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가족과 떠나는 즐거운 주말 여행길. 아침 일찍 출발했음에도 이미 고속도로는 가을 나들이를 떠나는 자동차들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이런 교통 정체도 멋진 날씨와 아이의 재잘거림, 가슴을 감싸안는 좋은 음악이 함께하는 드라이브 길의 설레는 마음을 방해할 수 없다. 운전하며 즐겨 듣는 곡들을 모은 휴대폰의 플레이리스트에서 임의재생으로 흐르던 음악이 바뀌어 딥 퍼플의 ‘Highway Star’가 등장했다. 수없이 들었지만 여전히 가슴을 뛰게 하는 그 유명한 기타 리프에 이어 이언 길런의 폭발적인 보컬, ‘노바디 고너 테이크 마이 카, 아임 고너 레이스 잇 투 더 그라운드(Nobody gonna take my car, I’m gonna race it to the ground)’가 터져 나오고 첫 소절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아내가 시큰둥한 어투로 말한다. “그런 시끄러운 거 말고 좋은 노래 좀 틀어봐.” 짧게 한숨을 내쉰 나는 스킵 버튼을 눌렀다. 아름다운 선율을 지닌 서정적인 피아노와 웅장한 오케스트레이션, 역시 너무도 좋아했던 건스 앤 로지스의 ‘November Rain’이다. 액슬 로즈의 거칠지만 너무도 매력적인 목소리가 등장하자 또 짧은 한마디, “딴 거.”
비슷한 일은 20대 친구들과 함께하는 자리에서도 일어난다. 최근 몇 년 새 음악 비즈니스 강의나 음악 강좌 등을 하며 놀란 건, 적어도 음악적 감성의 측면에서 30대 중후반 이상 세대는 학생이나 젊은 직장인과 다른 세계에 있다는 깨달음이다. 이제 젊은 세대는 유행 지난 ‘구닥다리 음악’에 더 이상 관심을 갖지 않는다. 좀 과장해서 표현하자면 그들에게 비틀스나 레드 제플린은 이름과 제목, 내용은 알지만 읽어본 적은 없는 괴테나 셰익스피어 같은, 인류의 유산이라는 건 인정하지만 나와는 그다지 상관없는 고전일 뿐이다. 더구나 ‘록 음악’이라니, 어느덧 ‘아재’나 ‘꼰대’, ‘힙하지 않음’, 더 나아가 ‘구림’의 상징처럼 돼버린 이 안쓰러운 음악 장르의 존재감은 거의 바닥에 이른 듯하다.
▶ 핑크 플로이드 멤버인 영국 뮤지션 로저 워터스가 2013년 9월 베를린 콘서트에서 연주하고 있다. ⓒ연합
내가 처음 음악의 너른 바다에 빠져들기 시작했던 1980년대, 그게 비틀스가 됐든 제플린이나 딥 퍼플, 핑크 플로이드든 또는 당시 한창 인기를 누리던 듀란듀란이나 아하, 마이클 잭슨, 데프 레퍼드와 아이언 메이든이든 나와 친구들을 매혹시킨 건 자신이 좋아하는 뮤지션에서 시작되는 깊은 역사와 거기서 파생되는 광활한 세계였다. 예컨대 딥 퍼플이나 예스, 에릭 클랩튼과 관련된 뮤지션과 밴드, 앨범을 다 훑으려면 별도의 ‘공부’가 필요할 정도였다. 대중음악은 기본적으로 로큰롤, 즉 록 음악에 바탕을 두고 있었고 음악이 전하는 즐거움을 제대로 만끽하기 위해 시야가 한 세대 전으로 향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우리는 앞다투어 엘비스 프레슬리와 척 베리로부터 시작된 로큰롤 연대기를 읊어댔고 1960년대 히피 세대와 ‘록의 르네상스’로 일컬어진 1970년대를 그리워했다. 기존의 록과 헤비메탈이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맞이하게 된 1990년대에도 새로운 록의 물결은 시대를 화려하게 감쌌다. 너바나와 사운드가든, 오아시스, 블러, 라디오헤드와 뮤즈, 그리고 콜드플레이 등등. 동시에 전성기를 맞이한 힙합과 알앤비, 일렉트로닉 음악이 다가오는 새 천년을 이끌어갈 음악 트렌드로 자리하게 될 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과연 록은 죽은 걸까?
사람들은 아무 감동을 느끼지 않는 걸까?
같은 시기 우리나라의 음악계는 서태지로부터 시작된 댄스와 랩, 그리고 발라드가 주류를 이루었고, 21세기에 들어와서는 ‘한류와 케이팝’이라는 키워드를 바탕으로 기획사 주도의 아이돌 음악과 ‘언더’에 머무르다 화려한 조명을 받게 된 힙합이 대중적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다. 드라마와 연계된 감성적인 팝이나 일부 인디 음악과 함께 말이다. 이러한 상황은 비단 우리나라에만 해당되는 일이 아니다. 내친김에 빌보드 차트를 살펴보자. 11월 둘째 주 빌보드 싱글 차트는 1위에 오른 포스트 말론(힙합)의 ‘Rockstar’를 비롯해 카디 비(힙합), 로직(힙합), 포르투갈 더 맨(록), 이매진 드래곤스(신스팝), 데미 로바토(팝), 카밀라 카벨로(팝), 제이 발빈과 윌리 윌리엄스(레게톤), 샘 스미스(팝), 에드 시런(팝) 등이 10위 안에 포진돼 있다. 100위권 곡들을 통틀어 록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는 싱글은 포르투갈 더 맨의 ‘Feel It Still’ 단 한 곡인데 이마저도 업템포의 일렉트로팝에 가까운 트렌디한 작품이다. 앨범 차트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트리비움의 ‘The Sin And The Sentence’(23위), 벡의 ‘Colors’(36위), 포르투갈 더 맨의 ‘Woodstock’(46위), 브랜드 뉴의 ‘Science Fiction’(50위), 위 케임 애즈 로먼스의 ‘Cold Like War’(61위), 베일 오브 마야의 ‘False Idol’(67위), 퀸의 ‘Greatest Hits I II & III: The Platinum Collection’(92위) 등 7장이 록 음악의 전부다.
