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윤섭 기자
살면서 ‘바로 이거다!’ 외치는 순간이 찾아올 때가 있다. ‘유레카!’ 이럴 때 작가들은 새로운 작품으로의 여정을 시작한다. 화가 이돈아(51) 작가, 사진가 김동우(40) 작가도 마찬가지였다.
순전히 우연이었다. 어느 날, 작업실 근처를 걷다 무궁화가 피어 있는 나무 몇 그루를 발견했다. 순간 ‘그리고 싶다!’라는 생각이 밀려왔다. ‘무궁화는 우리네 노래 속에 오랫동안 등장해온 그야말로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꽃인데, 왜 그리 찾아보기 힘들었을까?’ 이 작가가 그때를 회상했다. “무궁화만의 아름다움, 은근한 기품과 끈질긴 기개 등을 표현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일렁이더군요.”
김 작가도 ‘그 순간’이 다가왔을 때의 기억이 생생하다. 2017년 4월. 사진기를 들고 여행길에 올랐다. 그 여정에서 어떤 주제로 사진을 찍을까 고민하던 중 인도 마날리에서 불꽃처럼 강렬한 뭔가가 스쳤다. 2017년 2월, EBS <세계테마기행> 출연차 갔던 모리셔스에서 PD로부터 카자흐스탄 크질오르다에 홍범도 장군의 묘소가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크게 놀랐던 기억. 인도에 우리나라 독립운동 관련 장소는 없을까 궁금해졌다. 뉴델리의 레드포트는 우리 광복군이 영국군과 함께 훈련한 장소였다. “순간 느낌이 왔죠.”
▶永遠-Time and Space│이돈아 작가
“기하도형은 현재, 무궁화는 미래”
두 작가는 현재 각각 ‘무궁화’ ‘해외 독립운동 흔적’을 주제로 한 작품으로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KT&G가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 캠페인 ‘대한민국, 위대한 상상을 잇다’ 라는 슬로건으로 두 작가의 전시회를 기획했다. KT&G 서울본사 1층 로비에서는 이 작가의 <永遠-Time and Space> 회화전이, 상상마당 춘천에서는 김 작가의 <‘뭉우리돌’을 찾아서> 사진전이 한창이다. 작가만의 색깔, 전시 주제, 장르는 약간 다르지만 궤를 같이하는 대목은 분명히 있다. ‘대한민국’ ‘100년’ ‘역사’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우리’를 담는다는 점이다.
구름이 떠 있는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흐드러지게 핀 우리나라의 꽃 무궁화. 꽃송이 사이사이 기하학적인 도형들이 서 있다. 파란색 하늘과 마젠타색 무궁화가 환한 빛을 뿜어낸다. 2월 26일 이 작가의 ‘영원’(永遠)을 감상한 김 작가는 이런 소감을 밝혔다.
“많이 놀랐어요. 작품 덕에 로비가 화사해진 것 같아요. 예쁘다고 느낀 꽃은 많았지만 무궁화를 특별히 예쁘다고 생각한 적은 별로 없었던 거 같습니다. 지금까지 이런 작품들이 안 나왔던 건 무궁화에 대해 우리 스스로 관심이 부족했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보게 되네요.”
작가로 활동한 지 20여 년. 이 작가는 조선시대 길상화, 민화 등 전통적인 소재를 재해석해 미래상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존재’와 ‘존립’에 대한 깊은 관심이 담긴 그의 작품에는 미니멀한 기하도형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번 작품도 마찬가지다. 이 작가는 “기하도형은 현재의 나, 무궁화는 미래를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이 작품의 경우, 특히 사각형을 창문으로 표현했어요.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가 그냥 이어져가는 게 아니라 창문을 통해 방향성을 찾고, 우리가 상상하는 아름다운 미래로 향한다는 것을 표현했어요. 파랗고 맑은 하늘은 시간과 공간 너머의 영원함을 상징하고요. 무궁화가 하늘을 부유하며 기하도형과 어우러지는 모습은 우리나라의 비상을 나타내죠.”
