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홍인 선수가 인천 서구 가좌동 시립가좌실내테니스장에서 인천팔미 테니스클럽 멤버들과 포즈를 취했다. 김성광 <한겨레> 기자
생활체육
세상과 담 쌓았던 그에게 내민 손
장애인 생활체육 서비스 현장
지난 2001년, 한 20대 청년이 어머니와 함께 전라남도 해남에서 서울로 이사를 왔다. 아는 이 하나 없는 낯선 도시, 마음은 외로웠고 형편도 넉넉하지 못했다. 다음 해 어느 날 감당하기 힘든 불행이 그를 덮쳤다. 눈을 떠보니 병실 천장이 보였다. 몸을 일으키려는데 두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간호사 목소리가 들려왔다. “교통사고가 났어요. 기억나세요?”
그 뒤로 휠체어 신세를 지며 살았다. 마음은 병들어갔다. ‘날 무시하나?’ 누가 무슨 말을 해도 비꼬는 듯 들렸다. 자격지심이 심해지면서 집 안에만 틀어박혀 지내는 날이 이어졌다. 어머니는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네가 잠깐이라도 밖에 나갔으면 소원이 없겠구나.”
18년이 지난 지금, 그는 이제 휠체어테니스 선수라는 이름으로 세상과 마주하고 있다. 인천팔미 테니스클럽(이하 클럽) 민홍인(41) 선수 이야기다. 용인시장배 전국어울림테니스대회 우승, 제38회 전국장애인체육대회 단체전 동메달. 지난해 받은 상이다.
불의의 사고 좌절의 나날 딛고 ‘국가대표’ 꿈꿔
월~금 오후 12시부터 4시 사이. 인천 서구 가좌동 실내 테니스장에 가면 왼손으로 휠체어 바퀴를 굴리고, 오른손으로 테니스 라켓을 휘두르며 훈련하는 민 선수를 만날 수 있다. 그는 이렇게 운동하는 시간이 “하루 중 가장 행복한 때”라고 말한다.
지난 2006년, 그가 세상으로 다시 나올 수 있었던 건 대한장애인체육회 ‘찾아가는 장애인 생활체육 서비스’ 덕분이다. 안병호 인천광역시장애인테니스협회 전무이사를 통해 테니스를 해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장애인에게 알맞은 생활체육 교실과 동호회를 소개해주는 프로그램이 있다는 정보도 얻었다. 그렇게 현재 소속 동호회인 클럽과 연을 맺게 됐다.
생활체육 서비스는 장애인들이 일상생활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체육 활동으로 건강을 관리하고,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게 하자는 뜻에서 지난 2007년부터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다. 전화(1577-7976)하면 가장 가까운 시·도 장애인체육회로 연결돼 전화·방문·온라인 등을 통한 장애인 생활체육 상담을 받을 수 있다. 각자 특성에 맞춘 운동 처방부터 클럽 추천까지 상담 내용은 다양하다.
장애인 생활체육 분야는 아이스하키, 알파인스키, 스노보드, 탁구, 배드민턴, 댄스스포츠, 농구, 럭비, 사격, 양궁, 펜싱 등을 망라한다. 이렇게 생활체육을 접하며 국가대표가 된 이들도 있다. 지난해 평창동계패럴림픽 노르딕스키 금메달리스트 신의현 선수가 대표적이다.
민 선수도 ‘국가대표’라는 꿈을 품고 열심히 훈련 중이다. “건강을 위해 운동을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은 진작부터 했어요. 근데 막상 동호회에 나가려니 두려움이 생기더라고요. 하지만 사람들을 만나보고 걱정이 싹 사라졌죠. 7명 멤버 가운데 제가 막내인데 회원들이 친형, 친누나처럼 잘 챙겨주세요. 클럽에 나와 운동하지 않았다면 영영 집 밖에 못 나왔을 겁니다.”
아들이 세상을 다시 만나면서 어머니도 소원을 이뤘다. “방에만 있던 아들이 밖에도 나가고 사람들도 만나 활동하니 기뻐하시죠. 제가 집에만 있을 땐 어머니도 밖에 자주 못 나가셨어요. 제가 테니스 칠 시간에 어머니는 당신 친구분들 만나 여가를 보내세요.”
▶민홍인 선수가 인천 서구 가좌동 시립가좌실내테니스장에서 훈련하고 있다. 김성광 <한겨레> 기자
전문 지도자와 호흡 맞춰가며 전문 훈련 중
지난해부터는 주 5일 가운데 이틀을 장애인생활체육지도자(이하 지도자) 배기옥(45·인천시장애인체육회 생활체육서비스팀) 코치가 곁에서 훈련을 돕고 있다. 생활체육 서비스 가운데 지도자 배치 프로그램에 신청하면 이렇게 코치 도움을 받아 운동할 수 있다. 지도자 구실을 하는 코치는 장애인이 있는 곳에 직접 찾아가 유형에 맞는 수준별 운동 프로그램 정보를 제공하거나 훈련을 돕는다. 정부는 전국의 지도자 수를 577명에서 올해 800명으로 늘릴 계획이다.
배 코치는 “기본적으로 공을 던져주고 타점을 맞추는 훈련을 돕고 있다”고 설명했다. “휠체어테니스는 휠체어를 움직이며 라켓으로 공을 주고받아야 하는 운동이라 혼자 또는 다른 장애인과 훈련하기 쉽지 않아요. 비장애인이 파트너가 되어 공을 주고받아줘야 움직임에 속도가 붙고 제대로 된 훈련을 할 수 있죠.”
