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투미(Talk to Me)’ 대표 이레샤 페라라(42) 씨는 한국 생활 17년 차에 김치찌개와 소주를 즐기는 한국인이다. 오송환(49) 씨와 결혼해 한국 국적을 취득하고 세현(16·남), 아인(13·여) 두 아이를 낳아 키운 한국 아줌마다. 그런데 지금도 여전히 “어디서 오셨어요?”라는 질문을 받는다.
▶ 자립의 상징인 모니카 인형과 함께한 ‘톡투미’ 이레샤 대표 ⓒC영상미디어
“한국 사람들은 그 질문에 ‘마포에서 왔어요’ 하고 자기 동네 이름을 말하잖아요. 그런데 17년째 한국 사람으로 살고 있는 저한테는 태어난 나라가 어딘지 물어보고, 한국말을 잘한다고 칭찬합니다.”
이레샤 대표는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당황스럽다. 이것은 한국에 사는 모든 이주여성이 겪고 있는 일상이다. 다문화 시대로 돌입하는 현실과 달리 사회적 여건은 미비하고 편견은 견고하다. 이런 상황에서 이주여성들이 뜻을 모아 자조단체인 ‘톡투미’를 만들었다(2010년 설립). 현실을 스스로 헤쳐나가며 저마다 할 수 있는 역할을 해보자고 의기투합한 것이다. 열 명으로 시작한 ‘톡투미’는 현재 5000명 이상이 참여할 정도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모니카는 멀리서 왔다는 ‘머니까’에서 따온 말이다. ‘멀리서 온 사람’이라는 뜻을 담아 인형 이름을 모니카라고 지었다. 인형은 일반인들의 재능 기부로 만들어지는데, 톡투미 누리집(talktome.or.kr)에서도 모니카 키트를 신청하면 기본 인형 몸통과 도안이 담긴 키트를 받아볼 수 있다.
“다양한 인종과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걸 알리고 싶었어요. 노랗고 까만 피부색을 가진 모니카를 만들고 놀다 보면 서로의 다양성을 자연스럽게 인정하고 이해와 존중을 하게 될 거라 믿었죠.”
▶ 1 코끼리 쿠션 ‘라자’를 만드는 자원봉사자들. ‘라자’는 힌두어로 왕을 뜻하는 말로, 코끼리가 행운을 가
져다주고 소원을 이뤄준다 믿는다.
2 ‘톡투미’의 대표 요리사 니우마, 호지완, 이레샤, 유파(왼쪽부터)
3 라자를 만들고 있는 자원봉사자. 재단된 패턴을 꿰매고 솜을 넣어 완성한다. ⓒ톡투미
자립의 상징, 노랗고 까만 모니카 인형
모니카 인형은 얼굴 표정과 머리카락, 의상 등을 만드는 사람의 취향대로 꾸미는 것이 특징이다. 지금까지 수천 개의 모니카 인형이 태어났지만 똑같은 생김새는 하나도 없다. 인형과 키트 판매 수익금은 이주여성 일자리 창출, 취약계층 지원, 해외 아동 교육환경 개선 등에 사용된다. 국내외 소외계층 아이들에게 인형을 기부하거나 학교의 교육도구로 활용하기도 한다. 모니카 인형에 이어 라자 코끼리 쿠션 사업도 진행 중이다.
“생김새가 다르고 그 다름이 차별로 이어지니까 엄마들이 위축되는 경우가 많아요. 아이들이 불이익을 당할까 봐 학교 방문을 피하고 숨어 지내기도 합니다.”
‘톡투미’가 활동을 시작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엄마 스스로 달라져야 한다는 절박함이었다. 이주여성의 목소리를 내고 한국 사회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모습을 보여야 2세들의 사회적 위치도 달라질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이주여성들 중에 재능이 넘치는 분들이 많아요. 그런 재능을 이주민 사회뿐만 아니라 한국의 소외계층에도 나눠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다문화는 늘 도움 받는다는 인식을 바꾸고 싶었죠.”
모니카 인형과 함께 2012년 시작한 ‘말하는 레시피·도시락’도 ‘톡투미’의 주요 활동이다. 이주여성들이 요리교실을 열어 스리랑카·필리핀·베트남·가나 등 6~10개국의 요리를 가르쳐주거나 도시락 판매와 케이터링 서비스도 제공한다. 이주여성들은 요리 사업에 참여해 자신감을 찾고 일당도 받는다. 남은 수익금은 이주여성들의 모국에도 지원하고 있다.
“아시아의 여러 맛을 소개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한국식으로 개량된 레시피를 사용하고 있어요. 그래서 향신료에 거부감을 느끼는 분들도 맛있게 잘 드실 수 있죠.”
다문화로 버무린 새로운 한국의 맛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는 한결 가까워진다. ‘톡투미’는 맛있는 음식을 통해 이주민들과 선주민들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세상을 꿈꾼다. ‘톡투미’의 자립정신은 음식 봉사에서도 이어진다.
“사무실 인근의 노인분들을 모시고 쿠킹클래스를 열기도 해요. 음식을 같이 만들면서 이야기도 하고, 완성한 후에 함께 즐기니까 더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이레샤 대표는 나를 바로 세우는 과정을 통해 움츠러든 마음을 활짝 펴게 만드는 ‘톡투미’의 정신이 한국 사회에도 뿌리내리고 있다며 웃었다.
이레샤 대표는 다문화에 대한 배척과 편견이 ‘소통 부족’에서 나온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국내에 100여 개가 넘는 국가의 사람들이 살고 있는 상황에서 ‘너는 스리랑카, 너는 베트남’ 하는 식으로 선을 긋고 따지며 살 수는 없다. 다문화 문제가 문화 차이에서 온다고 말하지만, 개개인의 문화는 한국 사람들도 저마다 다르다. 다문화를 이룬 지금의 현상을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첫 번째다.
“마음을 열고 다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람 사는 거 다 비슷하잖아요. 미국에서 한국계 미국인을 자연스럽게 인정하는 것처럼 베트남계 한국인, 태국계 한국인도 같은 대한민국 국민으로 인식하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강보라│위클리 공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