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가 되면 팝 음악계에서는 그래미 시상식(Grammy Awards)에 관심이 쏠린다.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9월까지 발매된 앨범을 대상으로, 이듬해의 그래미 수상 후보자 명단이 공개되면 세계 각지의 음악 팬들은 누가 또는 어떤 앨범이 주요 상을 수상하게 될지 궁금해한다. 음악성과 대중적 인기를 겸비한 이에게 수여되는 영광의 그래미 트로피를 누가 거머쥐게 될지 나름대로 예상해보며 자신이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수상하기를 기원하기도 한다. 거대 규모를 자랑하는 미국의 음악 산업계에는 수많은 음악 관련 상이 있다. 그중 최고의 권위와 공신력을 가진 것은 단연 그래미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그래미상이 문화 및 산업 전반에 끼치는 영향력은 극히 미약하지만, 미국에서는 영화의 아카데미상(Academy Awards), TV의 에미상(Emmy Awards), 연극의 토니상(Tony Awards)에 해당하는 권위와 규모, 파급 효과를 지니고 있다.
▶ 영국의 싱어송라이터 아델이 2017년 2월 12일(현지 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 스테이플스센터에서 열린 제59회 그래미 시상식에서 ‘헬로(Hello)’로 올해의 노래상·베스트 팝 솔로 퍼포먼스상을, ‘헬로’가 수록된 앨범 ‘25’로 베스트팝보컬앨범상을 차지해 3관왕에 올랐다. ⓒ뉴시스
1959년 5월 4일 제1회 시상식 개최
그래미상은 ‘전미레코딩예술과학아카데미(National Academy of Recording Arts and Science; 약칭하여 ‘NARAS’로 일컬어짐)’라는 단체에서 주최한다. 수상은 NARAS 회원들의 투표로 결정되는데, 회원은 음악인과 음악 산업 종사자, 음반 프로듀서, 스튜디오 엔지니어 등으로 이뤄졌으며, 그 수는 현재 약 1만 3000명에 이른다. 이들은 수상 기준을 단순히 앨범 판매량이나 차트 성적에만 두지 않는다. 아티스트의 음악적인 역량을 가장 고려할 뿐만 아니라 예술성이나 가창력과 연주, 녹음 기술 측면에서 이룬 혁신적인 성과, 역사적 중요성 등을 반영하기 때문에, 그래미상은 숱한 논란과 비판이 끊이지 않음에도 지금과 같은 권위를 지닐 수 있게 됐다. 미국 중심의 편향된 가치관, 큰 상업적 성과가 있을수록 수상에 유리하다는 점, 그리고 소비자나 평론가에게 보편적으로 인정되는 장르에 대한 무시 또는 ‘산업적 관점’에 의한 뜬금없는 분류 등이 비판의 중심에 자리해왔다.
NARAS는 1957년 설립됐다. 당시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의 상공회의소는 할리우드 대로(Hollywood Boulevard)의 거리 보도에 스타의 이름을 새긴 별 모양의 금속 장식판을 깔아넣는 것을 생각해냈고, ‘데카(Decca)’, ‘소니(Sony)’, ‘캐피틀(Capitol)’, ‘알시에이(RCA)’, ‘엠지엠(MGM)’ 등 주요 레코드 회사의 대표들에게 이름을 새길 스타의 선별을 의뢰했다. 이들은 음악계의 인물을 고를 때 음반 판매량에만 의존한다면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고 봤다. 결국 이들은 음악적으로 뛰어난 앨범과 아티스트, 연주자, 프로듀서 등을 발굴해 세상에 알리고 음반 산업을 진흥하자는 의도로 NARAS를 창설하게 됐다.
이듬해인 1958년에 발매되거나 활동을 펼친 아티스트를 대상으로 시작된 그래미상은 1959년 5월 4일 제1회 시상식을 개최했다. 헨리 맨시니(Henry Mancini)의 ‘The Music from Peter Gunn’이 첫 번째 ‘올해의 앨범(Album of the Year)’ 수상작이 됐다. 팝과 클래식을 아우르는 그래미상은 처음 22개 부문으로 시작한 이래 2017년 싱글과 앨범, 남녀 가수와 그룹, 프로듀서, 연주곡, 영화음악 등 음악 장르별, 기술 분야별로 세세하게 나뉜 84개 부문에 대해 시상했다. 각 부문의 수상자에게는 에디슨의 축음기 모양을 본뜬 작은 트로피가 수여된다(축음기, 즉 ‘그라머폰(gramophone)’의 애칭인 ‘그래미’는 이 트로피의 이름이기도 하다). 그래미 본상 외에 주목할 만한 상은 발매된 지 25년 이상 된 앨범 중 예술적 완성도와 역사적인 의미를 지닌 작품에 수여되는 ‘그래미 명예의 전당(Grammy Hall of Fame Award)’, 탁월한 예술적 성과를 올린 아티스트에 주어지는 ‘평생 공로상(Lifetime Achievement Award)’, 그리고 2000년 새로이 신설된 ‘라틴 그래미상(Latin Grammy Award)’ 등이다.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스테이플스센터(Staples Center) 등지에서 개최되는 그래미 시상식은 매년 봄 전 세계 20억 이상의 시청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180여 개국에 중계된다.
