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그런 달은 지구를 닮았다. 그리움을 가슴 깊이 품은 채 지구 주위를 돌다보니 그리 닮았나 보다. 우리도 우리의 부모님을 닮았다. 때로는 고맙기도 하고 때로는 원망을 터트리기도 한다. 그러나 결국엔 부모님을 그리워한다. 그것은 우리가 온 곳에 대한 그리움 때문일 것이다. 야위었던 달이 차오르면 새삼스럽게 부모님도 그리워지고 형제자매도 보고파진다. 이제는 부모님도 안 계신 추석을 맞이한다. 내가 어머니가 됐다. 내가 할머니가 됐다. 며칠 전엔 새삼스럽게 아들이 보고 싶어서 아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보고 싶구나.”
아들에게서도 문자가 왔다.
“엄마, 저도 엄마 보고 싶어요.”
나는 그 말 한마디에 마음이 푸근해졌다. 피곤하던 심신이 편안해졌다. 마음 담긴 한마디가 사탕보다 더 달콤했다.
사실 멀리 떨어져 사는 아들을 보는 것은 일 년에 서너 번 정도다. 저희들도 자식 키우고 직장생활하느라 바쁘고, 제 일을 하느라 바쁘다는 핑계가 있지만, 문득문득 보고 싶은 생각이 들 때는 만사 제치고 아들이 있는 도시로 향하기도 한다. 아들도 마찬가지다. 엄마가 보고 싶으면 꽃 같은 제 아이들을 데리고 불쑥 찾아온다. 그럴 땐 보너스를 받은 기분이다. 틈틈이 영상통화로 재롱떠는 아이들 모습을 보여주고 통화도 하지만 실제로 눈앞에서 만지고 확인하는 기쁨에 비하겠는가. 그래서 나는 명절을 기다린다. 진정으로 그리워서, 아이들이 좋아하던 음식과 차례상에 올릴 음식을 준비하면서 ‘아하, 이렇게 내가 깊어가는구나’ 느낀다.
사실 젊었을 때는 명절 돌아오는 일이 귀찮은 감이 없지 않았다. 일도 잘 할 줄 모르는 상황에서 일을 해야 하는 것도 그렇고 여자들만 더 힘든 것 같아 짜증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자식을 기다리는 부모의 마음을 알게 되고, 자식보다 더 어여쁜 손주들을 볼 생각에 가슴이 설렌다. 그럴 땐 어여쁜 손녀들을 낳아 잘 키워준 며느리에게 고마운 생각이 든다. 아이들이 다녀가면 온 집안에 사랑의 메시지가 가득하다. 이제 막 한글을 배우기 시작한 손녀가 써놓은 글씨 때문이다. ‘할머니 사랑해요’, ‘할아버지 사랑해요’ 삐뚤빼뚤한 글씨가 온 집안 구석구석 붙어 있다. 올해는 손녀에게 특별한 약속을 했다.
“추석에 오면 봉숭아 꽃물을 들여 주마.”
“봉숭아 꽃물이 뭔대요?”
“빨간 꽃잎으로 손톱에 물을 들이는 거란다.”
그 말을 하면서 나는 올여름에 꽃물 들인 빨간 손톱을 영상으로 보여줬다.
“와아, 신난다. 천연 매니큐어네.”
여자아이들이라 그런지 유난히 멋내기를 좋아한다. 시골에 오면 노란 꽃을 따서 그 진액으로 손톱에 물을 들이던 아이들이다. 흰 눈이 오는 겨울까지 손톱에 붉은 반달이 남아 있기를 기도하던 내 어린 날의 추억이 아이들에게도 추억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런 약속을 했다. 철지난 봉숭아 꽃물을 어떻게 들이느냐고? 사실 봉숭아꽃이 한창 필 때 따서 백반을 넣고 곱게곱게 찧어서 냉동실에 얼려두었다. 아이들은 난생처음 들이는 꽃물에 대한 기대가 대단하다. 며칠 전 영상통화에서도 다짐을 했다.
“추석에 가면 봉숭아 꽃물 꼭 들여 줘야 해요.”
이렇게 마음이 오가는 사이, 그 무엇보다 진한 가족의 사랑이 깊어간다. 추석날 아침, 차례상을 물리면 나는 며느리들을 서둘러 보낼 것이다. 그 애들도 아들만큼 친정부모를 그리워하고 있을 테니까.
달님이 점점 차오른다. 내 마음도 덩달아 차오른다. 달님을 바라보며 넉넉한 기원을 한다. 이 세상의 모든 존재들이 행복하기를! 우리 아이들이, 우리의 이웃들이 모두 행복하기를!
권비영 |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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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