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6년, 독일의 대문호 괴테는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난다. 그 여행은 그의 삶과 문학에 큰 영향을 끼쳤다. 당시로서는 모험인 해외 장기 여행을 감행한 동기는 어린 시절부터 품어왔던 남국에 대한 동경, 답답한 현실로부터의 도피, 그리고 예술정신의 회복이었다.
그는 〈이탈리아 기행〉에서 이 여행의 중요한 의도는 "육체적·도덕적 폐해를 치유하는 것", "참된 예술에 대한 뜨거운 갈증을 진정시키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하나는 상당히, 하나는 완전히 성공을 거두었다"고 말했다. 괴테에게 이탈리아 여행은 ‘익은 사과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것과 같은’ 당연한 것이었으며, 인생의 활력을 위한 체험이었다.
괴테는 이탈리아의 자연과 사회, 예술을 세심하게 살펴보았다. 그리고 "그 행복했던 날을 기념하기 위하여 몇 줄의 글을 남겨 생생하게 보존하고, 아울러 즐거웠던 일을 사실대로 알려주어야겠다"고 결심했다. 들에 핀 꽃 한 송이, 길가에 있는 바위 하나를 보고도 자신의 지식과 사유를 바탕으로 긴 글을 썼다.
괴테의 삶과 문학에 큰 영향 끼친 ‘이탈리아 여행’
해외여행 관광, 음식, 쇼핑 세 가지는 필수
그렇다고 그의 행로가 별나거나 마냥 심각하고 진지하기만 했느냐 하면 결코 아니었다. 마음 편하고 여유롭게 이곳저곳 돌아다니고, 유명한 곳 구경하고, 맛있는 것 먹고, 쉬고, 또 다른 곳으로 가고. 아무리 대문호 괴테라도 그것이 즐겁지 않았다면 여행이 아니다. 로마에서의 어느 하루에는 그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하늘은 쾌청하고 태양은 따사로웠다. 나는 티슈바인과 함께 성 베드로 광장으로 가서 우선 이리저리거닐었다. 무더워지면 우리 둘에게 넉넉한 그늘을 선사하는 커다란 오벨리스크의 그림자 밑에서 서성이면서 근처에서 포도를 사서 먹었다. 그런 다음 시스티나성당으로 들어갔다. 미켈란젤로가 그린 ‘최후의 심판’과 갖가지 천장화들이 경탄을 자아냈다. 바라보면서 놀랄 뿐이었다.
그림들을 보고 또 본 후에 성베드로성당으로 갔다. 성당은 맑은 하늘의 아름답기 그지없는 빛을 받으며 밝고 환한 모습으로 빛나고 있었다. 우리는 향유자로서 그위대함, 그 화려함을 즐겼다. 아는 척하는 취향으로 인해 자신을 오도하는 일 없이 날카로운비판을 모두 억제했다. 그저 즐거움을 즐겼을 뿐이다.
성당 지붕 위로 올라갔다. 잘 설계된 도시가 축소판으로 조감되었다. 집과 창고, 분수, 교회들과커다란 사원 하나, 이 모든 것이 공중에 떠 있는 듯했고 그 사이로 아름다운 산책길이 이어져 있었다. 눈앞에는 로마 시가지가 언덕의 궁전들과 원형 지붕들과 함께 넓게 펼쳐져 있었다. 이런 것들을 모두 마음에 아로새긴 후, 내려와 이웃 식당에서즐겁고도 조촐한 식사를 마친 후, 체칠리아성당을 향해 떠났다."
우리가 지금 이탈리아를 여행해도 찾아가는 곳, 하는 행동과 별로 다르지 않다. 어느 시대, 어느 누구, 어느 곳의 여행도 이럴 것이다. 만약 여행에 이것 말고 다른 동기나 목적이 있다면 그것은 일이다. 나는 여기에 하나를 더 넣어 ‘여행의 3대 즐거움’이라고 부른다. 특히 해외여행에서. 바로 쇼핑이다.
‘관광, 음식, 쇼핑’ 이 세 가지는 해외여행에서 꼭 해야 한다. 우리와는 다른 역사와 문화와 환경을 가진 나라의 유적지나 명소, 아름다운 자연을 봐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여행의 첫 번째 목적이기도 하다. 신기하거나 이색적이어서가 아니라 이국의 유물과 유적, 풍광은 마음과 생각과 눈을 넓혀주기때문이다. 한곳에 머무르면서 쉬는 휴양이 진정한 여행이 아닌 이유다.
