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운재 선수가 2002년 한일월드컵 스페인과의 승부차기에서 호아킨 산체스의 슛을 막아내는 모습 ⓒ연합
여름은 가슴 뛰는 계절이다. 초등학교 4학년 처음 축구화를 신은 이후 지금까지. 여름이면 으레 뙤약볕이 내리쬐는 축구장 위가 내 자리였다. 축구선수로 그리고 코치로 살고 있는 지금, 무수한 여름을 보냈지만 유달리 기억에 남는 여름은 따로 있다. 16년 전, 전국이 “대~한민국!”을 외쳤던 2002년 6월이다.
‘2002 한일월드컵’을 생각하면 먼저 간절함이 떠오른다. 1994년 미국월드컵에서 우리나라가 독일과 경기를 치르던 그때 처음으로 월드컵이라는 꿈의 무대에 발을 디뎠다. 머릿속에는 공이 오면 무조건 잡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뭘 몰랐으니 뭣 모르고 덤볐다. 한번 월드컵 경기를 뛰어보고 나니 또 한 번 뛰고 싶다는 마음이 샘솟았다. 1998년 프랑스월드컵을 앞두고 대표팀에 들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 최종 엔트리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아쉬운 마음이 컸지만 어쩔 수 없었다. 다시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음 월드컵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시간은 또 흐르고 2002년 월드컵이 성큼 다가왔다. 그해 열리는 월드컵은 다른 때보다 더 특별했다. 월드컵이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열렸기 때문이다. 꼭 대표팀에 발탁돼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긴 것이다. 한일월드컵이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으로 훈련했다. 우리나라에서 뛸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때만큼 절실하게 무언가를 바랐던 적이 없었다. 간절한 만큼 더 훈련에 매진했다. 마음이 복잡할 때마다 나에게 최면을 걸었다. ‘잘하려고 하지 말고 하던 대로 하자.’
간절하면 이루어진다는 말처럼 결국 월드컵 국가대표팀 최종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하지만 선발된 골키퍼는 나 하나가 아니었다. 나와 김병지 선수 두 사람이었다. 당시 김병지 선수가 스타플레이어로 주목받고 있어서 내가 주전으로 뛸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조급한 마음이 들 법도 했는데 오히려 마음은 차분했다. 하던 대로 연습하고 내가 갖고 있는 역량을 발휘하는 것이 최선이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첫 상대는 폴란드였다. 폴란드전을 앞두고 거스 히딩크 감독과 코칭스태프의 고심이 깊었다. 우리 대표팀은 이전에 월드컵 무대에서 승리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홈에서 치르는 경기인 만큼 승리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컸다. 폴란드전이 임박했을 때까지도 출전 선수 명단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였다. 사실 내가 그 경기에 뛸 수 있을 거라고 예상하는 사람도 많지 않았다. 나 역시 그랬을 정도이니 말이다. 하지만 폴란드전 출전 선수 명단에 내 이름이 포함됐다.
명단을 확인했을 때 뛸 듯이 기뻤다. 나에게 기회가 주어졌다는 자체에서 오는 기쁨이 컸다. 어렵게 잡은 주전의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 최선을 다했다. 나에게 최선은 평정심을 잃지 않고 묵묵히 하던 대로 하는 것이다. 그렇게 경기에 임한 결과 우리 팀은 월드컵 사상 최초로 첫 승을 거뒀다. 폴란드전을 시작으로 2002 한일월드컵 마지막 경기였던 터키전까지 말 그대로 젖 먹던 힘까지 최선을 다해 경기에 집중했다.
오는 6월 14일 또다시 월드컵이 시작된다. 지난 영광을 뒤로하고 이제 후배들이 새로운 역사를 쓰기 위해 러시아로 떠났다.
지난달 서울광장에서 열린 대표팀 출정식에서 마주한 후배들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역력해 보였다. 그들에게 “부담 없이 임하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 평정심을 갖고 늘 하던 대로 한다면 그들이 염원한 일이 중요한 순간에 현실로 이뤄질 거라고 믿는다.
이운재│수원삼성블루윙즈 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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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