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0일은 ‘재한외국인 처우 기본법’에 의해 제정된 ‘세계인의 날’이었다. 여러 문화권의 사람들이 서로 이해하고 공존하는 다문화 사회를 만들자는 취지로 2007년부터 국가 기념일로 지정됐다. 이에 따라 2007년 제정 기념식을 갖고, 2008년 법무부 주관으로 제1회 세계인의 날(www.togetherday.kr) 행사가 거행됐다.
세계인의 날부터 1주간은 ‘세계인 주간’이기도 하다. 일주일 동안 전국의 지방자치단체와 민간단체가 유학생 장기자랑, 가족 운동회, 세계 문화 체험 같은 다양한 기념행사를 50회 이상 개최한다. 우리나라 다문화 정책의 현 단계를 짚어보기로 하자.
2012년 6월 우리나라는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와 인구 5000만 명 이상인 국가를 일컫는 ‘20-50 클럽’에 진입했다. 일본(1987), 미국(1988), 프랑스와 이탈리아(1990), 독일(1991), 영국(1996)에 이어 우리나라는 일곱 번째로 ‘20-50 클럽’에 진입함으로써 국가적 위상을 높였다. 국제사회에서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는 선진국 진입의 소득 기준이며, 인구 5000만 명은 인구 강국과 소국을 나누는 기준으로 통용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한국인의 출산율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인구 5000만 명에 도달했을까? 불가능해 보이던 인구 5000만 명 돌파의 원동력은 다문화가정이었다.
한국 사회에서 다문화라는 용어는 1990년대 초반부터 통용됐지만, 정부 차원에서 급증하는 이주노동자 대책을 모색하던 2005년부터 급부상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국내에 체류하는 외국인은 2000년 49만1324명에서 2010년 125만2649명으로 증가해 전체 인구의 약 2.5%를 차지했고, 올해는 총인구의 4%인 200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외국인과 귀화자, 다문화가정의 인구가 꾸준히 증가해 2020년에는 전체 인구의 5.5%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다문화 사회로 변화하는 추세는 앞으로도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2008년 9월에는 ‘다문화가족지원법’이 시행됐다. 이 법의 목적은 다문화가족의 구성원이 안정적인 가족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이들의 삶의 질을 향상하고 사회 통합에 이바지하는 데 있었다. 이 법에서는 다문화가족을 보호하기 위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무를 규정했으며, 보건복지가족부 장관은 다문화가족의 현황과 실태를 파악하고 다문화가족을 지원하기 위한 정책 수립에 활용하기 위해 3년마다 다문화가족에 대한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공표하도록 했다.
이 밖에도 이 법에서는 다문화가족에 대한 이해 증진, 생활 정보 제공과 교육 지원, 가정폭력 피해자에 대한 보호•지원, 산전•산후 건강관리 지원, 아동 보육과 교육, 다국어에 의한 서비스 제공, 다문화가족지원센터 지정, 다문화가족의 지원 업무를 맡은 공무원의 교육 같은 다양한 정책방안을 구체적으로 명시했다.
정부에서 실시하고 있는 다문화 정책이 효과를 발휘하고 있지만 앞으로도 갈 길이 멀다. 한 방송사의 ‘비정상회담’ 같은 프로그램이 다문화 현상에 편승해 인기를 끌기도 하지만, 방송에 등장하는 엘리트 출연자들의 발언과 다문화가정의 현실과는 차이가 있다. 전문가들은 미디어에서 다문화가정에 대해 정형화된 유형을 제공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해왔다.
▶ ‘다문화가정 김장 담그기’ 행사에 참가한 다문화가정 주부들이 김치의 종류와 유래 등을 배운 뒤 직접 김장김치를 담가 보고 있다.
우리나라의 방송 프로그램이나 광고에 등장하는 다문화 구성원들은 한국인의 보조적 존재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기업 광고에서는 놀이터에서 아이를 향해 손을 흔드는 여성의 모습과 함께 “베트남 엄마를 두었지만 당신처럼 이 아이는 한국인입니다”라는 카피가 흘러나오며 아이가 밥을 먹는 장면으로 전환된다. “김치가 없으면 밥을 못 먹고, 세종대왕을 존경하고 독도를 우리 땅이라 생각합니다. 축구를 보면서 대한민국을 외칩니다. 스무 살이 넘으면 군대에 갈 것이고, 세금을 내고 투표를 할 것입니다. 당신처럼!”이라는 내레이션과 함께 다문화가정을 지원하자고 강조한다.
이 광고에서는 그 아이가 한국인이라고 강조하고 있지만, 강조하면 할수록 다문화가정의 어린이가 주변적 존재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 다문화가정이 갈수록 증가하는 상황에서 진정성 있는 다문화 메시지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더욱이 한국인의 다문화주의는 주로 미국이나 서유럽 문화와 국민에 대해서는 우호적이고 개방적이지만 중국, 베트남, 몽골, 방글라데시 같은 아시아권의 문화와 국민에 대해서는 배타적인 태도를 나타내는 경우가 많다. 1900년대 초반 우리의 조상들 역시 미국 하와이제도의 사탕수수 농장으로 이민을 떠났다. 하루 10시간의 고된 노동에 일당 1.5달러씩을 받으며 서럽게 이민 생활을 했다는 기록을 이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한다.
아시아계 차별과 관련해 참고할 만한 사례가 있다. 미국의 광고인 토머스 버렐과 앨 앤더슨은 “흑인은 검은 피부의 백인인가, 아닌가?”라는 쟁점을 놓고 오랫동안 논쟁했는데, 결론은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독특한 문화적 특성을 추출해 공명을 일으키는 메시지를 개발해 연결고리를 만들어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다문화가정의 특성을 파악한 다음 연결고리를 만들어줘야 그들의 마음을 진정으로 얻을 수 있다.
다문화이주민 2020년 우리나라 인구 5.5% 차지
다문화가 새로운 문화 역동성으로 작용
2020년 다문화이주민이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5.5%를 차지할 것이라고 하는데, 이런 현상은 단순한 인구 구성의 변화를 넘어 새로운 문화 질서의 형성을 예고한다. 우리 사회에서 현재의 순혈주의 인식이 희박해지고 다문화 공존이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가치(The Desirable)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커짐에 따라, 정책 관계자들은 다민족적 또는 다문화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의 문화적 가치 이동 현상을 면밀하게 관찰하는 동시에 이를 토대로 다문화 정책을 전개해야 한다.
다문화 사회가 보편화되면 기존의 문화 질서를 뛰어넘는 새로운 문화적 역동성으로 작용할 것이다. 따라서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지닌 사람들이 진정으로 우리와 함께 공존할 수 있는 다문화 정책의 진정성이 앞으로는 더 중요해진다. 이때 비로소 다문화 구성원의 입에서 “나는 한국 사람입니다”(국가인권위원회 2004년 광고 카피)라는 말이 저절로 나올 수 있으리라.
글 · 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전 한국PR학회 회장) 2016.05.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