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파주시 문산읍 통일대교에서 검문을 거쳐 임진강을 건너면 도라산역 삼거리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좌회전하면 ‘디엠지플러스’란 간판을 단 사과농장이 눈에 띈다. 이동훈(31) 디엠지플러스 대표가 운영하는 민통선 안의 사과농장이다.
ⓒ디엠지플러스
이동훈 대표는 성균관대 법학과에 입학할 때만 해도 대학 동기들과 마찬가지로 법조인을 꿈꾸며 법 공부에 매달렸다. 그러나 학과 공부는 이 대표의 적성에 맞지 않았다.
“법학과의 특성상 로스쿨이나 사법시험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어요. 진로에 대해 고민해볼 겨를도 없이 그게 최선인 줄 알고 지냈던 것 같아요. 그러던 어느 날 재미없는 시험공부에 매달려 허송세월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마음속에 있던 게 창업에 대한 꿈이었죠.”
이 대표는 성균관대 창업동아리협의회(S-forum)를 만들었다. 학교 최초로 창업 동아리를 만든 그는 리더십을 발휘해 동아리를 이끌어가는 동시에 창업에 대한 꿈도 키워갔다. 경기 파주시 군내면 점원리에 위치한 6600m2(2000평) 남짓한 사과농장에서 그는 자신의 꿈을 찾기로 했다. 10년 전 출판사를 운영하다 귀농한 아버지를 따라 농촌에서 흙과 살기로 다짐한 것이다.
막상 귀농한 아버지와 함께 사과농장을 하기로 했으나 현실은 만만치 않았다. 저온창고에 쌓인 사과들을 보며 ‘과연 저것을 어떻게 팔 수 있을까’ 막막하기만 했다.
청정 지역을 마케팅 포인트로 활용
“아버지가 고생하며 키운 사과를 제값에 팔지 못하시더라고요. 경북 지역의 사과에 비해 파주 사과는 인지도가 너무나 낮았거든요. 처음엔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젊은이의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밀어붙이면 못할 것도 없다는 오기가 생겼어요. 농장 인프라를 이용해 프로그램을 만들고, 또 제품을 가공하면 좋은 창업 아이템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대표는 60년 가까이 사람의 발길이 끊긴 덕분에 어느 곳보다 청정한 지역인 DMZ를 활용하기로 했다. 그래서 회사 이름도 DMZ에서 따왔다. 그는 저온창고를 가득 채운 사과부터 판매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창고를 둘러보다 상자에 들어 있는 사과를 하나 집어 장갑으로 먼지를 대충 닦고 한입 베어 물었더니 ‘꿀사과’였다. 당도측정기로 당도를 재봤더니 17브릭스(Brix)가 나왔다. 시중에 팔리는 꿀사과가 보통 12~13브릭스인 점을 감안하면 상당한 당도였다.
당도에 자신이 생기자 이 대표는 창고에 가득 쌓인 사과로 주스를 만들어 팔기로 했다. 2015년 이 대표는 농림축산식품부의 ‘6차 산업(1차 산업인 농수산업과 2차 산업인 제조업, 3차 산업인 서비스업이 복합된 산업) 사업체’로도 인증을 받았다.
2015년 4월 현대백화점 송도점에 입점해 판매를 시작했다. 농장에서 수확한 사과로 ‘파머스 애플’이라는 이름의 사과 주스와 디톡스(해독) 주스를 만들어 판매하기 시작한 것이다. 매장을 찾은 손님들이 “설탕 시럽을 넣은 거냐”고 물어볼 정도였다.
그러나 사과 세 개를 갈아 소비자에게 4900원에 판매했으니 수지가 맞지 않았다. 1년 정도 운영하다 아쉽게 철수하고 말았다. 그러나 당시 ‘파머스 애플’ 주스의 폭발적 반응으로 장단면과 군내면 일대 농가의 사과까지 소비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이 과정에서 농산물 가공 산업에 대한 노하우를 터득했다.
올해로 5년 차에 들어가는 청년 농사꾼 이 대표에게 DMZ는 ‘기회의 땅’이다. 이 대표는 2015년부터 ‘재미있는 DMZ’라는 콘셉트 아래 안보 관광객 홍보와 유치를 위해 신경 쓰고 있다. 아버지가 피땀 흘려 일군 농장 인프라를 활용해 수익을 내겠다는 목표로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고, 지역적인 특성과 놀이 형태를 결합해 테마가 있는 체험 프로그램을 기획한 것이다.
이 대표는 “사실 파주는 제주나 남이섬처럼 볼거리, 먹거리가 다양한 손색없는 관광지”라며 “DMZ 관광객들이 파주의 진면목을 모르고 임진각, 도라산전망대, 평화공원, 땅굴 견학을 하고 나면 더 이상 볼거리가 없다면서 아쉬워했다”고 했다. 그는 “기업들이나 외국 관광객, 그리고 가족단위 관광객에게 수확 체험, 안보 관광을 연계한 관광 프로그램 등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고, 농장 안에 컨테이너를 개조해 주방을 만들었다”고 했다.
▶ 이동훈 대표가 디엠지플러스의 농촌체험학습장에서 아이들에게 인기 있는 ‘초콜릿 애플’ 만들기 시범을 보
이고 있다. ⓒ디엠지플러스
“DMZ 사과를 활용해 평소 요리를 잘 하지 않는 아빠가 초콜릿을 뿌려 ‘초콜릿 애플’을 만들어주면 아이들이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어요. 엄마는 족욕과 다과로 피로를 풀고, 아이들은 비무장지대의 깨끗한 생태환경을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이에요. 온 가족이 놀이라는 형식을 통해 신선한 로컬 푸드가 외국산 농산물보다 얼마나 맛있고 좋은지를 함께 직접 체험해보는 게 목적이지요.”
이 대표는 ‘하루쯤은 베짱이처럼 즐겨보자’는 의미로 ‘베짱이학교’ 프로젝트를 운영했다. 하지만 문제는 자금이었다.
“자금 확보를 위해 투자자도 찾아봤지만 쉽지 않더라고요. 그러던 중 관광 공모전을 알게 돼 지원했죠.”
안보 관광 연계 농장 체험관광 프로그램 만들어
이 대표의 아이디어는 2014년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주관한 제4회 창조관광사업 공모전에서 입상했다.
이 대표는 입상과 동시에 창업자금을 지원받았고, 그 덕분에 지난해 아버지의 사과농장 바로 옆에 베짱이학교 체험장을 조성할 수 있었다. 2015년에는 메르스 여파로 관광객 방문이 주춤하기도 했지만 현재까지 총 3000여 명이 체험시설을 찾았고, 대기업 등 기업체 25곳에서도 체험장을 이용했다. 현재는 체험시설을 확장하기 위해 준비 중이고, 건축 허가를 마치는 대로 오픈할 계획이다. 농장 한편에서는 백화점에서 대히트를 쳤던 ‘파머스 애플’ 주스도 재개할 계획이다.
이 대표의 꿈은 단순히 수익을 내는 데 그치지 않고 농업 전체의 발전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사실 저도 수입이 아주 많거나 안정적이지는 못해요. 하지만 사업을 하면서 생긴 저만의 신념도 있고, 이렇게 준비하다 보면 기회도 생긴다는 걸 체감했기에 늘 기회를 만들려고 노력합니다.”
이동훈 대표는 “DMZ 지역에서 농촌 사업을 시작한 것은 내 인생의 전환점”이었다며 “그런 점에서 남북관계의 해빙에 따라 DMZ 지역은 젊은이들에게 기회의 땅이자,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청정 지역”이라고 했다.
오동룡│위클리 공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