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은 행복했습니다. 설날을 맞아서 오랜만에 엄마에게 다녀왔지요. 원래 명절엔 며느리들이 힘들기 마련입니다. 일도 힘들지만 시어머니가 별 생각 없이 내뱉은 말 때문에 며느리들 입이 은근히 나오곤 하지요. 그런데 올해는 달랐습니다. 며느리들의 자식이 컸기 때문이지요. 중학교에서 대학원까지 과정마다 한 명씩 있는 사촌들이 둘러앉자 오손도손 이야기하며 전을 부치고 만두를 빚었습니다. 솜씨가 제법이더군요. 내년에는 자기들이 잡채도 만들겠다고 합니다. 아이들이 크니까 정말 좋네요.
어른들은 TV 앞에 앉아서 평창동계올림픽을 시청했습니다. 최고 인기 종목은 단연 컬링이었지요. 사실 이번 올림픽이 개막했을 때만 해도 저는 컬링이 왜 스포츠인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일단 너무나 단순한 게임이라고 오해를 했지요. 그냥 ‘알까기’ 같았거든요. 그런데 해설을 듣다 보니 컬링은 알까기라기보다는 체스나 바둑에 가깝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고도의 전략이 필요한 게임이더군요. 아마 컴퓨터 게임을 좋아하는 청소년들은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과 비슷하다고 느꼈을 겁니다.
컬링이 단순한 게임이 아니라고 해서 스포츠의 반열에 올리는 데는 쉽게 동의하기 어려웠습니다. 왜냐하면 수정 가능성이 너무 커 보였기 때문이지요. 탁구, 골프, 당구 같은 게임을 생각해보죠. 아무리 멋진 자세로 샷을 날린다고 해도 종이 한 장 차이로 삐끗 맞으면 엉뚱한 데로 공이 날아가버리잖아요. 모든 책임은 공을 친 사람이 집니다. 점수를 잃든지, 공격권을 빼앗기든지, 아니면 공이 떨어진 자리에서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스포츠라면 당연히 이래야 할 것 같지 않습니까?
그런데 컬링은 어떻습니까? 스톤을 던졌다고 끝난 게 아닙니다. 쓸고 닦고 해서 스톤의 진로를 바꿉니다. 상대방의 스톤을 쳐내고 점수를 냅니다. 스톤을 던진 사람의 능력이 게임을 좌우하는 전부가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컬링이 동계올림픽의 정식 종목이라는 게 왠지 불편했습니다. 그런데 컬링 중계방송을 계속 보다 보니 내 생각이 짧았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야구처럼 공을 가진 사람의 기량이 경기 흐름을 좌우하는 다른 구기 종목과 달리 컬링은 네 명이 각각 머리와 눈이 되고 또 손과 발이 되어 분업과 협력을 통해 공격과 수비를 하는 신선한 경기였습니다. 팀원의 협력은 아름다울 정도입니다.
상대편의 매너도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저는 단 한 번도 심판이 등장하는 장면을 보지 못했습니다. 양 팀 선수들이 서로 신뢰하며 경기를 진행했지요. 상대방의 실수에 기뻐하는 표정을 짓지도 않았습니다. 누가 보더라도 승패가 갈렸을 때는 요행수를 바란다든지 아니면 오기를 부리면서 게임을 끝까지 끌고 가는 일도 없었습니다. 진 팀의 주장이 이기고 있는 팀의 주장에게 악수를 청하는 것으로 게임을 중간에 끝냈습니다.
우리 여자팀이 준우승을 했습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기쁜 일이지요. 컬링 선수들의 지혜를 우리도 배웠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사회는 더 이상 지도자 한 명이 좌지우지할 수 없습니다. 한반도를 안전한 하우스로 만들고 거기에 스로어가 던진 스톤을 쌓아 착실히 점수를 따려면 시민들이 스킵이 되고 스위퍼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컬링 경기를 보며 기뻤고 많이 깨달았습니다. 이제 3월에는 평창동계패럴림픽이 시작됩니다. 우리는 여기서 더 큰 기쁨과 깨달음을 얻겠지요.
이정모│서울시립과학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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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