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삶에 더하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빼기도 있다. 더 가지려 하기보다는 하나라도 덜어놓아야 오히려 내 것이 되는. 자연과 만날 때가 그렇다.
그 자연으로 가는 캠핑은 반문명적이다. 인간이 자연의 일부였고, 자연과 가장 가까웠으며, 자연에 의지했던 원시생활에 대한 일종의 회귀다. 그래서 캠핑은 하나를 더 가지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라도 더 버리려는 행위다. 문화를 버림으로써 또 다른 문화, 잃어버린 문화를 만나는 시간이다. 문명만이 우리에게 문화가 아니다. 자연이야말로 인간의 삶과 함께하는 영원한 문화다. 그 문화가 없어지는 날, 인간도 존재할 수 없다.
자연과의 만남에서 자연과 함께하고 자연에게서 무엇을 얻으려면 가능한 한 빈손이어야 한다. 자연은 비운 사람에게만 채워준다. 이를 모르는 인간은 속세의 문명들을 잔뜩 가지고 간다. 그런 사람은 자연에 절대 가까이 다가가지 못한다. 자연 역시 그들에게 다가가지 않는다. 미국의 작가이자 사회운동가인 더글러스 러미스가 말하는 인간 본래의 쾌락과 풍요를 위한 ‘뺄셈의 진보’도 비슷하다.
▶ 캠핑은 문명의 것을 비우고 자연을 만나는 데 그 의의가 있다. 사진은 사람들이 도심을 벗어나 자연 속에서 캠핑을 즐기는 모습.
우리나라 캠핑 인구 500만 명
이것저것 가지고 가라고 유혹
유독 여름철에 캠핑을 많이 가는 이유 역시 이미 문명에 익숙한 우리가 그나마 그것을 가장 적게 가지고도 자연과 만나고, 자연과의 시간을 함께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이 아니라 오로지 피서와 쾌락을 위해, 그것을 더 크게 누리기 위해 문명 속의 이기(利器)와 거기에 특별한 ‘물건’까지 더 가져간다면 자연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
우리나라도 캠핑 인구가 500만 명이나 된다. 문명이 발달할수록 우리 역시 자연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고, 그래서 더욱 마치 어머니의 품처럼 자연이 그리운 사람들이 많다는 얘기다. 그러나 너무나 문명에 익숙해져버려 선뜻 자연 속으로 뛰어들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문명의 세상은 온갖 도구로 “걱정 말고 가라”고 유혹한다. 이것저것 가지고 가면 아무리 자연 속이라도 아무런 불편 없이 문명인의 시간을 계속할 수 있다고 자랑한다.
집도 있고, 부엌도 있고, 음식도 있고, 전기도 있고, 불도 있다. 무겁지도 크지도 않다. 아무리 첩첩산중이라도 내 집처럼 갖출 수 있고, 잠시도 세상과 단절되지 않고 지낼 수 있으며, 시간의 리듬을 바꿀 필요도 없다. 아까워할 필요도 없다. 얼마든지 다시 구할 수 있으니 쓰고 나서 버리면 그만이다.
그래서는 자연과 친할 수 없다. 자연과 어울릴 수도 없다. 자연이 주는 선물을 받을 수도 없다. 인간의 이기가 닿는 순간 자연은 고개를 돌리고, 저만치 물러나고, 상처를 받고 신음한다. 왜? 인간의 기술문명은 인간만의 편리함을 위한 공간의 확장이고, 그 공간의 확장은 자연의 터전을 빼앗고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자연과 어울리려면 그 공간을 가능한 한 줄여야 한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자연을 사랑하고, 자연 속에서 살았으며, 자연과 하나가 되려 했던 <월든>의 저자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단순, 소박, 간소”라고 했다. 문명의 이기를 끊어버리고 월든 연못 옆에 있는 숲에 오두막을 짓고 2년 동안 살았던 그는 자연이 주는 생명력과 명상, 시간을 확인했다. 무엇을 얻으려 애쓰지 말고 성철 스님의 말처럼 추우면 좀 추운 대로, 더우면 좀 더운 대로 자연이 주는 것을 수용하는 법을 터득해 마음의 자유를 얻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일본의 환경보호운동가인 데이비드 스즈키와 인류학자인 오이와 게이보의 책 제목처럼 비록 하룻밤, 며칠이지만 자연과 함께 있는 동안만이라도 ‘강이, 나무가, 꽃이 되어보라’. 강은 느리지만 제 갈 길을 간다. 나무는 어둠 속에서도 바람의 소리를 듣는다. 꽃은 누가 맡든 말든 자신의 향기를 퍼뜨린다. 그 속에 평화가 있고, 휴식이 있고, 생명이 흐른다.
강이, 나무가 된다는 것은 곧 스스로 자연이 되어 자연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얘기다. 밤에 전기를, 촛불을 켤 이유가 없다. 어둠도 자연이다. 24시간 전기가 어둠을 밝히는 삶에서 우리는 일상에서 그 자연을 잃어버린 지 오래다. 그것을 되찾으면 자연은 우리에게 별을 선물하고, 반딧불을 선물한다. 우리가 잊고 있던 가족 간의 대화를, 어린 시절 할머니의 옛날이야기를, 고향 마을의 풍경을 되살려준다.
오스트리아 철학자 이반 일리히가 1970년대에 제창해 ‘친환경 생활’의 상징처럼 되어버린 ‘언플러그드’가 어둠을 되찾고 밤하늘의 별빛과 벌레 소리를 되찾게 해주는 ‘전기 쓰지 않기’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강박이 되어버린 우리의 삶에 꽂혀 있는 온갖 접속들, 이를테면 온수 보일러, 가스레인지는 물론 잠시만 손에서 놓아도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는 휴대전화의 플러그까지 잠시 동안이나마 모두 뽑아버릴 때, 자연은 우리에게 편리함이, 빠름이 곧 즐거움이 아님을 알게 해준다. 그 시간이 단순한 문명 단절의 이색 체험이 아니라 즐거운 ‘문화’임을 확인시켜준다.
언플러그드, 친환경 생활 의미 넘어
비움의 즐거운 문화
그 즐거움을 위해 별난 준비나 각오까지 필요하지 않다. 소로처럼 오랫동안 머물거나, 아니면 아예 속세를 떠나 자연 속에서 최소의 활동으로 최대의 시간을 누리는 미니멀리스트가 되라는 것도 아니다. 잠시 자연에 몸을 맡기고, 자연에서 특별한 뭔가를 더 얻겠다는 욕심도 버리고, 주는 대로 받으면 된다. 그것만으로도 내 생명은 더욱 싱싱해지고, 내 몸은 더 편안해진다.
캠핑은 무엇을 가지고 떠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씩 빼고 버리고 가는 것이다. 본격적인 캠핑 시즌을 앞두고 열린 ‘친환경•안전 캠핑 축제’도 다양한 체험을 통해 인간과 자연이 상생하는 ‘문화’를 만들어보자는 것이었다.
해마다 여름이 되면 산과 강, 계곡과 숲을 찾아 더위를 식히고 휴식을 하는 캠퍼들로 넘쳐난다. 우리나라에도 그들을 위한 등록 캠핑장만 1200곳이 넘는다. 그곳에서만은 문명의 이기와 오만한 인간들이 내뿜는 소리와 열과 빛이 멈추고 자연의 느림과 고요, 어둠과 시원함이 끊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안다. 그래야 자연이 우리 곁을 떠나지 않음을.
글 · 이대현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겸임교수) 2016.0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