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우체국 소속 집배원인 조해종(51) 씨는 올해로 15년째 서울 중구 일대에서 등기 우편물과 택배 등을 배달하고 있다. 평일 중 물량이 가장 적다는 월요일에 짬을 내어 인터뷰에 응한 조 씨는 이제 막 배송을 끝낸 참이라고 했다.
"태평로2가를 비롯해 순화동, 정동 등의 큰 건물들 위주로 우편물과 택배물을 배달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까지는 각 언론사의 신춘문예 기간이라 우편 물량이 평소의 서너 배였어요. 연말연시까지 다가오니 그야말로 가장 바쁜 기간이라할 수 있죠."
하루에 약 300건의 우편물을 배달하는 조 씨의 발이 돼주는 건 오토바이다. 중앙우체국은 약 70%의 집배원이 일반 우편물과 등기 우편물, 소량의 택배물을 배달하며, 부피가 큰 택배물만 전담으로 배달하는 택배팀은 따로 두고 있다.
"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때는 일반 우편물량이 지금의 3배 이상이었어요. 택배 물량으로 따지면 지금이 훨씬 많지만, 편지 같은 우편물은 그때가 훨씬 많았거든요. 배달할 곳이 많다 보니 저녁 11시가 다 돼야 끝나는 일이 부지기수였죠. 연말연시에는 연하장이나 크리스마스카드 같은 우편 물량이 엄청나게 쏟아져 회사에서 잠을 자는 일도 많았어요."
연말연시, 명절 땐 평소 물량의 서너 배
주택가에서는 ‘식사하고 가라’ 훈훈한 정 느껴져
지금은 일반 우편물이 줄어든 대신 수령자의 사인을 받아야 하는 등기 우편물과 택배물이 늘었다. 배달지는 줄었어도 또 다른 수고로움이 늘어난 셈이다. 오토바이 뒷좌석의 우편물 박스 안에 다 담지 못한 우편물은 ‘중간 수도’라 불리는 거점에서 픽업해 배달을 이어간다. 그의 하루 일상은 어떻게 이뤄질까.
"매일 아침 7시 30분쯤 회사에 출근해 업무 준비를 시작합니다. 지역별로(또는 건물별로) 갖고 나가야 할등기 우편물의 바코드를 개인정보단말기(PDA)에 입력한 뒤오전 9시 30분 전후에 사무실을 나오지요. 그때부터 우편물을 배달하고 끝나는 시간이 오후 3시께입니다. 그럼 사무실로 돌아와 오늘 배달한 물량과 반송 물량 등을 정리해 보고한 뒤, 퇴근 전까지 다음 날 갖고 나갈 우편물을 정리합니다. 예전에는 이 작업만도 대여섯 시간이 걸렸지만 이제는 노하우가 생겨 3시간 정도면 마무리돼요. 그럼 오후 6시 30분 전후에는 퇴근할 수 있죠."
▶추울 때나 더울 때나 어김없이 우편물을 배달하는 조해종 씨는 수령인이 기뻐하는 모습을 볼 때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나인 투 식스’까지는 아니어도 예상보다 규칙적인 삶이다. 조 씨는 "시대가 변한 만큼 집배원들이 되도록 업무시간 안에 일을 끝마칠 수 있도록 환경이 많이 바뀌었다"고 말한다. 기계작업이 늘어난 것도 큰 도움이 됐다. 하지만 마지막 단계에서는 사람, 즉 집배원의 손길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따스한 정을 느낄 때도 많다.
"주로 서울 시내의 큰 건물들을 맡고 있다 보니 만나는 사람의 대부분은 회사원입니다. 아무래도 분위기가 사무적이죠. 반면 주택가에서는 훈훈한 정을 느낄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점심시간에 우편물을 돌리고 있으면 밥 먹고 가라고 붙잡는 어르신들도 많고, 힘들게 일한다고 커피 한잔 대접하는 분들도 계세요. 인간적인 따스함이 느껴지죠."