네 살 터울. 누나, 동생으로 부르기 좋은 나이 차다. 실제로 두 사람은 “홍인아” “누나”라고 부를 만큼 가깝게 지낸다. “친누나처럼 지내다 보니 누나 남편을 저도 모르게 ‘매형’이라고 부를 때도 있다니까요.”
배 코치는 담당 선수의 건강·심리 상태부터 경기 일정까지 쭉 꿰고 있다. “홍인이의 경우 한동안 몸이 안 풀려서 걱정이 많았는데 다행히 요즘 많이 좋아졌어요. 척추장애인이라 날씨 영향을 많이 받아요. 겨울엔 저체온증에 걸리지 않도록 신경을 많이 써줘야 합니다.”
서비스 널리 알리고 지도자 처우도 개선되길
지난해 6월까지만 해도 배 코치는 지도자가 아닌 클럽의 멤버였다. 인천에 살면서 장애인들과 함께 운동하고 싶어 남편·자녀와 클럽 멤버가 됐다가 지도자 자격증에 대한 정보를 듣고 공부를 시작했다. 자격증 취득 뒤 7월부터 지도자로 활동 중이다. “클럽 멤버로 인연을 맺은 지 7년이 넘었죠. 대학에서 스포츠를 전공했는데 이 분야에서 일할 수 있게 돼 좋아요. 누구나 중도에 장애인이 될 수 있잖아요. 홍인이를 비롯해 주변 장애인들을 보면 곁에서 누군가 손을 내밀어주고 독려해주는 게 매우 중요하더라고요. 생활체육 서비스도 그런 의미로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지도자는 장애 아동과 일반 아동이 함께 참여하는 체육 통합교육도 진행한다. 배 코치도 오전 시간에는 인천 관내 초등학교를 찾아 가르친다. 배 코치는 “눈여겨보고 있는 아이가 하나 있는데 홍인이처럼 자기 꿈을 찾을 수 있도록 돕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고 했다.
인천광역시장애인체육회 생활체육서비스팀 신효철 팀장은 “‘나도 운동하고 싶다’며 문의하는 분들이 꽤 있는데 그분들 각자에게 맞는 프로그램, 클럽 등을 소개하려고 애쓰고 있다”며 “생활체육으로 활력을 되찾은 장애인이나 두 분처럼 ‘케미’가 잘 맞는 선수와 지도자 등을 볼 때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또한 ”생활체육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지도자들이 1년 단위 비정규직이라는 점이 아쉽다. 이들의 처우도 개선되는 한 해가 되길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김청연 기자
새해 장애인 생활체육 뭐가 바뀌나
2019년에는 장애인 생활체육 서비스가 더욱 확대된다. 국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자는 취지의 ‘내 삶의 플러스 2019년 활력예산’ 기조에 따라 장애인 생활체육 분야 정부 예산안도 669억 원으로 확 늘었다. 지난해(273억 원) 대비 약 145% 늘어난 규모다. 문화체육관광부 정책 담당자는 “2018 평창 동계패럴림픽의 유산을 창출하기 위해 수립한 예산”이라며 “장애인 생활체육 정책을 제대로 집행해 장애인들이 직접 체감하고 삶의 활력을 더하는 생활체육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올해 장애인 생활체육 분야의 바뀌는 제도를 정리했다.
생활밀착형 ‘반다비 체육센터’ 건립
장애인이 일상에서 생활체육을 즐길 수 있게 하는 생활밀착형 장애인 체육시설 반다비 체육센터가 생긴다. 유형은 체육관형, 수영장형, 종목 특화형으로 세분화하고, 장애인이 우선으로 사용하되, 비장애인도 함께 이용하는 통합시설로 운영할 예정이다.
스포츠 강좌 이용권 지급키로
저소득층 유·청소년에게만 지급했던 스포츠 강좌 이용권
(공공·민간 체육시설 6개월 이상 이용 시 월 8만 원)을 장애인에게도 지급한다. 문체부는 올해 장애 학생 등 5100명 대상 시범사업을 진행하고, 이용권의 원활한 정착을 위한 연구 용역도 추진할 계획이다.
생활체육교실, 클럽 지원 폭 늘어
장애인 체육 입문자 대상 ‘수요자 맞춤형 장애인 생활체육교실’ 지원을 지난해 12억원에서 올해 18억원으로 50% 확대한다. ‘장애인 생활체육 동호회’ 지원금도 지난해 5억4000만 원에서 올해 8억1000만 원으로 크게 늘렸다. 문체부가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공공스포츠클럽을 장애인 체육에 도입하기 위해 ‘장애인형 공공스포츠클럽’ 시범사업도 추진한다.
‘찾아가는 생활체육지도자’ 늘리기로
지도자는 지난해 577명에서 올해 800명, 2022년 1200명까지 확대할 예정이다. 지도자의 역량과 전문성을 함양하기 위한 맞춤형 역량강화 교육과정도 확대 진행한다. 올해 교육과정 예산만 5억원으로 이는 지난해 1억2500만 원에서 300% 증가한 규모다.
장애-비장애 학생 함께 운동도
학교 내 통합체육 프로그램도 강화한다. 통합체육 프로그램 예산은 지난해 3억 원에서 올해 4억 원으로 늘렸다. 텔레비전·라디오·온라인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한 장애인 체육 인식 개선 사업과 홍보 사업 등도 지난해 7억 원에서 올해 11억2000만 원으로 확대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