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에 맞서 정부의 모든 부처는 ‘워룸(War Room·전시작전상황실)’을 가동하고 있다.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을 전시에 준하는 위기로 인식하고 비상대응체제에 들어간 것이다. 전대미문의 감염병으로부터 국민 건강과 생명을 지키기 위한 방역 전선에서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세계에 모범이 될 만한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코로나19의 여파로 형성된 경제 전선에서도 정부가 총력 대응에 나섰다. 지상명령은 일자리 지키기고 다시 활성화하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4월 22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5차 비상경제회의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일자리가 있어야 국민의 삶이 있고 경제가 있다. 일자리를 지키는 것은 국난 극복의 핵심 과제이며 가장 절박한 생존 문제다.”
코로나19 대유행이 전 세계 고용 한파로
코로나19 대유행이 세계경제에 미친 가장 심각한 충격은 실업이다.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세계 각국 정부가 사람 간 대면과 이동을 제한하는 등의 여파로 고용 한파가 전 세계에 덮친 것이다. 가장 크고 강한 경제력을 자랑해온 미국부터 직격탄을 맞고 있다. 미국 노동부가 발표한 실업률은 3월 4.4%에서 4월 14.7%로 치솟았다. 봉쇄 조치가 시작된 3월 중순 이후 두 달여 동안 신규 실업급여 신청자는 3700만여 명에 이른다.
미국이 지난 10년 동안 경제 호황기를 누리며 늘린 일자리 수가 약 2500만 개인데, 코로나19의 타격으로 이보다 1000만 개 이상 많은 일자리가 단 두 달여 만에 증발해버렸다. 유럽 주요 5개 국가의 실업보조금 수령자도 3~4월 누적으로 3600만 명을 넘어섰다. 중국은 40년 만에 처음으로 1분기 마이너스 성장률(-6.8%)을 기록한 가운데 실직하거나 강제 무급휴직에 내몰린 도시 노동자가 1억 3000만여 명으로 추정된다.
세계적 고용 한파는 코로나19보다 확산 속도는 느리지만 더 오래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코로나19의 확산세가 진정 기미를 보이거나 각국의 봉쇄 조치가 완화되더라도 경제 침체와 그에 따른 고용 한파는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국제노동기구(ILO)는 2020년 2분기 생산·소비 활동 위축으로 전 세계 노동시간이 정규직 3억 명 일자리만큼 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은 바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길고 고통스러운 고용 한파의 지속’을 예고하며 회원국들에게 특단의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고용 충격 임시·일용직과 청년층에 집중
우리나라의 고용 사정은 미국이나 유럽 등과 비교하면 그리 나쁜 편이 아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나쁘지 않을 뿐 코로나19발(發) 고용 한파가 비켜가지는 않았다. 코로나19발 실업 대란이 본격화하기 시작한 4월 통계청이 발표한 실업률은 4.2%로 1년 전 같은 달보다 0.2%포인트 떨어졌으나, 취업자 수는 47만 6000명이나 줄었다. 이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2월 이후 최대 감소 폭이다. 특히 소득이 낮거나 노동시간이 짧은 취약계층일수록 일자리 사정의 악화가 뚜렷하다.
같은 달 임시·일용직 취업자는 1년 전에 비해 78만 3000명이나 줄어, 1989년 1월 통계 집계 이후 가장 큰 감소 폭을 기록했다. 59만 3000명이 줄어든 3월에 이어 한 달 만에 또다시 기록을 세웠다. ‘고용원 있는 자영업자’는 17만 9000명 감소한 대신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는 10만 7000명 늘었다. 이는 인건비를 감당하지 못한 자영업자가 직원을 내보내고 1인 자영업자로 이동한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취업자 수 증감 폭을 업종별로 살펴보면, 서비스업에 고용 충격이 집중됐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외국인 관광객 감소 등의 영향으로 숙박·음식점업과 도소매업의 취업자가 각각 21만 2000, 12만 3000명 감소했다. 교육서비스업(-13만 명)에서도 취업자 수가 크게 줄었다. 비교적 안정적인 일자리가 많고 고용 비중도 큰 제조업과 건설업에서도 3월부터 취업자 감소세가 이어져 앞으로 전체 고용 여건에 대한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연령 계층별로는 청년의 고용 축소가 가장 우려스러운 현상이다. 청년층(15~29세) 고용률은 40.9%로 1년 전보다 2.0%포인트 떨어졌다. 모든 연령층 가운데 가장 큰 하락 폭이다. 기업들이 채용을 연기한 데다 자영업 등의 아르바이트 일자리마저 줄어든 탓으로 풀이된다. 청년 실업률은 9.3%로 2019년 같은 기간(11.5%)보다 개선됐지만, 구직 활동을 포기하거나 어쩔 수 없이 단기 일자리에 있는 취업자 등을 포함시킨 개념인 ‘확장실업률’은 26.6%로 집계됐다. 정부가 체감실업률을 파악하기 위해 관련 통계를 작성한 2015년 이래 가장 높은 수치다.