조 씨 역시 일상에서 남을 돕고 베푸는 일들이 습관이 됐다.
"길을 가다 어르신들이 뭘 포장하거나 무거운 짐을 들며 쩔쩔매시면 주저 없이 도와드려요. (포장이나 무거운 짐 배달이) 저희가 많이 하는 일인 만큼 습관적으로 달려가게 되죠. 또 제가 우편물이나 택배를 받아볼 때는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저희 집에 식구가 많아 택배가 자주 오는데, 그 무거운 걸 들고 올라오면 땀나지, 힘들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거든요. 그래서 아이들에게도 택배기사님이 오면 음료수라도 하나 내드리고 꼭감사하다고 전하라고 가르쳐요."
15년 가까이 짐을 짊어지고 같은 곳을 오르내리는 일들이 힘들고 지겨울 법도 한데, 조 씨는 여전히 이 일이 즐겁다고 말한다. 바깥으로 나가기조차 꺼려지는 요즘 같은 계절에도 조씨의 배달은 계속된다. 한파 때문에 힘들지 않으냐고 묻자 의외의 답변이 돌아온다.
"요즘 우리 장비가 아주 잘 나옵니다. 토시도 나오고 워머도 나오고 방한복도 아주 따뜻해요. 겨울에 추우면 옷 한 벌 더 껴입으면 됩니다. 오히려 여름이 더워도 벗을 수 없어 문제죠(웃음)."
안에 껴입은 방한복을 보여주며 조 씨가 미소 짓는다. 그러고 보니 넥타이까지 갖춰 맨 정장 차림. 불편한 복장을 고수하는 데는 그만의 이유가 있다.
"중앙우체국에서 저를 포함한 2명의 집배원이 늘 이렇게 정장 차림을 합니다. 정장을 하는 이유는 저부터 복장을 잘 갖춰 입어야 고객들이 함부로 보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제가 넥타이 풀어 헤치고 막 다닌다면 보는 입장에서도 분명 좋지 않을 테니까요. 6월부터 9월 초까지는너무 더워서 정장을 못 입지만 나머지 기간에는 꼭합니다. 그리고 겨울에 정장에 넥타이를 하면 좋은 점이 있어요. 목이 따뜻하거든요(웃음)."
15년째 정장에 넥타이 차림 배달
"즐겁다고 맘먹으면 만나는 사람마다 반갑고 즐거워"
다가오는 연말연시에도 조 씨의 발걸음은 더욱 바빠질 듯하지만, 불경기 때문인지 우편물이 줄어 되레 걱정이다.
"요즘 경기가 안 좋아서 그런지 연말연시에 자주 오고 가는 달력이나 다이어리 물량이 많이 줄었어요. 아무래도 우편물량이나 택배물의 크기에도 경기가 영향을 미치거든요. 예년보다는 덜 바쁘지 싶어요."
더울 때나 추울 때나 오늘도 어김없이 도로 위를 달리며 우편물을 배달하는 집배원 조 씨. 그가 이 일을 이토록 오랫동안 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마음가짐이 남달랐기 때문이다.
"무거운 소포를 들고 낑낑대면서 갔는데 아무리 전화를 해도 안 받거나 ‘그런 사람 없다’고 하면 참 난감해요. 하지만 (주소나 전화번호가 잘못 적혀) 주인을 찾지 못한 우편물이 제주인을 만났을 때, 수령인이 정말 고맙다며 기뻐할 때 보람을 느끼죠. 우리 일은 힘들다, 힘들다 생각하면 정말 힘든 일입니다. 반대로 내 할 일이다, 즐겁게 하자고 맘먹으면 만나는 사람마다 반갑고 얼마든지 즐거울 수 있는 일이죠. 남들보다 늦게 일을 시작해서인지 즐겁게, 웃으면서 일하자고 늘 스스로를 채찍질해왔어요. 그래도 지금까지도 초심을 잃지 않고 즐겁게 일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글·김가영(위클리 공감 기자)/ 사진· 이상윤 기자 2016.1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