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유공자 장례의전 선양단’은 국가유공자의 장례식을 최고 의전으로 예우하는 봉사단체다. 대한민국무공수훈자회 산하기관으로 2013년 10월부터 활동을 시작해 지금까지 2136명(2018년 5월 기준)의 국가유공자 장례를 지원했다. 전국 각지 어느 곳이든 국가유공자 사망 시 당일 현장 방문을 원칙으로 장례의전을 시행한다. 태극기와 유골함 증정을 시작으로 영구용 태극기로 관을 덮는 관포식, 조사 낭독과 추모곡 연주, 국립현충시설의 안장식 등 절도 있고 정중한 장례의전을 선보인다. 열여섯 명의 선양단원들은 노병의 전우로 구성돼 진한 전우애도 함께 느낄 수 있다.
▶ 서울 용산의 전쟁기념관 전사자비 앞에 선 전국 16개 지부 선양부장들. 이들은 대통령 근조기 전수식을 거행하고 철저한 임무수행을 다짐했다. ⓒC영상미디어
6월 1일부터는 보훈처장의 근조기에서 대통령 명의의 근조기로 승격 적용돼 의미가 더욱 깊다. 장례식장에 대통령 명의의 근조기가 설치되는 것은 국가가 유공자의 희생을 잊지 않고 있다는 것을 널리 알리고, 유족들의 자긍심을 높이기 위한 조치 중 하나다. 국가보훈처 역시 ‘따뜻한 보훈’을 중심으로 국가유공자에 대한 예우를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이들의 삶을 끝까지 책임진다는 방향으로 정책 중심을 잡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국가유공자 장례의전 선양단’은 따뜻한 보훈의 최일선에 서 있는 단체이기도 하다.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보훈활동 일선에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복지 사각지대, 전우애로 막습니다
6·25전쟁 참전용사들의 평균연령이 86~88세 정도이고, 월남전 참전용사들도 70대 중반이 됐습니다. 모두 고령이라 그야말로 ‘밤새 안녕’이죠. 특히 자식들과 멀리 떨어져서 혼자 지내는 분들이 대다수인데, 울산지부는 독거회원들의 고독사를 가장 염려하고 있습니다. 장례의전도 좋지만 ‘살아 계실 때 잘하자’는 생각으로 다섯 개 지회에서 매일 아침 안부 전화를 돌립니다. 연락이 되지 않으면 찾아뵙기도 하고요. 그래서 지금까지 단 한 건의 고독사도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안부 전화를 자주 하다 보니 생활상도 훤히 알게 되는데, 얼마 전에는 87세인 어느 참전용사 댁에 핸드레일을 설치해드리기도 했습니다. 2층에서 세 들어 사시는데 계단이 가파르고 난간도 없어서 내려오다 다치기 십상이겠더라고요. 국가의 손이 닿지 않는 곳도 전우애로 끝까지 지켜드리고 싶은 마음입니다.
박효철(65) 울산지부 사무처장
국가유공자는 과거가 아닌 현재의 영광으로 살아갑니다
국가유공자들 상당수는 빠듯한 삶 속에서도 국가에 대한 명예와 의미를 자랑스럽게 여기며 살아온 사람들입니다. 어렵지만 우리보다 더 힘든 이웃을 위해 노력하려고 애쓰죠. 우리 충북지부 선양단원은 평소에도 할 수 있는 봉사활동을 찾아나서기도 합니다. 특히 예산이 소요되지 않는 봉사활동을 적극 찾는 편인데, 그중에서 이·미용 봉사가 대표적입니다. 청주 예일미용고등학교와 업무 협약을 맺고 한 달에 한 번씩 도지부 지역 조손가정과 저소득 어르신들의 머리를 깎아주는 봉사를 수년째 진행하고 있죠. 이 밖에도 농촌 일손 돕기, 교통안전 캠페인 등 지역사회에 보탬이 되는 일을 도맡고 있습니다. 국가유공자는 과거의 영광과 혜택으로 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작은 것이라도 현재의 영광과 의미를 찾아나서는 사람들이죠.