이 작품은 어떤 제안을 받고 준비한 게 아니었다. 어느 날 갑자기 마음에 ‘쿵’ 하고 들어와 박힌 무궁화. 그 은은한 모습에서 너그러움과 기품이, 성상에서 끈기와 잠재력 그리고 기상이 느껴졌다. ‘닮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우리나라 꽃이라는 점이 자랑스럽게 여겨졌다. 부모님을 비롯해 가까운 친지들이 외국에서 오래 살았는데 모두 애국심이 굉장하세요. 그런 모습을 많이 봐온 제게 우리나라, 독립의 의미는 더 크게 다가왔어요. 어릴 적 집에서 민화 화첩을 많이 들여다보며 자랐거든요. 제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길상화의 도상은 멀리 떨어져 지냈던 부모와 형제를 향한 향수를 표현하는 매개체이기도 해요.”
▶김익주 후손│김동우 작가
▶인도 레드포트│김동우 작가
▶단지동맹비│김동우 작가
‘죽어도 살아도 뭉우리돌’ 다짐한 김구
애초 올해가 100주년임을 염두에 두고 작업한 게 아니라는 건 김 작가도 마찬가지다. “독립운동을 주제로 작업해야겠다고 결심한 게 2017년이었는데, 역사 공부를 하다가 내후년이면 100년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죠.”
그는 2017년 4월부터 2018년 11월까지 인도·중국·멕시코·쿠바·미국·네덜란드·러시아·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 등 9개국에서 독립운동 유적을 방문하고 독립운동가 후손들을 직접 만나 사진으로 기록하는 작업을 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특별전 <대한독립 그날이 오면>, 갤러리 류가헌 <‘뭉우리돌’을 찾아서-세계에 남겨진 독립운동의 흔적> 전시도 진행 중이고 동명의 사진집(아카이브류가헌)도 출간했다.
사진 한 장, 한 장에 숨겨진 사연들이 곧 역사 자체였다. 이 작가는 “사실 김 작가님 작품을 제대로 마주하려면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할 것 같았어요”라며 “진행하며 얼마나 힘드셨는지 상상도 안 되네요”라고 했다.
독립운동 현장 그리고 후손들이 있는 곳 등을 찾아다니는 일은 쉽지 않았다. 전 세계에 어떤 독립운동 유적지가 있는지부터 공부하기 시작했다. 현지에 도착해 그곳 한인들에게 묻고 또 물어보며 겨우 후손을 만날 수 있었다. 막상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자 감정이 요동쳤다. “힘든 상황에서 독립운동을 했던 당시 선열들 생각에 마음이 아리더군요. 한국에 돌아와 글로 정리하다 보니 자꾸 모니터 앞에서 눈물이 나오는 거 있죠. 내가 왜 이런 걸 시작했나 싶다가도 마음 한편에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나 같은 별종 아니면 또 누가 하겠어. 내가 해야지.’ 그런 마음으로 여기까지 온 것 같습니다.”
후손들은 자신을 찾아준 김 작가를 반갑게 맞았고 또 고마워했다. 그들을 통해 잘 알려지지 않은 사적지를 많이 찾아낼 수 있었다. 이 작가는 “김 작가님 작품을 보면 다큐 사진인데 그 안에서 작가님만의 예술성이 도드라지는 대목도 많이 보이던데요”라고 했다.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시간에 맞춰 촬영하거나, 배경과 인물이 반투명하게 겹쳐 보이도록 한 촬영 기법을 언급한 것. “멕시코 애니깽밭에서는 선조들이 일을 시작했다는 새벽 5시에 사진을 찍었어요. 그분들이 보았을 법한 풍경을 지금 사람들에게 생생히 보여주고 싶었죠. 샌프란시스코에 갔을 때는 장인환, 전명운 의거일을 며칠 앞둔 시점이었어요. 정확히 110년 전과 같은 시각인 9시 30분에 사진을 찍었죠. 배경과 인물이 반투명하게 겹쳐지는 건 셔터를 오래 열어두고 반은 인물을, 나머지 반은 인물 뒤 벽을 찍은 겁니다. 셔터를 열어두고 인물에게 얼른 일어나달라고 부탁하면 되는데, 후손분들이 대부분 연세가 많으시잖아요. 죄송하더라고요. 이제 한국인의 모습조차 희미해지는 후손들의 시간을 사진 한 장에 담고 싶었어요. 100년이면 그렇게 긴 시간이 아닌데 그동안 우리 역사의 많은 부분이 희미해지고 있죠.”
