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케인은 미주지역에서 흔히 ‘공포’의 대명사로 통한다. 2005년 미국의 뉴올리언스를 덮친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단적인 사례다. 1800여 명 이상의 인명을 앗아간 카트리나는 올해로 발생한 지 10년이 다 됐지만 여전히 미국인들 사이에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또 미국에서 멋과 맛의 도시로 둘째가라면 서러웠던 뉴올리언스는 아직도 카트리나의 그늘에서 완전히 헤어나지 못한 상태다.
태풍은 최소한 한국 사회에서만큼은 허리케인만 한 공포의 대상은 아니다. 그렇다면 태풍의 위력 혹은 파괴력이 허리케인보다 떨어지는 걸까. 답은 정반대다. 태풍과 허리케인은 똑같은 열대성 저기압으로 기상학적으로는 형제간이나 마찬가지다. 발생 해역만 각각 태평양과 대서양으로 다르다. 그러나 위력으로만 따지면 태풍이 허 리케인보다 한참 위의 형이다.
2년 전인 2013년 11월 태풍 ‘하이옌’이 필리핀을 강타했다. 당시 사망·실종자 수는 7000명이 훨씬 넘었다. 필리핀의 재해 방지대책이 미국보다 허술하다는 점을 감안해도 인명 희생이 너무 컸다. 하이옌이 몰고 온 엄청난 피해는 무엇보다 카트리나를 넘어서는 월등한 파괴력에 기인하는 부분이 크다.
실제로 하이옌의 풍속은 최고 시속 315km로, 280km인 카트리나보다 훨씬 셌다. 강풍의 파괴력은 풍속에 기하급수적으로 비례하는 경향이 있다. 하이옌과 카트리나를 비교하지 않더라도 태풍은 평균적으로 허리케인보다 더 강한 바람과 비를 몰고 다닌다. 비슷한 조건에서는 태풍으로 발생하는 인명 피해와 재산 손실이 더 클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지난해 8월 4일 오전 부산 해운대해수욕장 백사장에 제12호 태풍 ‘나크리’의 영향으로 폐합판이 떠밀려와 바다를 덮고 있다. 부산 해경은 지난해 7월 2일 부산 생도 남쪽 암초에 좌초된 파나마 선적 벌크선 P호(3만1643톤)에서 떨어진 폐합판이 떠밀려온 것으로 추정했다.
지구온난화 가속
피해도 갈수록 커져
한반도는 불행 중 다행으로 필리핀이나 미국 남부처럼 태풍이나 허리케인의 발생 해역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 우리나라가 하이옌과 같은 상상을 초월하는 태풍의 공격을 지금까지 받지 않은 건 순전히 태풍 발생 해역에서 북쪽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위치 덕분이다.
하지만 최근 수십 년 사이 태풍 발생의 추세를 보면 ‘슈퍼 태풍’이 더 자주 올 것이라는 추측을 가능케 한다. 지구온난화로 태풍 발생 수역인 서태평양의 온도가 꾸준히 상승하는 탓이다. 태평양에서 발생하는 태풍이 대서양에서 생기는 허리케인보다 평균적으로 위력이 강한 것은 태평양 수온이 대서양 수온보다 높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는 강한 엘니뇨가 예상되는 마당이어서 슈퍼 태풍에 대한 우려가 더 커지고 있다. 태풍의 연간 발생 수는 25~30개, 허리케인은 10~15개로 태풍이 2배가량 많다. 따라서 슈퍼 태풍 역시 슈퍼 허리케인보다 발생할 가능성이 더 크다.
슈퍼 태풍이 내습한다면 태풍 발생 해역에서 상대적으로 먼 거리에 있는 한반도라 하더라도 그간 경험하지 못한 끔찍한 피해를 볼 수 있다. 최근 십수 년 사이에 발생한 태풍은 50년 전, 혹은 100년전 발생했던 태풍과 이름은 같지만 파괴력 ‘급수’는 한두 단계 위인 경향을 보였다. 슈퍼 엘니뇨 발생 가능성이 거론되는 올해 여름은 슈퍼 태풍의 내습 가능성이 한층 더 커질 것이라고 가정할 수 있다.
▷태풍의 눈 부근의 구름벽이나 나선 모양의 구름띠에서는 강한 소낙성 비가 내리고 그 사이사이에서는 층운형 구름에서 약한 비가 지속적으로 내린다.
상당 부분 대비 가능
‘진인사대천명’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재해가 발생한 지 딱 1년 뒤인 2006년 뉴올리언스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전장에 서본 경험이 없기에 비교에 무리가 있겠지만, 폐허로 변한 뉴올리언스의 시내 모습은 사진으로 본 전쟁터 이상이면 이상이었지 그 이하는 아니었다. 피해가 가장 큰 지역의 경우 대부분의 건물에 사람이 살지 않았고, 침수된 건물의 잔해와 쓰레기가 여기저기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1년 뒤 모습이 그 정도였으니….
지진이나 화산 폭발, 토네이도 등의 자연재해는 예측이 매우 어려운 특징이 있다. 하지만 태풍은 연중 찾아오는 때가 있기에 상당부분 대비가 가능하다. 인간의 힘으로 어찌해볼 도리가 없는 자연재해라면 어느 정도는 운명으로 받아들여야 할지 모른다. 하지만 태풍에 관한 한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 인간으로서 해야 할 일을 다하고 하늘의 뜻을 기다린다)’일 수밖에 없다.
태풍이 불러오는 직접적인 피해는 대부분 강풍과 홍수로 말미암은 것이다. 대책을 어떻게 세워야 하는지 상당 부분 답이 나와 있다. 강풍에 취약한 건물 등 구조물, 나무, 간판, 창문 등은 태풍의 내습기간 이전에 보수하고 정비해야 한다. 홍수 피해는 저지대와 경사지에 집중된다. 상습적인 홍수 피해지라면 수방대책을 재점검해야 한다.
수방대책으로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태풍이 내습할 경우를 대비해 평소 비상 탈출 경로와 피해 대피소 등을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또 최근 산지 개발이 활발해지면서 절개지와 수목이 없는 경사지, 축대 등이 전국 곳곳에 산재해 이들의 붕괴에 대비한 안전대책 또한 최우선적으로 마련돼야 한다.
태풍의 한반도 내습은 7~9월에 집중된다. 연간 대략 3개 정도가 한반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데, 8월이 평균 1.1개꼴로 가장 많다. 그다음으로 7월 0.9개, 9월 0.7개 정도다. 7월 중에서는 초순보다는 중순, 중순보다는 하순에 발생할 확률이 높다. 지금 당장 점검을 서둘러야 하고, 대비책을 마련하는 것도 결코 빠르지 않다는 뜻이다.
올 들어 6월 말 현재 발생한 태풍 숫자는 7개이다. 다행히도 이 가운데 우리나라에 직접적인 피해를 준 태풍은 없다. 이는 31개가 발생한 2013년의 같은 기간 6개보다 더 많은 숫자이다. 실제 올해 최종적으로 몇 개의 태풍이 발생할지는 알 수 없지만, 현재 추세대로라면 평년보다 태풍 발생 수가 늘어날 확률이 높다. 태풍 발생 수가 늘면 한반도에 피해를 끼치는 태풍 또한 많아질 가능성이 크다.
글 · 김창엽 (자유기고가) 2015.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