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광둥성 산터우시 구이위는 세계 최대 전자쓰레기 마을이다. 전 세계의 폐전자기기가 이곳으로 모여들고 주민들은 아무 보호장비 없이 하루 종일 폐전자제품을 분리한다. 인도 북부 라다크에는 쓰레기 재활용 시설이 아예 없었다. 라오스에서 쓰레기를 태우는 날은 도시 전체가 연기로 뒤덮였다. 남한 크기의 라다크는 히말라야산맥으로 둘러싸여 험준하다. 관광객이 몰려들면서 설산 밑은 거대한 쓰레기 카펫이 깔렸다. 플라스틱 재활용으로 먹고산다는 베트남 하노이의 인근 마을은 산처럼 쌓인 플라스틱이 인근 하천까지 이어졌다.
제로웨이스트(쓰레기 없는) 여행가 신혜정 씨가 여행 중 목격한 장면들이다. 그는 2018년 5월부터 2019년 마지막 날까지 1년 7개월 동안 중국에서 튀르키예 수도 이스탄불까지 1만 2500㎞를 자전거로 여행했다. ‘페달 닿는 대로’가 모토였지만 처음부터 전 세계 쓰레기 처리장에 가볼 계획이었다.
“내가 버린 쓰레기가 어디에서 어떤 방식으로 처리되고 있는지를 보고 싶었습니다. 육로로 여행하다보니 각 나라의 국경이 서로 이어져 있다는 걸 체험했어요. 세계에서 흘러온 쓰레기가 한데 모인 걸 보니 ‘우리 모두 연결돼 있다’는 게 실감이 났고요.”
분리수거가 전부가 아니다
신 씨는 기후위기 대응 비정부기구(NGO) 환경단체 ‘푸른아시아’ 활동가였다. 활동 7년 차에 번아웃(탈진 증후군)이 왔지만 여전히 그에게 환경은 삶의 중요한 키워드였다. 환경을 지키면서 살아갈 방법을 고민하다 자전거 한 대와 함께 세계여행길에 올랐다. 탄소배출을 최소한으로 하는 여행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는 배로 중국에 도착한 뒤 자전거와 버스, 기차로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항공 부문의 탄소배출량은 지구 전체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2.5%를 차지해요. 자전거 여행이 좋은 점은 내 힘으로 적당한 느림을 느낄 수 있다는 겁니다. 일할 때의 저는 일에만 몰두해서 다른 걸 보지 못했거든요. 힘든 오르막이 보이면 걱정부터 했고요. 막상 지나면 별일 아닌데 말이죠. 아무리 걱정을 해도 결국 할 수 있는 건 페달을 밟는 것뿐이더라고요.”
여행 중 목격한 쓰레기 현실은 충격적이었다. 태국의 한 공동체 마을에 방문했을 때다. 그는 그곳에서 마을 주민들과 함께 직접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면서 며칠을 지냈다. 여행자가 아닌 마을의 일부가 돼보니 ‘재활용’이라는 것이 막연히 생각하던 것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다. 우리가 분리 배출을 잘한다고 해서 다시 사용되는 것이 아니었다. 80% 이상이 그대로 버려져 땅에 묻히거나 소각되거나 바다로 흘러 들어갔다. ‘분리 배출’로 덜었던 죄책감이 책임감으로 돌아왔다.
“조금 특이한 마을이었어요. 불교정신에 따라 ‘우리가 손해 보는 만큼 우리는 득을 본다’고 생각하는 공동체였고요. 3개 지역의 쓰레기 재활용장에서 일했는데 첫 번째 마을에서 비닐봉지 분류법을 배웠어요. 야외 쓰레기장에서 쓰레기를 수거한 뒤 일일이 만져보면서 비닐을 5가지로 구분하고 있었어요. 노력에 비해 남는 게 없어서 다른 나라에서는 쳐다보지도 않는 일을 정성껏 하고 있더라고요. 그렇게라도 재활용할 수 있는 비닐을 찾아내는 거죠.”
쓰레기장에서 일을 한 뒤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 데 더욱 진심이 됐다. 뙤약볕 아래에서 페달을 밟다 보면 페트병에 든 시원한 음료수가 간절한 순간도 있었지만 대신 나무 그늘 아래에서 바람을 맞으며 쉬었다. 텀블러에 담긴 물을 천천히 마시다 보면 물이 온몸 구석구석에 흘러가는 것이 느껴졌다. 매일 그다음 날 마실 물과 간식을 준비했다. 숙소 근처 빵집, 과일가게나 노점에서 도시락을 싸는 것도 여행의 재미가 됐다.
“여행을 가면 오히려 환경을 위한 실천이 쉬워요.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일회용품을 안 쓰겠다고 다짐해도 실패했었거든요. 텀블러가 없는데 커피가 간절한 순간이 오면 테이크아웃 잔에 먹고 죄책감에 빠지기도 했고요. 여행지에서는 늘 텀블러와 개인용기를 가지고 다니니까 어디서든 꺼내 쓸 수 있었어요.”