청년층의 고용 사정 악화는 청년만의 문제로 남지 않는다. 청년들이 노동시장 진입 단계에서부터 취업난에 부닥치는 상황이 지속되면 장기 실업자의 양산을 초래한다. 일 경험과 경력 상실에 따른 소득 손실이 다시 취업·직업 능력의 약화를 불러오기 때문이다. 특정 연령층이 장기간 미취업 상태에 빠지면 인적자본 축적의 단절, 성장잠재력 저하 등 국민경제 전반에 타격을 준다. 외환위기 때 ‘IMF 세대’로 불린 청년들을 고용 절벽에 빠지게 한 아픈 경험이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청년 취업난을 방치하면 ‘코로나 세대’가 생길지도 모른다.
▶서울의 한 대학에서 열린 취업박람회에서 취업준비생들이 기업 모집공고를 살펴보고 있다.│한겨레
156만 개 일자리 창출로 고용 충격 완화
이처럼 4월부터 코로나19가 촉발한 고용 위축이 본격화하면서 정부는 대규모 공공부문 일자리 대책을 내놓았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비해 사회안전망을 강화하고, 노동·고용제도의 보완적 재설계 작업도 서두르기로 했다. 비상경제중앙대책본부가 확정한 일자리 대책은 1~3차 추가경정예산(추경) 집행을 통해 2020년 안에 약 156만 개의 일자리를 제공하겠다는 게 핵심 내용이다. 고용시장 취약계층과 청년층의 일자리 어려움을 하루라도 빨리 덜어주려면 신속하고 과감한 재정 투입이 필요하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정부는 우선 2019년 12월 발표한 ‘2020 경제정책방향’에 포함된 직접 일자리사업의 94만 5000개 창출을 신속히 추진하기로 했다. 노인 일자리, 자활근로 사업 등에 이미 77만 8000명을 뽑았지만 코로나19 발생으로 이 중 44만 5000명이 휴직 중이다. 이 일자리를 야외나 온라인 등 감염 우려가 적은 활동으로 최대한 전환해 가동할 계획이다.
정부는 공공부문에서 ‘55만 개+α(알파)’의 추가 일자리 창출에 대해서도 세부 추진 일정을 확정했다. 이를 위해 21대 국회가 개원하자 곧바로 3차 추경을 통해 약 3조 8000억 원의 재원을 마련했다. 추가 공공일자리를 분야별로 보면 디지털경제 관련 데이터 및 콘텐츠 구축에 6만 4000개, 비대면 행정서비스 지원에 3만 6000개 등 비대면·디지털 일자리 10만 개 창출에 약 1조 원이 투입됐다.
또 전국 243개 기초자치단체의 수요를 바탕으로 생활방역, 재해예방, 문화·예술 환경 개선, 공공 휴식공간 개선, 골목상권 지원 등 10대 분야에 걸쳐 취약계층 공공일자리 30만 개를 만들기로 했다. 소요 재원은 약 1조 5000억 원으로 책정됐다.
구직에 어려움을 겪는 청년층에는 콘텐츠 기획과 대량자료(빅데이터) 활용 분야 공공일자리 5만 개와 함께, 관광·정보통신기술(ICT) 융합 인턴십 등의 형태로 일경험 일자리 5만 개를 제공한다.
고용 위기 극복 통해 ‘인간 안보’ 실현
정부는 1~3차 추경으로 조성된 40조 원 규모의 기간산업안정기금 지원도 고용 안정과 연계해 진행하기로 했다. 기금 지원을 받으려면 기존 고용 인원의 최소 90% 이상을 6개월 동안 유지하는 조건을 전제로 해야 한다. 지원 대상은 항공, 해운 등 주요 업종 안에서 총차입금 5000억 원 이상, 고용원 300인 이상 기업 가운데 코로나19 피해를 입은 기업이다. 기간산업 협력업체(하도급 협력기업) 지원을 위해 1조 원 범위로 기금을 활용한 ‘협력업체 지원 특화 프로그램’도 도입한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고용을 유지하는 방어적 정책과 함께 새 일자리를 창출하는 공격적 정책도 중요하다”며 “민간에서 지속적으로 양질의 일자리가 창출되도록 재정·세제·금융 지원은 물론 규제 혁파, 투자환경 개선 등 모든 정책 수단을 동원하겠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업 3주년 특별연설에서 ‘인간 안보’라는 화두를 던졌다. 문 대통령은 “오늘날의 안보는 전통적인 군사 안보에서 재난, 질병, 환경 문제 등 안전을 위협하는 모든 요인에 대처하는 인간 안보로 확장됐다”며 “동북아와 아세안, 전 세계가 연대와 협력으로 인간 안보라는 공동의 목표를 향해 나가도록 주도적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유엔개발계획(UNDP)이 1994년 발표한 <인간개발보고서(HDR)>에서 처음 쓴 용어인 인간 안보란, 안보의 궁극적인 대상을 인간(사람)으로 보는 개념이다. 보고서는 인간 안보의 실현을 ‘사람들이 자유로운 선택을 하는 것에 대한 장애가 없고 향후에도 그 선택의 기회가 상실되지 않는다고 안심할 수 있는 상태’로 정의한다. 코로나19 여파로 발생한 지금의 고용 위기는 전형적인 인간 안보의 위기다. 실업 공포, 생계 위협으로부터 안전한 세상을 만드는 것, 진정한 고용 위기 극복이면서 인간 안보의 실현이다.
박순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