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6년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출전 모습 ⓒ연합
이변이었다. 1976년 이탈리아 마도나 디 캄피그리오에서 열린 세계주니어 스피드스케이팅선수권대회에서 종합 우승을 차지했다. 아무도 동양의 작은 나라 한국에서 온 선수를 주목하지 않았다. 처음 출전한 1976년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동계올림픽에서 좋은 결과를 얻진 못했지만 1979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500m부문 동메달을 차지했다. 한국 빙상이 세계에 알려진 순간이었다. 그동안의 어려움이 스쳐지나갔다. 행여나 발이 커져 270mm 스케이트가 작아질까 280mm를 신고 달리고, 모래조끼를 만들어 입고 훈련에 임했다. 돈이 없어 주변에서 십시일반으로 비행기 표 값과 현지 체류비를 마련해준 일도 잊을 수 없다.
1980년 미국 레이크플래시드동계올림픽은 승산이 있었다. 당시 체력, 컨디션, 자신감 모두 최고였다. 올림픽을 앞두고 최고 기록도 냈다. 국내의 기대도 한 몸에 받았다. 모두 한마음으로 한국 역사상 첫 동계올림픽 메달을 목에 걸 거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경기 당일 500m 결승을 앞두고 연습하던 중 바리게이트를 들이받는 사고가 났다. 코가 주저앉았고 숨을 쉴 수조차 없었다. 경기에 참가할 수 있을지 불투명했다. 응급처치를 받고 빙상에 섰다. 결과는 19위, 메달은 쉽지 않았다. 이 대회에서 5관왕을 차지하며 1위를 한 에릭 하이든은 4년 전 이탈리아 대회에서 2위를 한 선수였다. 희비가 엇갈렸고 아쉬움은 더욱 컸다.
1984년 유고 사라예보동계올림픽은 사상 처음으로 동구권에서 열린 올림픽이었다. 결연한 마음으로 빙상에 섰지만 선수로서 몸 상태가 예전 같지 않았다. 곧 은퇴를 앞두고 있기도 했다. 이 대회에서 기억에 남는 건 메달보다 남북 대결이었다. 당시는 냉전 기류가 짙었던 시기로 10000m 종목에서 남북은 5 대 5 상황까지 갔다. 단장은 나를 파이널 선수로 정했다. 7000m까지는 젊은 북한 선수를 제칠 수 없었다. 정신을 가다듬고 사력을 다했다. 결과는 역전이었다. 나의 마지막 레이스는 그렇게 끝났다.
내가 올림픽을 다시 찾은 건 1992년 프랑스 알베르빌동계올림픽이었다. 감독 자격으로였다. 당시 출전한 김윤만 선수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다. 사실 감독인 나조차 메달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는 체력, 기술, 정신력을 고루 갖췄지만 쟁쟁한 선수들 기록과 2~3초 차이가 날 만큼 성적이 저조했다. 대회 당일, 메달권이 아니라고 생각해서인지 국내 취재진도 하나 없었다. 밖은 눈, 비바람으로 스산하기만 했다. 다른 선수들이 빙상을 도는 사이 나는 김윤만 선수에게 자전거로 몸을 풀게 했다. 추위에 근육이 굳는 걸 염려했기 때문이다.
경기 흐름은 좋았다. 김윤만 선수는 속도가 나면서 보폭이 넓어졌다. 그가 선수들을 제치고 나갔다. 네 번째, 세 번째, 은메달을 거머쥐었다! 한국 동계올림픽 사상 첫 메달이었다. 김윤만 선수가 유독 올림픽과 인연이 없던 내 한을 달래준 셈이었다. 김윤만 선수는 충분히 기대 이상의 성적을 보여줬다. 값진 은메달이었지만 갑자기 복통이 생겨 한동안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0.01초 차이로 눈앞에서 금메달을 놓쳤다고 생각하니 아쉬운 건 어쩔 수 없었나 보다.
동계올림픽 불모지에서 스케이트를 처음 타던 날이 아득하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예전의 대한민국이 아니다. 지금은 많은 후배가 든든하게 자리한 동계스포츠 강국이다. 가슴에 태극마크를 달기까지 누구의 땀이 더 했고 덜 했고, 라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 땀의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아울러 스타 선수들이 대한민국을 환호에 취하게 만들 거라고 확신한다. 스포츠는 끝까지 가봐야 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이영하·김윤만 선수가 반전을 그려낸 것처럼 국민 여러분의 관심과 응원을 부탁한다. 나 또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우리 선수들의 선전을 응원할 것이다.
이영하│전 스피드스케이팅 국가대표·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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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