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02년 9월 패션 브랜드 조르지오 아르마니 한국 출범 10주년 행사. 좌측부터 최인순 관장, 한복디자이너 이영희, 조르지오 아르마니 ⓒ최인순
오랜 세월 우리 문화를 화두로 기획과 전시를 해오면서, 보편적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아티스트의 예술성이 조화와 타협의 시간을 거쳐 ‘특별함’을 탄생시키고 궁극에는 보람과 감동으로 돌아오는 선물 같은 일이 천직이라 여기며 살아왔다.
패션디자이너의 일을 그만두고 외교관의 아내로 뉴욕에 거주하던 중 2000년 어느 날, 마침 카네기홀에서 열린 패션쇼를 위해 오신 이영희 선생님을 만나면서 나의 인생은 큰 반전을 맞았다.
그 후 잠시 귀국했을 때 선생님은 패션을 전공한 내게 옷을 문화로 푸는 사업도 해볼 만한 일이라며 설득하셨고, 곧바로 뉴욕에 이영희 한복박물관 건립을 위해 미래문화재단 설립을 추진하고 조직 구성과 후원 임무를 맡겼다.
사실 그전 1993년부터 프랑스 파리를 무대로 프레타포르테 컬렉션에 참가하고 8년간 시내에서 메종드 이영희 부티크 매장을 운영하며 한복의 세계화를 위해 열정을 쏟아부었으나 유럽 시장의 침체로 부득이 모든 사업을 접어야 했던 경험이 있다. 그러나 세계 경제의 중심이면서 패션의 도시인 뉴욕을 기반으로 다시 한번 한복의 아름다움과 한국 패션을 널리 알릴 뿐 아니라 산업적인 활로 모색을 위해 박물관 건립을 구상하게 됐다는 선생님의 포부를 들으면서 운명적으로 이 새로운 도전에 기꺼이 동참했다.
이영희 선생님은 해외 유명 디자이너와 폭넓게 교류하며 우리 문화의 대표 아이콘인 한복의 패션적 잠재력을 알리고, 명품 대열에 선 이영희 브랜드를 세계에 홍보하고자 많은 노력을 하셨다.
사진은 지난 2002년 9월 이탈리아 패션 브랜드 조르지오 아르마니의 한국 출범 10주년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만난 두 패션 거장이 한국의 선과 색에 대한 매력을 논하는 대화를 통역하며 찍은 소중한 한 컷이다.
이렇듯 기획자로서의 길을 가르쳐주고 많은 경험을 쌓게 해주신 선생님의 타계 소식에 그때의 열정과 도전이 더욱더 그립고 안타깝게 여겨져 다시금 마음이 숙연해졌다.
6년간의 (사)한국복식과학재단 이사장직을 거쳐 2013년부터 (사)근대황실공예문화협회에서 공예 전반의 해외전시 사업을 맡아보고 있다. 한국 공예의 신(新)패러다임인 새로운 상식으로의 쓰임을 주제로 다양하게 알리고 있는데, 2015년에는 북촌 열두 공방을 조명한 유럽 3개국 순회전 ‘한국 공예-장소, 사람, 이야기’를 벨기에, 독일, 영국에서 열었고, 2016년에는 UAE 아부다비에서 ‘조선 황실의 꽃–의관 정제’로 황실 의상과 장신구를 선보였으며, 필리핀 마닐라에서 개최한 ‘황실 공예 특별전’은 KCDF의 한류 우수 상품전의 전통적 근간을 보여주는 최고의 명품전이었다. 2017년 이탈리아 로마의 ‘나전과 옻칠 그 천년의 빛, 이탈리아를 밝히다’는 이탈리아 알바노디오체사노 박물관에서 전시했는데 많은 찬탄과 호평 속에 연장 전시했고,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나전과 옻칠 그 천년의 빛’ 시리즈는 나전옻칠공예의 백미를 보여준 것으로서 큰 자부심으로 다가오는 기획전이었다.
7개월 동안 세 번의 전시를 끝내고 돌아온 나전과 옻칠 작품의 여정에 뜻밖에도 귀국전이라는 기회가 한 번 더 마련되어 8월 7일부터 9월 28일까지 약 2개월간 청와대 사랑채 기획전시실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지난 4월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평화로 가는 길목에 서 있는 시대의 흐름에 맞춰 우리 공예 또한 남북 화합의 메시지를 담아 ‘나전과 옻칠 그 천년의 빛으로 평화를 담다’라는 주제로 남과 북의 작품 속 아름다운 빛깔로 희망, 평화, 통일을 함께 표현해보고, 기획자로서 전통문화를 근간으로 한 현대적 해법을 찾아내 한국 공예가 갖는 미래지향적 힘을 보여주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기회가 주어진다면 유엔에서 남북 전통공예 교류전을 열어 정치외교보다 문화가 더 우위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세계 평화의 메시지를 담은 전시를 기획해보고 싶다.
이번 청와대 사랑채 전시가 그 희망의 불씨가 되기를 바라며 명실공히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세계를 움직이는 한국 공예로 도약하길 기대해본다.
최인순│한국황실문화갤러리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