▶ 9월 17일 서울 경복궁에서 한복을 입고 나들이에 나선 학생과 외국 관광객들이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동아DB
무작정, 아무 준비 없이, 아니면 유명함만 믿고 가보는 것이 아니라, 가능하면 사전에 많은 정보를 가지고 찾아가야 한다. 아는 만큼 보이니까 말이다. 굳이 남들이 가는 곳에 가서 기념사진이나 찍는 것보다 나만이 가보고 싶은 곳이면 더 좋다. 여기에 하나 더. 그 나라의 문화예술작품 한 편쯤 감상하면금상첨화. 전통이든 대중이든, 그림도 좋고 연극이나 춤, 음악도 좋다. 그 나라 언어를 잘 몰라도 괜찮다. 느낌만으로 충분하니까.
해외여행 가면서 우리 음식을 잔뜩 가지고 가거나, 어느 곳에서든 하루 한 끼는 우리 음식을 먹어야 속이 편하다면서 물어물어 한국 식당을 찾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음식을 거부하거나 포기하는 것은 여행의 3분의 1을 스스로 잘라버리는 행위다. 그 나라의 일상을 경험할 기회를 포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음식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오랜 역사와 자연, 문화와 정신, 풍습의 산물이다. 최소한의 위생만 보장된다면 그곳 사람들이가장 즐겨 먹는 음식을 가장 서민적인 곳, 전통시장이나 동네 자그마한 식당에서 먹어보는 것도 여행을 더욱 의미 있게 만들 것이다.
55개 예술문화축제와 함께하는 코리아 세일 페스타
외국인 관광 프로그램 연계 세일 진행
쇼핑도 빼놓을 수 없다. 해외여행에서의 쇼핑 하면 아직도 우리에게는 ‘명품’이란 선입견이 남아 있다. 지금 중국인 여행객들이 그렇듯이 그것은 품격 있는 여행문화로 가는 일종의 ‘통과의례’다. 자기 나라에 그만큼 유명하고 좋은 제품이 없거나 살 수없던 때의 모습이니까. 그러나 여행에서의 쇼핑은 면세점에서 명품을 사는 것만이 아니다. 역사와 문화와 삶이 배어 있는 일상용품, 작고 소박하고 비싸지 않은 기념품을 사는 것이야말로 여행의 추억과 의미를 오래 간직하게 해줄 것이다.
여행에서 이 세 가지 중에 어디에 비중을 더 두어야 하느냐고 물으면 "똑같다"고 말해준다. 개인의 기호와 취향에 따라 차이는 조금 있을 수 있지만, 어느 하나라도 빼면 절름발이 여행이다. 관광만 있고 음식이 없으면, ‘금강산도 식후경’이란 말이 있듯이 흥미가 떨어지고 지친다. 관광만 있고 쇼핑이 없으면 자기만족과 추억이 없다. 쇼핑과 음식만 있고 관광이 없으면 여행이 아니다. 여행하기 좋은, 가보고 싶은 나라도 결국 이 세 가지 즐거움이 있는 곳이다.
▶ 지난 9월 30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열린 ‘궐담 넘어 찾아온 전통과 사대부가 의 음식축제’에서 외국인 관광객이 전통음식 상차림 부스를 체험하고 있다. ⓒ뉴스1
9월 29일 시작된 ‘코리아 세일 페스타’가 한창이다. 미국의 ‘블랙프라이데이’처럼 단순히 물건만 싸게 파는 것도, 홍콩의 ‘쇼핑 페스티벌’처럼 물건과 음식만 있는 ‘시장’도 아니다. 지난해 미국을 벤치마킹한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와 달리 외국인 대상 관광 프로그램에 음식과 제조업체와 전통시장까지 대거 참여한 할인 쇼핑, 여기에 지역별 55개의 다양한 문화예술축제까지 어우러지고 있다. 한국을 찾은 외국인 여행객들로서는 네 가지 즐거움을 한꺼번에 누릴 수 있는 기회이고, 우리로서는 내수 진작과 한류 확산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일이다. 그러니 어찌 그 뜨거운 열기가 반갑지 않을 수 있겠는가.
글· 이대현(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겸임교수) 2016.1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