랭크 시나트라가 부른 캐럴 음반 하나 정도는 집에 가지고 있어도 좋을 거야.”
캐럴을 들으면 마음이 착해지는 것 같다
“마음이 착해지는 것 같다”는 말에 크게 공감이 갔다. 어렸을 때부터 캐럴을 들으면 괜스레 즐겁고 기분이 좋았으니까. 아이와 같은 순수함에서 비롯된 즐거움이 캐럴에 담겨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 시대가 변하고 사람들의 취향도 바뀌어 캐럴 또한 다양한 모습을 가지게 되었다. 분명 귀에 익은 캐럴 멜로디이긴 한데 록이나 R&B, 또는 일렉트로팝으로 편곡이 되어 있기도 하고 심지어 힙합 스타일로 펼쳐지기도 한다. (물론 머라이어 캐리의 히트곡이 등장한 1994년 이후 매년 가장 많이 듣게 되는 캐럴은 단연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지만 말이다.) 편안하게 감상하거나 가볍게 발을 구르며 노래를 흥얼거릴 수도 있는, 고전적인 사운드로 펼쳐지는 전통 캐럴이 마음에 평화를 안겨주는 건 사실이지만 다채로운 스타일로 펼쳐지는 캐럴 역시 기분 좋은 감흥을 선사한다.
크리스마스는 ‘그리스도(Christ)’와 가톨릭의 성찬식을 일컫는 ‘미사(Mass)’가 합쳐진 말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일’을 뜻한다. 크리스마스 날짜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12월 25일은 원래 고대 로마의 동지(冬至)였다. 당시 로마에서는 하루해가 가장 짧았다가 다시 길어지기 시작하는 12월 25일을 태양의 탄생일로 보고 12월 24일부터 이듬해 1월 6일까지를 축제 기간으로 삼았는데, 이때 그들은 농업의 신 사투르누스(Saturnus; 그리스 신화의 크로노스)에게 제사를 지냈다. 기독교는 이러한 뿌리 깊은 전통을 자신들의 것에 융화시키고자 했다. ‘세상의 빛’이 탄생한 날인 12월 25일을 예수의 탄생일로 결정한 것은 민간신앙에서 숭배하는 태양과 예수 그리스도를 일치시킴으로써 기독교를 이교도들에게 더욱 의미 있게 설명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볼 수 있다. 크리스마스를 교회가 교리적으로 지키기 시작한 것은 4세기 후반부터인데 그 정확한 시기에 대해서는 서기 335년부터라는 설과 354년부터라는 설이 맞서 있다. 그 전에는 예수가 세례를 받았다는 날인 1월 6일을 크리스마스로 지켰다고 한다.
이후 전 유럽으로 퍼져나간 크리스마스는 여러 독특한 전통을 만들어가게 된다. 먼저 손에 꼽을 만한 것으로 크리스마스트리를 들 수 있다. 이는 고대 이집트의 동지 축제 때 만들었던 나뭇가지 장식이나 로마의 축제 행렬에서 사용하던 촛불을 단 월계수 가지 장식 등과 같은 성목(聖木) 숭배에 그 기원을 둔다. 크리스마스트리로 전나무가 사용된 까닭은 8세기 독일에서 비롯된 전설에서 찾을 수 있다. 당시에는 게르만 민간신앙에서 신성시되던 ‘토르의 떡갈나무’에 사람을 제물로 바치던 야만적인 풍습이 있었는데, 영국의 선교사 성 보니파스(Saint Boniface)가 도끼로 그 나무를 쓰러뜨리고는 (평화와 불멸을 상징하는) 전나무를 가리키며 “이 나뭇가지를 가지고 돌아가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라”는 설교를 해서 그 풍습을 중지시켰다고 한다. 이후 16세기에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Martin Luther)가 복음 전파를 위해 전나무에 촛불을 장식한 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크리스마스트리의 기원이다.
중세 프랑스인의 원무, 까롤
다음은 산타클로스. 오랫동안 전 세계 수많은 어린이들의 가슴을 설레게 해온, 크리스마스 하면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이 매력적인 캐릭터의 기원은 4세기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의 터키가 있는 소아시아 지방에 살던 그리스인 주교 성 니콜라스(Saint Nicholas)는 어느 날 이웃의 세 자매가 가난해서 결혼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는 이들을 몰래 도와주기 위해 밤에 유리창을 통해 금화가 든 세 개의 주머니를 던져 넣었다. 다른 전설에서는 그가 지붕 위의 굴뚝으로 돈 주머니를 떨어뜨렸는데 마침 벽난로에 널어놓은 양말 속으로 들어갔다고 얘기한다. 이 연유로 크리스마스에 산타클로스가 굴뚝을 타고 내려와 선물을 양말 속에 넣고 간다는 흐뭇한 이야기가 생기게 되었다. 불룩 튀어나온 배와 하얀 수염, 빨간 옷을 입은 산타클로스의 전형적인 이미지는 미국의 시사만평 만화가 토마스 내스트(Thomas Nast)가 1863년 그린 만화에서 비롯되었다.
마지막으로 가장 즐거운 크리스마스의 전통인 캐럴이다. 축가, 송가를 뜻하는 영어의 ‘캐럴(carol)’은 옛 프랑스어의 ‘까롤(carole)’에 기원을 두는데, 이는 중세 프랑스인들이 둥근 원을 만들어 췄던 원무(圓舞)를 일컫는 말이다. 이 원무는 원래 여러 농경민족의 동지 축제에서 사용된 무곡이었다고도 한다. 이렇듯 캐럴은 춤출 때 부르는 노래를 일컫는 말이기 때문에 모든 캐럴이 반드시 크리스마스와 관련을 가지는 건 아니다. 일반적으로 그 음악이 캐럴인지 아닌지의 여부는 곡의 가사가 아니라 음악적 형식, 즉 곡에 반복구(후렴)가 각 절의 가사 끝에 자리하느냐에 따라 결정되었기 때문에 캐럴은 ‘크리스마스 노래’만을 일컫는 게 아니었다. 그래서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를 주제로 하거나 겨울의 풍습과 전설을 노래한 일반적인 크리스마스 캐럴 외에도 부활절이나 성령강림절 등 교회 행사와 각 절기마다 펼쳐지는 축제를 위한 캐럴이 존재했던 것이다. 캐럴의 가사는 대부분 라틴어와 영어로 이루어져 있다. 크리스마스 캐럴은 프랑스어로 노엘(Noël), 독일어로는 바이나흐트 리트(Weihnacht Lied)라고 한다. 모두 ‘크리스마스 노래’라는 의미다.
‘징글벨(Jingle Bells)’(1857), ‘산타할아버지 우리 마을에 오시네(Santa Claus Is Coming To Town)’(1934), ‘화이트 크리스마스(White Christmas)’(1942), ‘루돌프 사슴코(Rudolf The Red-Nosed Reindeer)’(1949) 등 우리에게 잘 알려진 여러 캐럴이 그렇듯 크리스마스 캐럴의 내용이 모두 성경이나 기독교 교리에 바탕을 둔 건 아니다. 보통 크리스마스 또는 겨울과 관련된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내용으로 한 것이 많은데, 이는 원래 춤을 추기 위한 곡으로 즐겁고 흥겨운 기분을 노래하기 위해 만들어진 캐럴의 특징이기도 하다. 이제는 ‘예수 탄생’이라는 종교적 의미와 별개로 보다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내용을 바탕으로 한 많은 캐럴이 만들어져 세계 각국에서 불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