역사상 가장 많은 그래미를 수상한 인물은 누구일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남녀 주연상을 주요 5개 부문이라 한다면 그래미에는 4개의 주요 부문이 있다. 앨범에 대해 아티스트와 프로듀서에게 주어지는 ‘올해의 앨범’, 싱글 곡에 대해 아티스트와 프로듀서에게 수상하는 ‘올해의 레코드(Record of the Year)’, 싱글 곡의 작사/작곡가에게 수상하는 ‘올해의 노래(Song of the Year)’, 주목할 만한 성과를 거둔 신인 아티스트에게 주어지는 ‘최우수 신인(Best New Artist)’이 그래미의 꽃이라 할 수 있다.
그럼 역사상 가장 많은 그래미를 수상한 인물은 누구일까? 그 주인공은 31개를 받은 헝가리 출신의 명지휘자 게오르그 솔티(Georg Solti)다. 천재 프로듀서 퀸시 존스(Quincy Jones)와 블루그래스의 탁월한 싱어송라이터 앨리슨 크라우스(Alison Krauss)가 27개로 그 뒤를 잇는다. 그 외에 프랑스 작곡가이자 지휘자인 피에르 불레즈(Pierre Boulez)와 러시아 출신 피아니스트 블라디미르 호로비츠(Vladimir Horowitz), 아일랜드의 세계적인 그룹 유투(U2), 천재 싱어송라이터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 위대한 영화음악가 존 윌리엄스(John Williams), 뛰어난 재즈 피아니스트 칙 코리아(Chick Corea), 미국 팝 음악계 최고의 스타 부부 비욘세(Beyoncé)와 제이지(Jay-Z), 뛰어난 래퍼 카녜이 웨스트(Kanye West), 거장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와 브루스 스프링스틴(Bruce Springsteen) 등이 20개 이상의 그래미를 거머쥐었다. 엘비스 프레슬리(3개)나 비틀스(7개), 마이클 잭슨(13개), 레드 제플린(0개), 핑크 플로이드(2개) 등 대중음악계의 공룡들은 순위 밖이다. 일반적인 기대와 사뭇 다른 결과를 보는 재미 또한 그래미의 매력이기도 하지만 이런 성향은 늘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다음 달 발표될 제60회 그래미 시상식 후보를 점쳐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일 듯하다.
이런 그래미에 대한 대안적 방향을 내세운 시상식이 바로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American Music Award, AMAs)다. 1973년 라디오와 TV 프로듀서이자 쇼호스트, 사업가인 딕 클라크(Dick Clark)가 창설한 AMAs는 보다 대중적 정서가 반영된 시상식으로 인정받고 있다. 즉 그래미가 상업성보다 음악성에 중심을 둔다면 AMAs는 대중음악계와 음반 산업계에서 거둔 성과(인기도와 음반 판매량 등) 자체를 평가 기준으로 삼는다. 이 상의 범위는 그래미와 마찬가지로 컨트리 앤드 웨스턴에서 소울, 하드 록과 랩, 전통 재즈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며, 2016년 제44회 행사에서는 29개 부문에 대해 시상했다. 1973년의 첫 시상식에서 로버타 플랙(Roberta Flack)이 피라미드 모양의 크리스털 트로피를 수상한 이래 이 시상식은 무척 중요한 연예 관련 행사의 하나로 자리하며 매년 개최됐다[시상식은 주로 로스앤젤레스의 슈라인 오디토리엄(Shrine Auditorium)에서 1월에 개최됐지만 2003년부터는 날짜가 11월로 바뀌었고 2007년 제35회 행사부터 로스앤젤레스의 마이크로소프트극장(Microsoft Theater)으로 장소가 변경됐다].
이 상의 심사 위원은 음악 산업에 종사하는 관계자들로 이뤄진 그래미와 달리 음반을 직접 구매하는 2만 명의 일반인이다. 이렇듯 심사 위원단의 구성원만으로도 AMAs의 성격이 명확히 드러나는데, 음악성과는 무관하게 대중적인 인기를 직접적으로 반영한다는 점이 그래미와 가장 큰 차이다. 덕분에 AMAs는 가장 미국적인, 미국인을 위한 음악상으로 자리매김했다. AMAs 사상 가장 많은 상을 탄 이는 24개를 수상한 마이클 잭슨이고 컨트리 그룹 앨라배마(Alabama) 23개, 휘트니 휴스턴(Whitney Houston) 21개, 각각 19개를 수상한 케니 로저스(Kenny Rogers)와 테일러 스위프트(Taylor Swift)가 그 뒤를 잇는다.
시상식은 매년 생중계 또는 녹화 방송으로 미국 전역에 방송된다. 물론 미국 내 권위는 그래미에 못지않기 때문에 음악 산업계의 쟁쟁한 인물들이 이 행사에 참가하며[엘튼 존(Elton John), 휘트니 휴스턴, 어리사 프랭클린(Aretha Franklin), 브리트니 스피어스(Britney Spears), 제니퍼 로페즈(Jennifer Lopez) 등 일급 스타들이 사회를 맡았다], 시상 자체보다는 음악 공연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특이함을 보인다. 수상자의 소감이 45초로 제한돼 있을 정도다. 행사 당일의 티켓 가격은 30 ~ 175달러에 이르며 입장 수익은 자선기금으로 쓰인다.
김경진 | 음악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