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간 광화문도 참 많이 변했다. 가로수를 중심으로 차가 오가던 이곳에 세종대왕 동상이 자리하고 시민이 노니는 광장이 됐다. 처음 광화문에서 음식점을 시작한 게 김영삼 정부 초기였다. 광화문에서 삶을 꾸려가는 동안 문재인 대통령까지 모두 여섯 명의 대통령을 맞았다. 대통령을 떠나보내고 새롭게 맞으며 급속한 사회 변화 못지않게 국민 의식도 많이 바뀐 듯하다.
광화문은 특별한 곳이다. 국가에 큰 사건이 있을 때, 또는 각종 행사와 집회를 위해 사람들은 광화문을 찾는다. 특히 기쁨·슬픔·분노 등 감정을 표출할 때 광화문을 찾는다. 지난겨울에도 그랬다. 수십만, 수백만 명의 사람이 발 디딜 틈도 없이 광화문 일대를 메우고 한 목소리로 외쳤다. 축제하듯 수많은 촛불이 밤거리를 밝히고 자동차 경적보다 더 큰 함성 소리가 광화문을 흔들어댔다.
최근 모두 일상으로 돌아가 조용해진 광화문에 눈에 띄는 손님들이 생겼다. 바로 국민인수위원회 사람들이다. ‘광화문 1번가’ 운영지원팀으로 일하는 사람들은 식권을 들고 매일 밥을 먹으러 온다. 대부분이 20대 청년들이다. 푸짐하게 김치찌개를 내놓으면 허겁지겁 먹느라, 조잘조잘 이야기하느라 정신이 없다. 청년들은 50일간 이곳에서 일한다고 했다. 하루 종일 밖에 서 있는 일이라는 말에 안쓰럽기도 하고 자식 같은 마음이 들어 밥 한 공기씩을 더 얹어준다.
매일같이 오는 이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 궁금했다. 그렇게 광화문 1번가를 찾았다. 하루에도 수백 명이 오간다는 이 공간에서 사람들은 어떤 의견을 남길지 궁금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다양한 세대가 한 공간에 모였다. 서류 뭉치를 잔뜩 든 어르신, 휠체어 타고 기념촬영 하는 장애인, 친구끼리 깔깔대며 의견을 남기는 대학생들. 낯익은 운영지원팀 청년이 의견을 적겠냐고 물었고 난 구경만 하겠다고 답했다.
소풍을 나온 유치원생도 보였다. 아직 국가가 무엇인지, 정치가 무엇인지는 물론 광화문이 어떤 공간인지도 모를 나이다. 어린 시절부터 이런 공간을 체득하며 자란 이들의 세상은 지금과는 다른, 조금은 더 좋은 세상이지 않을까 싶다. 아이들은 고사리 같은 손으로 저마다 의견을 남겼다. “대통령 할아버지, 어린이 놀이터 많이 만들어주세요.” 슬쩍 훔쳐본 글귀에 피식 웃음이 났다. 이런 작은 행위를 통해 우리의 삶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을 배우기는 어렵다고 해도, 적어도 정부를 향해 국민이 바라는 걸 적어낼 수 있다는 사실은 알게 될 것 같다.
세상도 광화문도 참 많이 변했다. 과거에는 저마다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다. 하지만 요즘은 다양한 방법으로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개진할 수 있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말하는 분위기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국민의 말을, 국민의 생각을 듣고 반영하겠다는 열린 자세를 취하고 있다.
광화문 1번가가 마련된 지 어느덧 한 달이 됐다. 아직도 할 말이 남아 있을까 싶을 정도로 국민들은 여전히 이곳을 찾는다. 때론 길을 오가다 호기심에 들어왔을지도 모르겠다. 나처럼 내 가게를 찾는 손님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궁금해 찾을 수도 있다. 우리가 어떤 이유에서 이곳을 찾았든지 간에 좀 더 나은 세상이 되길 바라는 마음은 매한가지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더 많은 사람이 이곳을 찾길 바란다. 그럴수록 다양한 목소리가 전해지고 그 힘으로 사회도 변화의 바퀴를 계속 굴릴 테니까.
조천석 | 외식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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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