‘부야오(不要·필요 없어요)’는 그가 중국 여행 중에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다. 매장 점원이 비닐장갑이나 비닐봉투를 주려고 할 때마다 그는 “부야오”를 외쳤다. 그의 일부였던 텀블러는 여행을 마칠 때쯤 겉면의 절반 정도가 벗겨졌다. 인류 문명이 교류하던 ‘실크로드’에는 지금도 숱한 쓰레기가 버려지고 있었다. 내가 버린 쓰레기는 어딘가에 쌓여 미세플라스틱이 되고 미세먼지가 돼 다시 나에게 돌아온다. 일회용컵을 하나 안 쓰면 그만큼의 보람이 돌아온다.
여행이 끝나고도 그의 ‘제로웨이스트’ 일상은 이어졌다. 환경을 지키는 일은 이제 그의 삶 자체가 됐다. 가까운 거리는 주로 자전거를 이용한다. 특히 환경에 대한 공부는 ‘평생교육’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환경교육 석사를 마치고 교육학 박사 과정을 시작했다.
“누구나 ‘제로(Zero)’ 웨이스트를 실천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덜 버리는 ‘레스(less)’ 웨이스트만 돼도 충분해요. 덜 쓰고 덜 버리면서 내가 갈 수 있는 만큼 페달을 밟는 마음이 중요한 것 같아요. 여행을 하듯 즐겁고 가벼운 마음으로요.”
‘지구는 뜨거워지고 있고 바다와 대기는 쓰레기와 미세먼지로 오염되고 있는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지구는 이렇게 넓고 큰데 먼지보다 작은 존재인 내가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기는 한 걸까?’ 이 질문은 신 씨의 여행 내내 되살아났다. 그는 여행 끝에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얻었다.
“우리가 발전이라고 생각하는 게 실은 더 많이 생산해서 더 많이 사고 더 많이 버리는 일인지 몰라요. 세계의 쓰레기장은 이제 포화상태입니다. 사실 이렇게까지 쓰레기가 나올 필요가 없거든요. 작은 것도 살뜰하게 존중하고 아끼는 건 궁상이 아니라 우아한 습관입니다.”
유슬기 기자
박스기사
신혜정 씨가 제안하는 탄소 줄이고 지구 아끼는 여행법
1. 항공기 대신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한다
최근 스웨덴에서는 ‘플뤼그스캄(Flygskam)’ 바람이 분다. ‘비행기로 여행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긴다’는 뜻으로 막대한 탄소를 배출하는 비행기 대신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하자는 운동이다. 실제로 프랑스와 독일, 오스트리아 등 유럽 국가들은 기차로 2시간 30분 안에 이동할 수 있는 구간의 국내선은 항공편을 줄이거나 없애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2022년 10월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에 가입해 있는 193개국은 2050년까지 항공업계의 탄소배출량을 실질적 제로로 하는 ‘탄소중립(Net-ZERO·넷제로)’에 합의했다.
전 세계 온실가스의 5~8%는 관광산업에서 발생한다. 2019년 영국이 내놓은 온실가스 자료를 보면 승객 1명이 1㎞를 이동할 때 발생하는 탄소는 국내선 항공기 133g, 장거리 항공기 102g, 기차 41g, 일반버스 104g, 시외버스 27g, 고속열차(유로스타) 6g이었다.
2. 개인용기와 텀블러를 미리 준비한다
여행지의 낭만 중 하나는 카페나 맛집을 찾아가는 일이다. 이때 개인용기와 텀블러를 사용하면 찾아간 맛집의 수만큼 일회용품을 줄일 수 있다. 이 습관은 국내에서도 유용하다. 2023년 3월 환경단체 그린피스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한국에서는 총 1193만 2000톤에 달하는 플라스틱 폐기물이 발생했다. 2017년과 비교하면 49.5%나 증가한 양이다. 1인당 연간 일회용 플라스틱 소비량을 보자. 일회용 플라스틱 컵은 65개에서 102개로 56.9%, 생수 페트병은 96개에서 109개로 13.5%, 일회용 비닐봉투는 460개에서 533개로 15.9% 늘어나 모든 항목에서 2017년보다 크게 증가했다.
3. 비닐봉투 대신 에코백이나 장바구니를 이용한다
쓰레기 재활용장에서 일해본 신 씨는 이제 비싼 비닐과 값싼 비닐을 구분할 수 있게 됐다. 두껍고 잘 늘어나는 재질은 재활용이 가능했지만 가볍고 찢어지는 재질은 재활용이 어려웠다. 하지만 분류 자체에 비용이 들기 때문에 대부분 매립지로 보내져 광분해되는데 약 300년이 걸린다. 또 토양과 수로를 오염시키는 미세플라스틱으로 분해돼 바다생태계를 교란한다. 유럽플라스틱제조자협회(EUROMAP)에 따르면 한국의 1인당 연간 포장 플라스틱 원료 사용량은 연 420개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았다. 신 씨는 “평소에 천주머니를 준비하면 말린 과일이나 견과류, 쿠키 등을 담아 다니기에 좋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