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1877~1962)는 집을 옮길 때마다 정원을 만들었다.
허름한 작업복 차림에 밀짚모자를 쓴 헤세는 정원에서 토마토 가지도 묶어주고 해바라기에 물도 주었다. 싱그러운 함박웃음으로 포도를 수확하기도 했다. 적어도 헤세에게 있어서, 정원은 문명으로부터 벗어나 몸을 맡길 수 있는 자연의 리듬이었다. 혼란스럽고 고통에 찬 시대에 영혼의 평화를 누릴 수 있는 안식처였다. 정원일을 하면서 자연과 인생의 비의를 성찰했던 헤세는 이렇게 적었다.
“얼마 안 가서 우중충한 쓰레기와 죽음을 뚫고 새싹들이 솟아오를 것이다. 썩어 분해되었던 것들은 그렇게, 새롭고 아름다우며 다채로운 모습으로 힘차게 다시 되살아난다. 이러한 자연의 순환은 단순하고 명징한 것이다. 그것은 인간을 깊은 생각에 빠뜨리며, 모든 종교는 예감에 가득 차 경배하듯 거창하게 그 의미를 해석해낸다.”(헤르만 헤세 <정원일의 즐거움> 중에서)
신학교 중퇴, 자살 미수 등으로 젊은 날을 방황과 고통 속에서 보냈던 헤세를 살리고, 그의 문학 상상력에 생명을 지핀 것이 정원일이었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 자연으로 돌아가 상상적 희열에 들뜰 수 있었던 것은 헤세의 행운이자, 그의 독자인 우리의 행운이었던 셈이다. 확실히 헤세에게 정원은 특별한 ‘장소애(場所愛, topophilia)’의 대상이었다.
그토록 정원을 사랑했던 것은, 그가 정원에서 현실의 질서와는 다른 공간 감각을 느꼈기 때문이다. 어쩌면 속세와는 대별되는 성소(聖所)처럼 받아들였을지도 모른다. 하긴 어찌 그런 느낌이 헤르만 헤세에게만 국한될 것인가. 많은 사람들이 잘 꾸며진 정원에 들어서면서 전혀 다른 공간으로 스며들고 있음을 시나브로 느끼는 것은, 차라리 자연스러운 일 아니겠는가.
그도 그럴 것이 동서를 막론하고 정원은 현실적이고 공식적인 공간과는 변별되는 탈현실적이고 초세속적인 문화적 인공자연으로 발명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동아시아에서 오래된 정원은 흔히 무릉도원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거니와, 서양에서도 에덴동산과 같은 천국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특히 서양에서 정원은 이슬람의 발명품이라고 얘기되는데, 코란에서 에덴과 같은 정원은 명상이나 성찰하기 좋은 가장 아름답고 평화롭고 이상적인 공간으로 자주 묘사된다. 그래서 “초기 무슬림들은 앞으로 가게 될 천국의 정원을 잠시 엿보게 해주는 지상의 정원을 어느 곳에나 만들었다”(내셔널지오그래픽 편저 <이슬람문명이 남긴 불후의 유산 1001가지 발명>)고 한다. 8세기 이후 스페인에서 인도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이슬람 지역으로 정원 양식이 퍼져나간 것은, 천국의 낙원을 지상에 재현하려는 의지의 소산이었다는 것이다.
얼마 전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에 다녀왔다. ‘천국의 낙원’을 미리 체험해보려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결과적으로 나는 그곳에서 소망스러운 낙원을 미리 맛보지는 못했다. 그 원인은 복합적이었지만 무엇보다 내 마음이 바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풍경에 새겨진 문장 하나를 구한 것은 감사한 일이었다.
한국의 소박한 전통 정원을 새롭게 재현해놓은 정원이 있었는데, 창호지 위에 쓰인 글귀가 인상적이었다. “뜬구름 같은 인생에서 우연히 반나절 한가함을 얻는다(浮生偶得半日閒).” 한가한 틈[閒]을 내어 정원일을 하거나 정원을 거니는 사람들을 위한 변론이라 하겠거니와, 바쁘다고 자신도 주위도 돌아보지 못하고 살아가기 일쑤인 우리네 장삼이사들에게 새삼 경종에 가까운 메시지가 아닐까 싶었다.
정원은 일종의 틈이 아닐까. 공간적으로 천국과 지상의 틈이고, 시간적으로 노동과 여가의 틈이다. 무엇보다도 다른 어떤 것을 꿈꾸게 하는 틈이다.
글·우찬제(문학평론가, 서강대 문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