김경시(74) 충북지부 사무처장
사후의 명예도 중요하나 생전의 영광만은 못하죠
요즘은 이웃과 세대 간의 교류가 활발하지 않은 편입니다. 국가유공자 유가족들 역시 고인이 된 아버지나 할아버지의 업적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두지 않고 지내고요. 그러다 돌아가시고 나서 선양단의 장례의전을 목격한 뒤 고인에 대한 존경심을 가지게 됩니다. 이웃들 역시 생전에 어떤 분인지 모르고 지내다가 돌아가신 후에 감사하며 안타까워하기 마련이죠. 사후의 명예도 중요하지만, 생전의 영광만은 못할 것입니다. 국가유공자를 존경하고 우대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다면 생전부터 따뜻한 교류를 할 수 있는 매개가 될 것입니다. 애국심 함양과 국가 안보의 중요성을 깨닫는 방법은 결코 멀리 있지 않습니다.
이재범(63) 전남지부 선양부장
애국심 고취를 위해 유공자께 최고의 예를
명예에 살고 명예에 죽는 것이 국가유공자들입니다. 선양단의 장례의전은 이들에게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최고의 명예를 선사하지요. 일반 장례와 달리 유가족의 슬픔을 자긍심과 애국심으로 승화해주는 특별한 의식이기도 합니다. 거의 매일 시신을 보고 엄숙한 장례행사를 치러야 하기 때문에 사명감 없이는 절대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단원끼리는 공덕을 쌓는 일을 하고 있다고 이야기하죠. 하지만 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 생각하고 보람과 긍지를 느낍니다. 함께 수방사(수도방위사령부)에서 근무한 35년지기 친구의 장례 의전을 담당한 적도 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눈물을 흘리면서 진행했죠. 그 친구가 나중에 꿈에 나오기도 하더군요. 국가유공자들은 마지막을 국가가 예를 다해 배웅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감격할 정도로 애국심이 투철한 분들입니다. 이런 의식을 고취하기 위해서라도 국가유공자에게 최고의 예를 다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김동진(73) 본부 행사지원대장
우리나라 사회지도층도 국방의 의무 솔선수범해야
전쟁 영웅은 소외계층 출신이 많습니다. 월남 전 당시만 해도 돈을 벌기 위해서 전쟁에 참전한 젊은이들이 많았죠. 군에 대한 대우와 인식은 지금까지도 달라지지 않아 ‘군대는 돈 없고 백 없는 사람들이 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아직도 남아 있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국방의 의무는 국민이 지켜야 할 기본 의무이며 가장 중요한 의무입니다. 영국에서는 2차 세계대전 당시 공주였던 엘리자베스 여왕부터 보급부대 소속으로 참전했고, 왕자들을 전쟁에 참전시키는 것이 전통으로 내려오고 있습니다. 이처럼 당연한 일이 특별하게 보이는 것은 우리 현실이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죠. 우리나라도 사회지도층부터 달라져야 합니다. 군 출신의 무공수훈자회 회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가장 힘들다는 부대로 아들들을 보냅니다. 극한의 어려움이 인생을 살아가는 데 버팀목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기 때문이죠.
김국진(64) 서울지부 선양부장
인간으로서 최소한 품격 지키게 국가유공자 처우개선 꼭 해야
전국적으로 10여 건, 서울본부에서는 하루 평균 2건의 장례를 치르고 있습니다. 전쟁에서 공을 세운 참전용사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줄어드는 상황이에요. 제가 참석한 장례의전 중에 ‘월남에서 돌아온 김 상사’의 마지막이 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김 상사는 2017년 12월 신길동 주택에서 발생한 화재로 숨졌는데, 1967년 10월부터 포병부사관으로 2년간 목숨을 건 전투에 참전한 사람이었습니다. 28년간의 군 복무 끝에 육군 일등상사로 전역한 그의 마지막은 영예롭지 않았죠. 청력의 상당 부분을 잃고, 고엽제 피해로 거동마저 불편해 생활고에 시달리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는 매서운 추위를 휴대용 가스버너로 버텨오다 화마(火魔)에 변을 당했습니다. 새까맣게 탄 김 상사의 집 안에서 건강보험료 독촉고지서 뭉치와 라면봉지, 그을린 부탄가스통이 발견됐다고 하는데 국가를 위해 희생했지만 보상받지 못하고 쓸쓸히 지낸 모습이라 여운이 길게 남았습니다. 앞으로 국가유공자에 대한 처우가 달라져서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품격을 갖출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분명한 것은 그분들을 위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장세훈(64) 본부 선양단장
강보라 | 위클리 공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