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소년단의 2017년 미국대중음악상(AMA) 현장 공연으로 인해 우리나라 매체는 또다시 대중문화의 영향력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2012년 싸이의 ‘강남스타일’ 이후 최대의 사건으로 인정하는 듯하다. 매체를 통해서만 현실을 접하다 보면, 이러한 성공들이 하나의 예외로 보이지만, 지속적으로 세계 속 한류 콘텐츠의 전파와 케이팝의 팬덤 형성을 살펴보면, 서구 대중문화 속에서 케이팝의 침투와 팬덤 형성은 놀랍다기보다는 그저 자랑스러운 일, 시간과 장소 그리고 폭발력 정도의 문제였지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한국에서는 너무도 당연하게 여겨지는 사실로, 케이팝을 선두로 한 한류 콘텐츠는 소셜네트워크나 넷플릭스 같은 프로그램 제공 서비스를 통해서 세계적으로 널리 유통되고 있다. 이 말은 한국 대중문화가 세계의 대중문화가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수용자가 한류 콘텐츠를 원하기만 한다면 언제든 접할 수 있는 환경 속에 있고, 이 중 점증하는 일부 수용자가 지속적으로 한류 콘텐츠를 소비하고 있다는 말이다.
한국 드라마는 팬들의 자막 달기를 통해 전 세계에서 약간의 시간차로 모두 소통되고 있으며, 한국의 크고 작은 아이돌 그룹과 가수들은 이미 수년 전부터 대형 콘서트를 열며 세계 투어를 하고 있다. 그들의 세계 속 팬들은 이번 방탄소년단의 AMA 공연 당시 볼 수 있었던 팬챈트(아이돌 그룹의 공연 시 팬들이 사전학습으로 만들어낸 의례적 집단 호응)를 하고, 가수와 배우들의 생일에 선물을 보내며, 그들의 공연을 따라 세계를 전전하기도 한다.
방탄소년단의 성공이 특별한 것은, 대형 기획사와 방송의 별다른 지원 없이 작은 기획사에서 출발하여 단기간에 미국 내 프로모션이나 ‘강남스타일’과 같은 바이럴 영상도 없이 스스로의 힘으로 일궈냈다는 점이다. 방탄소년단은 인터넷 개인방송 채널과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세계의 팬들과 한국어로, 생방송으로, 직접 소통해왔다.
좀 더 거시적으로 방탄의 성공은 두 가지 차원에서 한국 문화산업계에 화두를 던진다. 첫째, 이들은 SM으로 대표되는 한국 대형 기획사 시스템이 추구하는 제작 차원의 국제화를 통하지 않고 세계로 나가는 데 성공했다.
외국 국적의 아이돌 멤버를 채용하고, 외국 작곡가와 안무가의 도움을 빌려 음악을 리믹스해 보편적이고 갈등이 없는 정서를 노래하며, 그룹 내 각 아이돌의 캐릭터와 역할 분담을 철저하게 기획하는 것이 한국 아이돌 기획의 스탠더드였다. 그런데 방탄소년단은 이런 것으로부터 어느 정도 벗어나 있다. 모든 멤버가 음악 생산에 참여하고, 몇 명은 댄서의 재능 없이 오직 연습과 노력으로 지금의 퍼포먼스에 도달했다.
무엇보다 방탄이 써내는 곡들은 동시대 젊은이들의 좌절과 분노, 사회인식을 적극적으로 담아내고 있어서, 외국의 비평가들이 드디어 “의식적인 케이팝 아티스트가 태어났다”고 환호하고 있다. 그토록 동아시아 밖으로 진출하고 싶어 노력했던 시스템의 산물인 원더걸스나 소녀시대가 기대이상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완전히 소셜네트워크에 의존한 싸이와 방탄소년단이 성공한 것은 한류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둘째, 방탄의 성공은 그동안 한류를 한국 정부의 문화산업 지원정책 및 적극적인 해외 홍보 정책의 결과라고 설명해왔던 서구 엘리트 언론들에게 보기 좋게 반대 증거를 들이민 셈이다. 필자가 관찰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자료 속에서 유럽과 미국의 언론 대다수는 한류의 성공은 한국 정부의 의도적이고 전략적인 문화산업 투자와 지원, 해외 진출 노력의 결과라고 부당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평가의 이면에는 그간 한국 정부가 지나치게 성과 중심적이고 경쟁적인 문화산업 지원정책을 펴나간 것도 한몫했다. 문재인정부의 대중문화정책은 경쟁이나 이벤트성 지원보다는 이 분야 종사자들의 노동 조건과 계약 관계의 건강성을 포괄하는 기본적 노동 조건과 관련된 것이기를 바란다. 이미 물길이 트인 한류의 세계 속 흐름은 그냥 두어도 잘 진행될 터이니, 공공투자는 기본 조건들을 완비하는 데 쓰이기를 기대한다.
홍석경 |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