▶홍범도 장군 묘소│김동우 작가
▶쿠바 후손회 아델라이다 가족│김동우 작가
그의 전시 제목에 나오는 ‘뭉우리돌’은 둥글둥글하게 생긴 큰 돌을 뜻하는 말.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된 백범 김구 선생이 일제 순사에게 고문을 받으며 ‘땅 주인이 논밭에서 뭉우리돌을 골라내는 것이 당연하다’는 말을 들었을 때 속으로 이렇게 다짐했다. ‘오냐, 나는 죽어도 뭉우리돌 정신을 품고 죽겠고, 살아도 뭉우리돌의 책무를 다하리라.’
김 작가는 이번 작품을 통해 하고픈 말이 있다. “100년 전 독립운동이 전 지구적으로 일어났다는 걸 알리고 싶어요. 영국부터 시작해 지구 한 바퀴를 돌 만큼 큰 규모였거든요. 그 힘들었던 때 나라의 독립 하나만을 보고 치열하게, 모든 걸 바친 분들이 계셨다는 사실, 기억해야죠.”
이 작가는 이번 작업을 통해 사람들이 무궁화라는 꽃을 무척 좋아한다는 걸 새삼 알게 됐다. “크게 그리고 싶어서 크게 그린 건데 사이즈 때문에 고민이 많았거든요. 대체 작품을 어디에 전시·보관할 것인지, 전시 초대는 받을 수 있을지 주변의 걱정이 많았죠. 한데 기우였어요. 갤러리나 미술관 관계자들이 전시를 통해 소개해보자고 제안하기도 했죠. 관객들도 무척 좋아해주더라고요. 홍콩 유명 갤러리에서도 전시했는데 아름답고 힘이 느껴진다는 반응이었어요.”
한 우물 파기보다 이것저것 열정적
회화 작업을 주로 하지만 미디어아트 작업도 하는 이 작가는 “남들은 한 우물만 파야 유명해질 수 있다고 하는데 저는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라고 말했다. “에너지가 넘치는 편이라 제가 해보고 싶은 작업은 가리지 않고 시도하려 하죠.” 이 작가의 말에 김 작가가 무릎을 치며 말했다. “저도 그래요. 늘 평소 ‘플러스 1’을 생각하고 살아요. 주변에서 ‘왜 너는 글만 쓰지 사진까지 손대냐’ ‘사진 하나만 해’라고 하는데 제가 해보고 싶고, 할 수 있다면 다 시도하고 싶죠.”
두 작가는 앞으로도 하고 싶은 작업이 많다. 이 작가는 “개인으로서나 작가로서 치열하게 작품 활동을 하며 살아가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라고 했다. “한국적인 것이 무조건 세계적인 것일 수는 없잖아요. 세계적인 공감을 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전 세계가 인정해주는 퀄리티의 작품을 뉴욕타임스퀘어에 전시하는 게 제 큰 목표입니다.”
김 작가는 “미답 지역인 만주에 가서 역사 흔적을 더 취재하고 싶어요”라고 했다. “그곳에 지금 촬영한 만큼 많은 분량의 역사적 발자취가 있거든요. 일본도 가고 싶고요. 또 우리가 잘 모르는 동남아나 대만 등에도 독립운동 역사가 있는데 그곳도 사진으로 담아보고 싶어요. 비용 문제 등 어려움이 있지만요.”
“우리 둘 다 참 좋은 배우자를 만난 것 같아요. 가족의 지지가 없으면 이런 작업들을 할 수 없잖아요.” 김 작가도 고개를 끄덕인다.
“미국 LA에서 안창호 선생님의 막내아들 랄프 안을 만났을 때 들었던 에피소드가 생각나요. 본인이 태어나자마자 아버지가 중국에 가셔서 얼굴을 못 봤다고 하시더군요. 안창호 선생에게 독립운동은 사명이었다고 하시면서요. 그 사명 때문에 가족들이 받는 고통이 엄청났을 텐데 한 번도 불평불만이 없었다고 해요. 선생님의 사명을 가족들도 자신의 사명으로 받아들인 거죠.”
“저도 농담처럼 가족들한테 그런 얘기 많이 해요. 나를 지지하는 당신들은 매우 엄청난 사회 공헌을 하는 거라고. 인류에게 예술이 없다면 얼마나 삭막했겠냐고요.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김 작가님은 ‘정말 의미 있는 일을 의미 있게’ 하시는 것 같아요. 혹시 순국열사의 자제분 아니세요?”
“저는 그저 평범한 민초입니다. 100년 전, 3·1운동 때 만세를 외쳤던 사람들처럼요.”
김청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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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