대중음악의 ‘대세’가 일렉트로닉, 알앤비에 기반을 둔 댄스 팝과 다양한 모습으로 진화한 컨템퍼러리 알앤비, 그리고 놀라울 정도로 다채로운 음악 양식을 흡수해 폭넓은 내용과 형식을 표출하고 있는 힙합으로 넘어간 지는 이미 오래됐다. 이제 대중음악에서 단번에 마음을 사로잡는 인상적인 기타 리프나 간주 부분의 날카로운 기타 솔로, 강렬한 샤우팅 같은 건 등장하지 않는다. 이제 그 역할은 흔해진 피처링 뮤지션의 랩과 강한 후크 멜로디를 지닌 화려한 키보드·신시사이저나 샘플링 된 곡의 전주나 후렴구가 대신한다. 한때 시대의 이상과 가치관을 대변하며 젊음 자체를 상징했던 록의 함축적인 메시지와 철학 역시 집단적 가치보다 개인적 취향과 꿈을 우선시하는 변화된 시대에 걸맞게 직설적인 랩과 팝의 노랫말로 대체됐다. 무엇보다 과거와 같은 록 음악은 이 빠르고 편리한 인터넷과 모바일 시대의 정서에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당장 음악 차트와 많은 이가 즐겨 듣는 곡들에 이런 변화가 반영돼 있다. 그래서 요즘 어떤 이들은 아쉬워하며 말한다. 이제 록 음악은 그 생명을 다했다고.
일견 동의하지 않을 수 없는 말이다. 그렇지만 과연 록은 죽은 걸까? 사람들은 록 음악을 듣지 않을 뿐 아니라 그 특유의 끓어오르는 에너지에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않는 걸까? 빌보드 음악 차트 말고 다른 기록을 보자. 올 상반기까지, 2017년에 가장 티켓 수익을 많이 올린 공연은 놀랍게도 1억 5000만 달러(1673억 5500만 원) 이상을 벌어들인 건스 앤 로지스의 투어였다. 유투와 저스틴 비버, 메탈리카, 디페시 모드, 레드 핫 칠리 페퍼스가 그 뒤를 잇고 있다. 5000만 달러 이상의 수익으로 탑 텐에 포함된 뮤지션들 중 소위 ‘요즘 핫한’ 이름은 저스틴 비버(3위)와 아델(7위), 에드 시런(8위)뿐이다. 지난해 1위에 오른 이는 2억 6800만 달러(2990억 760만 원)를 기록한 브루스 스프링스틴이었다. 뒤이어 비욘세와 콜드플레이, 건스 앤 로지스, 아델 등이 자리했다. 역사상 가장 높은 수익을 올린 투어 리스트는 더 흥미롭다. 1위는 2009년부터 2011년까지 가진 투어로 7억 3600만 달러(8211억 5520만 원)를 기록한 유투이며 2위는 롤링 스톤스(2005~2007년, 5억 5800만 달러), 3위는 로저 워터스(2010~2013년, 4억 5900만 달러), 그리고 에이시/디시(2008~2010년, 4억 4100만 달러), 건스 앤 로지스(2016~2017년, 4억 3000만 달러), 콜드플레이(2016-2017년, 4억 1400만 달러), 마돈나(2008~2009년, 4억 800만 달러), 유투(2005~2006년, 3억 8900만 달러), 폴리스(2007~2008년, 3억 6200만 달러), 브루스 스프링스틴(2012~2013년, 3억 5600만 달러)의 순이다. 두 번의 투어가 모두 포함된 유투는 말할 것도 없고 마돈나를 제외한 10위권 모두가 록 밴드 또는 뮤지션이다.
음악 차트와 음악 사이트의 마이 페이지 또는 내 휴대폰과 PC의 플레이리스트에 록 음악이 사라졌다고 해서 록이 죽은 게 아니었다. ‘레전드’의 가치와 그들의 음악이 주는 감흥은 여전히 유효하며 지금 이 순간에도 훌륭한 록 밴드가 끊임없이 등장하며 적지 않은 이들의 감성을 사로잡는다. 거기엔 기존의 형식에서 벗어나 더 세련된 스타일과 광범위한 요소를 차용한 탁월한 표현 방식이 담긴다. 이들은 때로 비틀스와 핑크 플로이드 시절의 향취를 표출하기도 한다. 인디 신을 넘어 평단의 극찬을 받아온 최근 밴드와 뮤지션들의 이름을 나열해보면 록 음악의 긍정적 진화는 물론 어둡지 않은 미래의 모습까지 보이는 것만 같다. 더 엑스엑스, 워 온 드럭스, 엘시디 사운드시스템, 더 1975, 비치 하우스, 디어헌터, 디스트로이어, 뱀파이어 위크엔드, 더 내셔널 등등. 그저 조금만 눈을 크게 뜨고 마음을 열면 된다. ‘주류’에서 살짝 벗어난 드넓은 영역에 록 음악은 어느 때보다 더한 열기와 함께 듣는 이를 매혹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김경진 | 음악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